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각국은 미국 정책 변화가 앞으로 자국 산업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마치 카드 뒤집기와 같은 롤러코스터 정세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던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이 식사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간편식 요리를 개발했다 자신의 이름을 남겼듯 혹시 트럼프 카드를 만든 이가 트럼프 대통령의 조상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하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더군요. 애초에 트럼프 카드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 일본에서만 쓰이는 일종의 ‘콩글리시’였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그저 ‘플레잉 카드(playing cards)’라고 부르는데 일본이 서구와 접촉하던 초창기 서양인들이 이 게임을 하다 ‘승리(Triumph)’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그게 카드 이름이라고 오해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이 잘못 알려진 명칭이 들어와 지금껏 통용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카드형 보드게임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트럼프와 화투 2가지인데요. 알고 보면 이 두 카드 게임 조상이 같습니다.
트럼프 카드는 유럽이 원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유력합니다. 중국에서 즐기던 종이 카드놀이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전파됐는데 원래는 상인을 의미하는 동전, 귀족을 상징하는 칼, 성직자를 나타내는 컵, 농민을 나타내는 몽둥이 등 4가지 문양이 있었고 점차 지금의 문양으로 변형됐다고 합니다. 그사이에 중국은 마작 게임으로 발전해나갔다고 하네요.
이후 포르투갈이 동양에 진출하면서 이 카드 게임이 일본에 전파됐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유럽을 거쳐 다시 아시아권으로 돌아온 거죠. 하지만 일본 막부가 도박을 엄격히 금지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꽃, 동물, 풍경 등 일본 풍속화 그림으로 대체하고 감추기 편하도록 크기를 줄이다 보니 지금의 화투(花鬪)로 자리 잡았다는 거죠.
중국서 중동·유럽·일본 거쳐 한국으로
그 뒤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 화투가 전파됐는데요. 1902년 황성신문 광고에 소개된 것이 첫 증거입니다. 하지만 종이로 만들다 보니 쉽게 찢어져 불편했는데 해방 이후 어느 이름 없는 선각자가 빨간색 뒷면을 가진 플라스틱 화투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원래 플라스틱 카드는 1953년 일본 닌텐도(Nintendo·任天堂)사가 트럼프 카드를 세계 최초로 만든 게 시초였는데 이걸 우리나라에서 화투로 응용한 것이지요. 정작 일본은 여전히 종이 화투가 대세인 반면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화투로 완전 대체되면서 착착 손에 감기고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리는 데다 고스톱이라는 한국식 룰과 환상적인 컬래버가 이뤄지면서 일본에선 시들해진 화투가 여전히 국민 대표 게임으로 사랑받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차에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이제는 화투가 한국 보드게임이라고 잘못 알려져 ‘Korean Flower Battle’로 소개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화투에도 이런 역사가 담겨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한 종이 카드놀이가 중동을 거쳐 유럽에서 트럼프 카드로 발전하고 이게 바다 건너 일본에서 화투로 변형된 후에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카드로 거듭나 꽃을 피웠으니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화투는 1000여년의 세월과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역사적인 보드게임인 셈입니다.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수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