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짜오 베트남 - 317] 한국에 살면서 ‘정전’이라는 걸 언제 마지막으로 겪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대도시조차 종종 정전이라는 이벤트를 겪습니다. 멀쩡하게 돌아가던 에어컨이 꺼지면서 실내가 깜깜해지면 그것만큼 당혹스러운 게 없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결국 만성적인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을 노리는 베트남은 전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반도체 등 전력 수급에 민감한 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전력 보급이 시급합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장기적인 전력난 해결을 위해 원자력 발전 도입을 공식화했습니다. 베트남뉴스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 공산당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정치국이 원전 개발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원자력 에너지를 국가 에너지 전략에 포함시키겠다는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산업통상부는 이번 결정을 통해 에너지 기본 계획이라 볼 수 있는 국가 전력 개발 계획을 개정해 원자력 발전 정책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산업통상부는 국가 전력망의 발전 용량이 2026년에서 2030년 사이에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베트남은 현재 수력과 화력 발전에 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등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통상부는 이러한 에너지 불안정을 해결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소형 모듈 원자로(SMR)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SMR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모듈을 조립해 일반 원자력 발전소보다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한국, 러시아, 캐나다 등과의 협력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베트남을 방문해 원자력 협력 가능성을 높인 바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이 베트남의 원자력 산업 발전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를 통해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 센터’를 설립할 가능성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간 에너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협력 분야라고 강조하며, 베트남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베트남이 원전을 도입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는 얘기가 이때부터 나왔습니다.
베트남은 과거에도 원자력 도입을 추진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우려와 막대한 건설비 문제로 인해 2016년에 계획을 접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원자력 발전소 2기를 닌투언성에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하고 2030년까지 총 14기의 원전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베트남 정부는 원자력 인력 양성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바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323명의 학생을 러시아에 파견했고, 일본과 협력하여 약 100명의 학생을 원자력 프로그램에 참여시켰습니다. 또한, 베트남전력공사(EVN)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1명의 학생을 해외에 보내 원자력 관련 학문을 전공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육성한 인재 일부는 원전과 무관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책이 바뀐 이상, 이들 전문가는 향후 요긴하게 쓰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현재 산업통상부는 원자력 발전 재개 방침에 따라 법적, 기술적 사항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자력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지침을 만들고 안전장치를 마련할 방침입니다. 각 원전 프로젝트는 국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투자 제안서는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국회에 제출될 예정입니다.
사실 베트남은 최근 몇 년 동안 풍력과 LNG 등 청정에너지 개발을 모색해왔습니다. 하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문제 등에 직면해 합작을 약속했던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기업들이 철수하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베트남은 연간 7%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발전 용량을 12~15%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막대한 발전 용량 확대를 위해 원전이 마지막 보루라는 것을 베트남 정부는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중국을 압박해 관세를 높이는 지금 이 타이밍을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 중국에서 빠져나온 기업을 추가로 베트남에 데려오겠다는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