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를 한국에서 출산한 후 두 달이 지난 시점에 가족이 함께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오게 됐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함께 두바이에 온 장모님도 원래는 일주일만 머물다 가시겠다고 했지만, 막상 아기들을 돌보는 걸 보시고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셨다. 사위인 나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계셔달라” 부탁했고 결국 한 달을 더 머물러 주셨다.
쌍둥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은 몇 명일까? 흔히 부모 둘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최소한 세 명이 필요하다. 부모가 둘이라 해도 육아 외에는 어떤 다른 활동도 할 수 없고, 하루 종일 아기만 돌보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먹고 살기 위한 생계는 누가 책임지고 청소와 빨래 등 쌓인 집안일은 누가 하나? 심지어 파일럿인 나는 한번 멀리 비행을 가면 며칠간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엄마 혼자서 이 모든 일을 전부 감당해야 한다.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제 은퇴하고 인생을 즐길 시기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몇 년 동안 손주 육아를 전적으로 맡기는 건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두바이에서 하우스 헬퍼인 ‘내니(nanny)’를 고용하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두바이에서는 가사 보조인을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UAE 정부 포털에 따르면, UAE 현지인의 90% 이상이 최소 한 명 이상의 하우스 메이드를 고용한 경험이 있으며, 두바이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맞벌이 부부와 핵가족화로 인해 이들의 수요가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은 부모가 육아와 자신의 삶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맞벌이 가정뿐만 아니라, 전업 부모도 내니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작업에서 해방되어 남는 시간에 그만큼 자기계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니를 통해 육아를 하는 것은 단순히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부모 혼자 육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육아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매우 노동집약적 1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두바이에서의 내니 문화는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입주시터를 이용하는 것이 흔치 않으며, 대부분 출퇴근형 돌봄선생님(베이비시터)을 활용한다. 반면, 두바이에서는 입주시터(Live-in Nanny)가 보다 보편적이며 주 6일 근무가 기본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고용주와 내니 간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첫째, 내니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 집주인의 사소한 물건 하나라도 임의로 치우지 않는다. 이 원칙이 유지되면, 내니가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경계가 명확해진다.
둘째, 가족과 식사하지 않는다. 내니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지 않고, 따로 식사 시간을 갖는다. 이는 고용주와 내니가 서로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업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퇴근 후 공용 공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본인 방에서 머물며, 아침까지 공용 공간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가족이 저녁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식이다.
넷째, 고용주가 지시한 사항을 철저히 따른다. 분유 먹이는 시간, 재우는 시간 등을 철저히 지킨다. 한국에서는 ‘융통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두바이 내니들은 본인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철저히 지시대로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내니는 본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필요한 질문만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고용주 입장에서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두바이에서는 내니가 단순히 육아를 돕는 역할을 넘어, 부모가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양육 방식의 차이, 계약 조건에 대한 인식 차이, 급여 인상이나 추가 휴가 요청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내니 문화 외에도 두바이가 육아에 최적화된 이유는 많다. 우선 다문화적 환경을 꼽을 수 있다. 두바이는 전체 인구의 90%가 외국인이다. 그 덕분에 인종차별 이슈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으며, 영국·미국 학제를 선택적으로 교육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영어와 아랍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나라 전체가 아동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다. 아랍권의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디서나 아이들이 있는 풍경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두바이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육아 인프라 역시 잘 갖춰져 있다. 쇼핑몰과 레스토랑은 개방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보도와 도로는 유모차와 휠체어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다. 주차장에는 임산부와 아이 동반 차량을 위한 전용 구역이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이곳에서 내니를 고용하는 가격은 한국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 대략적으로 한국 시세의 20~30% 정도인 듯 하다. 사실 제3국 노동자의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한 내니 시스템을 착취 구조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현지인처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다. 내니가 없으면 육아가 불가능한 부모가 있는 것처럼, 내니 역시 이 일을 통해 본국의 가족을 부양한다. 내니 입장에서도 본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여기서 일하는게 월급이나 대우가 훨씬 좋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육아의 사회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모에게 모든 부담이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두바이에서는 육아를 개별 가정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내니 고용이 일반적이다 보니 관련 법과 제도도 잘 정비돼 있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노동 착취’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니와 고용주가 서로 필요한 관계 속에서 공생하는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니와의 관계에서 단순한 고용을 넘어 상호 신뢰를 쌓고, 역할과 기대치를 명확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두바이는 정말 육아 천국일까. 적어도 두바이에서 육아를 경험한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것 같다.
한국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둘째 생각 없으세요?”라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하나 키우기도 벅차다고 말한다. 반면 두바이에서는 내니 제도와 아동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 덕분에 부모가 육아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이 적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단순한 출산 장려금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가운데,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부모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육아 부담을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감당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두바이에서의 육아 환경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모가 자신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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