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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특’ 부결로 尹·李 당 장악력 알 수 있다 [신율의 정치 읽기]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24-05-31 12: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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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8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에 부쳐진 ‘해병대원 특검법’ 재표결이 실시됐다. 부결됐지만, 찬성과 반대표 분포는 정치권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표결 직전까지 정치권 관심사는 국민의힘에서 얼마나 많은 이탈표가 나오는가에 쏠렸다. 결과는 ‘국민의힘 선방’. 재의에 부쳐진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통과된다. 현재 국회의원 재적 인원은 296명이다. 이 중, 돈 봉투 사건 때문에 수감 중인 윤관석 의원과 건강상 이유로 불참한 동작을 출신 이수진 의원을 제외한 294명이 본회의에 참석했다. 294명 중, 특검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었던 정당 소속 21대 국회의원은 민주당 153명, 정의당 6명, 개혁신당 4명, 기본소득당 1명, 진보당 1명, 새로운미래 5명, 조국혁신당 1명, 무소속 야권 성향 8명, 이렇게 총 179명이었다. 반대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정당 소속 21대 의원 총수는 국민의힘 113명, 자유통일당 1명, 무소속 1명, 이렇게 115명이었다.

투표 결과는 찬성 179명, 반대 111명, 무효 4명이다.

얼핏 생각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지고 국민의힘 의원 중 4명이 무효표를 던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표 계산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5명이 표결 이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찬성 의사를 밝힌 안철수 의원은 표결 직후 “소신대로, 의견을 밝힌 대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역시 찬성 의사를 밝힌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다며 “당론이 진정 옳은 것이라면, 진정 부끄럽지 않다면 나를 징계하시라”고 밝혔다. 이외에 김근태 의원, 최재형 의원 그리고 유의동 의원이 실제 찬성표를 던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들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면 최소 5명 이상 ‘야당 이탈표’가 나온 셈이다. 찬성표를 던졌다 공개한 두 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해도 최소한 2표 이상 이탈표가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 중 5명 이상이 찬성했고, 반대로 민주당에서도 다수 이탈표가 나왔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물론 민주당이 아닌, 제3당에서 이탈표가 나왔을 수도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진실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다만 정치가 유권자의 ‘인식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시나리오 자체가 민주당에, 특히 이재명 대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당은 두 번의 ‘이탈표 사태’를 경험했다.

한 번은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이고, 다른 한 번은 우원식 국회의장 후보 선출이다. 이를 기억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번 표결에서도 민주당 의원의 ‘이탈’ 가능성에 동의할 테다. 당연히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사안이다. 대표의 당 장악력에 의구심이 생길 테고, 이렇게 판이 돌아가면 당내 일부 잔존 비명 세력이 본격적인 대표 흔들기에 나설 수도 있다.

이때 이 대표 행보도 제약을 받는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리 반기지 않는 연금 개혁, 1가구 1주택 종부세 폐지 등 보수적인 어젠다를 던지고 있다. 이는 이 대표가 장악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이 어떤 입장을 택하든, 당과 지지자는 자신을 따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이런 파격적인 제안이 가능하다. 그런데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기지 않을 정책 제안을 할 수 없다. 당연히 지지층 외연 확대는 요원해진다.

민주당은 ‘해병대원 특검법안’을 22대 국회 첫 번째 안건으로 재추진한다고 하는데, 이는 불안한 상황을 심화시킬 수 있다. 재의결에서 또다시 이탈표가 나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다.

반대로 대통령실은 한시름 놓게 됐다. 생각보다 이탈표가 적게 나와 ‘아직도’ 당에 대한 장악력이 어느 정도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이탈표가 7표 이상 나왔다면, 대통령실은 레임덕을 걱정할 판이었다. 표결 전, 민주당도 레임덕 발생 가능성을 고려했기에, 일부 국민의힘 의원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당과 대통령실은 완전히 분리되고 여권은 정권 존립 위기에 직면했을 수 있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 대통령 지지율이 저조한데도 왜 국민의힘 의원들은 ‘똘똘’ 뭉쳤을까. 21대 국회의원 중 낙선하거나 낙천된 의원 그리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수는 모두 58명이다. 이들은 당연히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은 이들의 ‘이탈’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23대 총선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당선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23대 총선은 차기 대선 이후에 있다. 현재 정권과 23대 총선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지지율 저조한 대통령이 정치적 미래에 걸림돌이라 생각되면, 대통령에 단호히 선을 그을 것이다. 여론과 대통령 의중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이들은 서슴없이 여론을 따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들이 고려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차기 총선이 이른바 새로운 정권의 ‘허니문 시기’에 치러진다는 사실이다.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총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정권 재창출은 이들의 정치적 재기에 필수 요소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아무리 저조해도, 만일 ‘중도 사퇴’라도 하는 날에는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통해 너무나 명확해진 사실이다.

민주당은 해병대원 특검을 주장하면서 탄핵 가능성과 연결시켰다. 민주당은 개헌을 주장할 때도 임기 단축을 전제로 언급했다. 상황이 이러니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도, 쉽게 당론에 반대하며 찬성표를 던지기는 어려웠을 테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지나친’ 탄핵 혹은 임기 단축 주장이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한 셈이다.

민주당의 장외집회도 한몫했다. 장외집회가 의원들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절박한 호소’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탈표가 대량으로 나왔다면 추 원내대표 체제는 위기에 빠지고, 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추 원내대표가 손 편지를 쓰고 전화를 돌리며 의원들을 설득했고, 이런 전략이 ‘흔들리던’ 의원들을 붙잡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젊은 해병대원의 죽음은 온 국민이 애도해야 할 정말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다. 정치권 특검을 둘러싼 공방도 그런 애도와 슬픔의 표현 방식의 하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나치면 안 하느니 못할 수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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