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비례적 이익 보호 차원
일각선 21세기판 농지개혁에 비유
상법개정으로 투자수급 좋아지지만
코스피 우상향 위해선 실적개선 필요
월가 “韓 투자 매력도 높지 않다”
밸류업 모범기업 메리츠금융지주 보니
인센티브·실적 경영이 성공의 핵심
![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67.58포인트(2.78%) 내린 2,360.58,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34.32포인트(5.19%) 내린 627.01로 마감했다. 2024.12.9[이충우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412/21/news-p.v1.20241209.830bcf3278fb4f7c98fae8e794aea124_P1.jpg)
‘상법개정안만 이뤄지면 코스피 5000 간다(?)’
일부 투자자와 인터넷 댓글에선 위와 같은 주장이 나옵니다. 최대주주(경영권 지분)와 소액주주의 주식 가치가 차이가 나다보니 투자자들이 코스피·코스닥을 외면하고 이 부분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란 겁니다.
일례로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이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최근 매각될 때, 롯데렌탈은 기업가치 2조8000억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발표 당일 롯데렌탈 시가총액이 1조2000억원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경영권 지분가치가 소액주주 지분가치의 2.3배에 달하죠.
‘상법개정안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불균형이 조정될 것이고, 소액주주 지분도 정당한 가치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되고 코스피가 5000까지 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상법개정안이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기업의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인 이사진들이 소액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건을 말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인근의 한 카페에서 열린 국내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반투자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2024.11.20 [김호영기자]](https://pimg.mk.co.kr/news/cms/202412/21/news-p.v1.20241120.48520a5157d2495b9a9216342f1ee0b1_P1.jpg)
혹자는 이를 1940년대 후반 농지개혁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지주(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가 독점한 지분가치를 소액주주에게 나눈다면, 소액주주들도 열심히 차익분을 재투자할 것이고 (자영농의 증가에 따른 생산량 증가), 이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죠.
상법개정안은 특정 재벌가문이 지배해오던 한국 그룹사의 체질 변화를 의미합니다. 상법이 개정되면 A계열사가 어려워지는 것을 B계열사 돈으로 지원하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B계열사 소액주주 입장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서 한 가지 더 따져봐야 합니다. 과연 상법개정안이 이뤄진다고 코스피가 5000을 갈 수 있을까요?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에 들어오려고 할까요?
“거버넌스 개혁(상법 개정안)이 문제가 아니다. 국내 기업의 실적개선이 미약한 게 문제다. 저성장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이야기다.”
최근 기자와 만난 복수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관계자들은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큰돈은 미국계 자산운용사·펀드가 운용합니다. 이른바 ‘월가’이죠. 한국 코스피의 약 3분의 1을 외국인(주로 기관투자자)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월가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증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국내외 IB(투자은행)들이 모두 한국이 내년도부터 1%대 저성장이 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칠 경우,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기업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주가가 오르고 증시가 우상향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수급이고 또 하나는 실적입니다.
상법개정안을 하게 될 경우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장점이 있고 이는 수급 측면에서 다소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펀더멘탈은 바로 실적입니다. 한국기업 실적 전망치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 한국증시의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한 기관투자자는 ‘월가의 시선’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월가가 2000년대 초중반 중국에 많이 투자했던 이유는 당시 중국의 실질 성장률이 7~8%, 물가 상승률이 4~5%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월가가 중국 투자비중을 확 낮춘 상황이죠. 중국의 실질 성장률이 4~5%, 물가 상승률이 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환율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연 5% 수익률을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월가가 포트폴리오서 중국 비중을 낮춘 이유입니다”
이를 한국에도 대입하면 다음과 같아질 듯 합니다.
“한국의 실질 성장률은 1%대 후반, 물가 상승률도 1% 후반이 예상됩니다. 명목 성장률이 3%대 중후반인데 환율은 불안정합니다. 어느 월가 사람이 한국에 대한 포트폴리오 비중을 늘리려고 할까요?”
