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투어는 이제 세계 3대 투어로 꼽힐 만큼 성장을 계속해왔다. 이렇게 한국 여자골프가 성장한 데에는 무엇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이하 KLPGT) 경영진의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KLPGT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항상 긴장감을 갖고 진정성 있게 나아가겠다는 KLPGT 이영미 대표를 만났다.

KLPGA투어는 1978년 처음 KPGA에서 만들어졌던 ‘여성부 투어’에서 1988년 독립 후 성장을 거듭하며 이제 세계 3대 투어로 자리 잡았다. 1978년 1개였던 대회는 2024시즌 정규투어뿐 아니라 드림투어, 점프투어, 챔피언스투어까지 총 76개 대회로 늘었다. 상금 역시 1989년 처음 1억을 넘기고 2012년에는 100억을 돌파한 후 올해는 361억 원에 이른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현상에 대해서 결과만 얘기할 뿐 그 과정이나 뒤에 어떤 것들이 뒷받침되고 있었는지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정상에 오른 골퍼와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위상은 회자되지만, 그 뒤에서 그림자로 밑거름이 되었던 존재들은 관심 밖이다.
무엇이든 활짝 핀 나무나 꽃의 아래에는 뿌리가 있는 법. KLPGT 이영미 대표 역시 화려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의 발전을 위해 뿌리처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인물이다.
2012년부터 KLPGA 이사로 협회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 대표는 2016년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행정 실무를 쌓았다. 그리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KLPGT 공동대표를 거쳐 2023년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10년 넘게 협회에서 일한 그는 누구보다 투어에 애정을 쏟으며 무슨 일이든 힘 있게 추진해왔다. 올해 KLPGA 창립 46년만에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강동구 길동에 새롭게 마련한 KLPGA 사옥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2024시즌 KLPGA투어가 마무리됐다. KLPGT 대표로서 올 한해를 평가한다면. 2024시즌 KLPGA투어는 역대 최대 상금 규모로 평균 상금 10억 원 시대를 열었다. 특히 3승을 차지한 다승왕이 5명이나 나오는 등 다양한 기록이 경신되며 역사를 새로 쓰는 한 해였다.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KLPGA투어가 세계적인 투어로 자리 잡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KLPGT는 KLPGA 정규투어부터 드림투어, 점프투어, 챔피언스 투어까지 모두 관장하고 있다. 시즌에는 일주일이 쉴 새 없이 돌아갈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주 대회장에 나가 문제는 없는지 체크하려고 한다. 대회장에 있으면, 스폰서 관계자분들이나 기자분들이 ‘매일 나오시네요, 오늘도 나오셨네요, 어제는 어디 다른 곳에 가셨었나봐요’ 하면서 인사를 한다. 모를 것 같지만 다 알고 있다.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잠깐 얼굴만 비추는 것도 안 된다.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6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내 나이가 많은데, 만나는 분들이 부담을 느끼면 안 되지 않나. 어린 선수들도 많고, 스폰서분들도 저보다 젊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만나려고 한다. 또 선수 출신이다 보니 ‘파이팅’ 정신도 있는 것 같다.
선수로서의 이력도 화려하다. 1985년 KLPGA 정회원으로 입회해 정규투어에서 3승을 비롯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8승, KLPGA 챔피언스투어에서 9승을 수확하는 등 개인 통산 20승을 기록했다. 언제 처음 골프를 시작했나. 처음 골프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등하굣길에 친구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골프 연습장이 있었는데, 우연히 골프 스윙을 따라하다 눈에 띄어 시작하게 됐다. 내가 스윙을 곧잘 따라 했던 것 같다. 프로가 되려면 골프를 정식으로 배우고 연습을 해야 하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때라 2년 동안 집에 말을 안 하고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를 쳤다.
배운 적도 없는 스윙을 곧잘 따라 할 정도로 골프에 재능이 있었던 건가. 재능은 있었지만 프로 테스트는 8번 만에 통과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당시 클럽 가격이 40만 원 정도로 비쌌다. 어머니가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클럽을 사주셨는데, 자꾸 프로 테스트에서 떨어지니 어머니께 죄송하기도 하고 오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플라자CC(구 명성CC)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 도전해 1985년에 프로 자격증을 땄다.
JLPGA투어에서 8승을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활동하게 됐나. 1980년대 국내는 여자 대회가 많아야 2~3개 정도였던 때라 일본 JLPGA투어로 넘어가 활동하는 프로들이 많았다. 이 대표 역시 1987년 JLPGA투어에 입성해 1989년 비공식 대회였던 ‘기븐 레이디스’에서 첫 우승컵을 안았다. 이후 JLPGA투어에서 8승까지 거두게 됐다.
JLPGA투어에서 활동할 때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걸로 안다. 일본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을 많이 도와줬다. 통역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 JLPGA 협회에서 외국인 선수분과 위원장을 맡기더라. 외국인 선수들이 불편하거나 차별받는 부분이 있으면 협회에 얘기 하고, 또 협회의 의견을 선수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율했다.
선수로 뛰다 행정가로 변신했다. KLPGA 협회 업무는 어떻게 맡게 됐나. 일본투어에서 뛰어도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항상 한국 여자골프에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한국 여자골프가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JLPGA 협회에서 경험한 것들을 얘기하면서 배울 만한 시스템을 제안하거나 간혹 쓴소리도 했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 KLPGA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처음에는 고민을 하다 JLPGA투어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사직을 맡으면서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매년 대회 수와 상금액을 늘리면서 스폰서십을 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후배 선수들이 많은 대회에 참가하고 KLPGT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면, 스폰서를 찾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잘나갈 때일수록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더 대비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협회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고, 아이디어도 많아야 한다. 선수가 경기하다 볼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갖고 있던 기술을 꺼내 쓰지 않나. 기술이 많고 내공이 깊은 선수가 잘되 듯 협회도 마찬가지다. 매년 주최하는 대회의 스폰서라도 협회가 이렇게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고 보여드려야 한다. 때론 영상까지 만들어 보여드리고 있다. 그냥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고 매년 똑같은 매뉴얼로 하면 스폰서십이 이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 선수들이 투어에서 너무 잘 해주고 있지만 KLPGA 대회 수를 늘리고 높은 상금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협조도 필요하다.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투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스폰서에 대한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면 좋겠다. 협회에서 열 마디 하는 것보다 선수들의 한 마디가 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협회 직원들에게 항상 ‘긴장감’을 강조하는 걸로 안다. 긴장감의 끈을 놓는 순간 바로 실수가 나오고 시대에 뒤떨어진다. 반면 긴장을 하면 눈빛이 다르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협회에는 내 것이 없다.잠깐 자리를 맡아서 앉아 있는 것뿐이다. 앉아 있는 동안은 긴장감을 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KLPGT가 더 잘 돌아 갈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다.
내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해외에서 드림투어를 개최하는 걸로 안다. KLPGT는 글로벌 투어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외국 선수들에게 준회원 선발전과 점프투어를 개방하고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토너먼트(IQT)’를 개최해왔는데, 글로벌 투어로의 도약을 위해 AGLF와 함께 해외 드림투어를 개최하게 됐다. 아시아의 골프 허브로 자리 잡은 KLPGT에 큰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내년 1월 인도네시아, 2월에는 필리핀에서 펼쳐지는 드림투어를 통해 많은 선수가 해외 무대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5년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2025년 역시 최고의 시즌을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규투어뿐만 아니라 드림투어, 점프투어, 챔피언스투어까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울러 한국여자프로골프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는 스폰서들과 동반 성장을 이루고, 팬분들에게도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