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짜오 베트남 - 321] 어느 스포츠를 봐도 전임 감독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전임 감독도 아니고 전전임 감독에 대한 근황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베트남 축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면 이야기가 다른 듯 합니다.
박 전 감독이 지난 12월 21일(현지시간) 오랜만에 베트남 축구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베트남 푸토 비엣찌 푸토스타디움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는 2024 아세안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컵은 아세안축구연맹(AFF)이 주관하는 동남아 최고 권위 대회로 ‘동남아의 월드컵’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마침 베트남은 한국인 김상식 감독이 이끌고 있습니다. 박 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 베트남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을 이끌었던 프랑스 출신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선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트루시에는 박 전 감독의 유산과 씨름하다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결국 베트남의 선택지는 다시 한국인 감독으로 돌아갔고, 박 전 감독을 대신해 베트남에 들어간 사람이 김 감독입니다.
이날 승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경기는 귀화 스트라이커 응우옌쑤언손의 데뷔전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브라질 출신인 그는 이날 2골을 몰아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날 경기는 또 조별리그 B조 최종전이었습니다. 베트남은 미얀마를 5대 0으로 대파하고 3승 1무로 조 1위를 차지했습니다. 준결승인 4강에 진출해 싱가포르를 만나게 됐습니다.
싱가포르가 예상 밖 선전으로 4강에 올랐지만, FIFA 랭킹 160위에 불과해 114위인 베트남에 비해 객관적으로 열세입니다. 따라서 베트남은 결승전 진출 확률이 크게 올라가게 됐습니다.
반대편에서는 태국과 필리핀이 준결승을 치르게 됩니다. 필리핀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를 1대 0으로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전력 면에서는 태국이 앞섭니다. 아마도 베트남과 태국이 결승에서 만나는 그림이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 감독이 결승전에서 태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 과거 박 전 감독이 이뤘던 성과를 한국인 감독이 이어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감독은 2018년 이 대회가 ‘스즈키컵’이던 시절 베트남을 이끌고 무려 1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따냈습니다. 당시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도 무수한 화제를 낳았습니다.
그해 12월 7일, 스즈키컵 결승 1차전이 열리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 박 감독은 이륙 직후 등을 다친 도훙중에게 비즈니스석을 내주고 선수 자리인 이코노미석에 앉았습니다.
박 감독은 “부상당한 선수를 편안한 자리에 앉혀야 했는데 잊어버려서 미안하다”는 사과 메시지까지 전하며 베트남 전역을 감동의 물결로 몰아넣었습니다.
우승이 확정된 이후, 경기를 중계하던 베트남 국영 방송 VTV6의 해설자는 “깜언(고맙습니다) 박항서, 깜언 한국”을 연신 외쳐대며 분위기를 격정의 절정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한국과 베트남 간 정서적 거리를 단숨에 좁혀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찬란한 발자취를 남긴 전설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관심의 중심에 있습니다. 베트남 언론은 미얀마전 대승을 관중석에서 함께한 박 전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며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쯔엉티엔아잉이 올린 코너킥을 응우옌 호앙 득이 헤더로 연결했지만 공은 골대를 맞고 나왔다. 이를 본 박 전 감독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응우옌꽝하이의 낮은 슈팅이 골대를 다시 한 번 강타하자 박 감독은 안타까운 마음에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면서 박 전 감독이 세운 찬란한 스토리 소개도 잊지 않습니다.
“박 전 감독은 2017년 말 베트남 축구에 합류한 이후 U23 아시아컵 준우승(2018), AFF컵 우승(2018), 아시안컵 8강 진출(2019), SEA 게임 금메달(2019, 2021),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진출 등의 성과를 거뒀다. 그의 지휘 아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축구의 강자로 자리매김하며 FIFA 랭킹 상위 100위권을 유지했다.”
박 감독은 2023년 계약 종료 후 베트남 감독직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베트남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김상식 감독과 같은 에이전시 소속입니다.
베트남이 여전히 박 전 감독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현직일 때 그가 워낙 인기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박항서라는 이름 석자가 베트남 축구의 전성기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박 전 감독 시절 FIFA 랭킹 100위 안에 처음으로 올랐던 베트남은 그가 물러나기 전까지 100위권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루시에 감독 재임 시절 랭킹이 100위 밖으로 밀려난 이후, 여전히 100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