실제로 인도의 경우는 과거의 중국과 같은 명목 성장률(연 10% 이상)이 나오고 있고, 인도 증시는 올해만 20% 이상 오르는 엄청난 활황입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간에 한국증시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크게 늘릴 유인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입니다. 상법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핵심은 바로 기업 실적을 높이는 겁니다. 즉, 거버넌스 개혁보다 더 신경써야 하는 것은 기업실적 개선입니다.

메리츠금융지주가 대표적인 모범사례입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2년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이른바 ‘원 메리츠’ 체제를 꾸렸습니다. 이는 미국 알파벳(구글, 딥마인드 소유), 버크셔해서웨이(보험·제조·유통사 소유) 등이 자회사를 100% 지분으로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원 메리츠 출범 선언 이후 주가가 4배 이상 올랐습니다. 모범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들면서 실적을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핵심 자회사 중 하나인 메리츠화재는 상반기 매출 5조7558억원, 영업이익은 1조3371억원으로 각각 1년 전보다 6.8%, 21.3%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AT커니’ 출신인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와 이범석 부사장이 조직문화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증권업계 IB부문 한 임원급 관계자는 “지배구조 선진화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메리츠의 경우엔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평했습니다.
메리츠화재의 성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철저한 성과주의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는 36등급으로 세분화해서 성과를 평가합니다. 성과급은 이연해서 지급하는 게 원칙이며, 하위등급을 받을 경우 연봉은 감액됩니다. 반면 상위등급은 연봉과 승진에서 모두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77년생인 김 대표가 40대에 대표에 오른 것도 이 같은 철저한 성과평가 주의 덕분입니다. 김 대표는 매번 상위등급 평가를 받으면서 고속 승진했습니다.
둘째,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김 대표는 굵직한 의사결정만 할 뿐, 세세한 실무까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고절차를 간소화하고 실무자의 자율과 책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보고를 위한 노동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셋째, 직장인으로서는 얻기 힘든 막대한 인센티브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용범 전 메리츠화재 대표(현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는 지난해 보수액이 55억원,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는 지난해 보수액이 약 24억원입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공시를 통해 “당사는 성과급 상당액을 이연하여 이를 주가연계 등 장기성과와 연계해 지급하고 있다”라며 “이번에 공시한 금액은 2017년 이후 발생한 성과급 이연분의 2023년도 지급분과, 2022년 회계년도 성과에 따라 발생한 성과급 지급분을 합친 금액”이라고 공시했습니다.
즉,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50억원, 24억원 등의 보수는 ‘1/n’ 해서 받은 그해 당해년도 보수일뿐이고, 더 큰 성과급이 주가와 연동된 것입니다.
IB업계선 전문 경영인도 수백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곳이 메리츠금융지주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인센티브가 메리츠금융지주 실적개선에 영향을 준 것이죠.
취재를 마치다 보니, 상법개정안과 더불어,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인센티브였습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면서 승계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전문경영인을 믿어줬습니다. 덕분에 조 회장은 국내 주식부호 3위(10조원 재산가치)가 됐죠.
개인적으론 재벌체제의 문제를 상법개정안만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그룹사 체제의 장점이 희석되면서, 동시에 계열사 간 각자도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쟁력이 악화되는 수순이죠.

차라리 메리츠금융지주와 같이 한 지주회사로 일원화하도록 유도하고 (원 지주회사 설립), 창업주 일가든 혹은 전문경영인이든 능력 있는 사람이 경영성과를 주식으로 받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원 지주회사’ 설립이 사정상 어렵다면, 중간지주회사 등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상법개정안을 추진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CEO가 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인센티브를 통해 능력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빅테크들이 뛰어난 성과를 이루는 것도 결국 전세계 인재를 끌어들이는 보상체계, 바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덕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진정으로 국내 증시를 밸류업시키려면, △임직원에 대한 과감한 보상체계 설립 △이를 통해 기업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린 기업에 한해 각종 세금 인하 및 포창 등 인센티브를 줘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주주가 밸류업에 성공할 경우 상속세를 완화해주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