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애란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올 한 해 많은 인기를 얻은 한국 소설이다. 새 학기가 되자 선생님이 모두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건 조건이 있다. 총 5개의 문장으로 '나'를 표현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그 '작은 거짓말'을 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 재치 있는 게임이었다. 친구의 말 가운데 어떤 게 거짓이고 어떤 게 가짜일까. 그건 재미 삼아 파놓은 함정일까 아니면 서늘한 비밀이 담긴 진실일까. 중심인물은 지우, 소리, 채운. 지우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엄마의 애인과 한집에 산다. 남이나 다름없는 아저씨를 떠나려면 돈을 벌어 독립해야 한다. 돈을 벌려면 도마뱀 용식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우는 소리에게 용식이를 부탁하기로 한다. 소리는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이라던 지우의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채운의 엄마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뜻밖의 장면들은 우리 삶의 정면에서 늘 일어나지만 때로 그건 마치 불충분한 거짓처럼, 때로는 완벽한 진실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일까.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SF 문학계 젊은 거장 켄 리우의 신작 소설집. 중국계 미국인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리우는 류츠신의 걸작 '삼체'를 영어로 번역해 알리는 등 번역가로도 활동한 천재적인 인물이다. 13편의 단편소설을 꾹꾹 눌러 담은 리우의 소설집 '은랑전'에선 단편 '비잔티움 엠퍼시움'에 눈길이 간다. 고통의 상품화를 주제 삼았다. 중심 인물은 탕젠원. 그는 '몰입 체험 슈트'를 통해 가상현실을 오감으로 감각하는 근미래를 살아가는 남성이다. 슈트를 착용하면 가상현실이 펼쳐진다. 눈 떠보니 포연(砲煙) 속에서 "뒤처지지 말고 잘 따라오라"는 아버지 고함이 들린다. 지금 탕젠원은 거주지를 탈출하는 난민 소년을 체험 중이다.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총 맞은 어머니의 뒤통수에서 나는 피냄새까지도 재현되는 가상현실의 세상을 탕젠원은 살고 있다. 탕젠원은 가상현실 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켜 '기부자의 기부금이 난민에게 직접 전해지는' 방식의 전혀 새로운 기부를 도모한다. 자선단체로부터 세계인의 '연민 공급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자선단체를 거치면 불필요한 원금이 소모되는데 이를 막으려는 것. 리우는 이처럼 현실의 문제를 소설적 가상과 조합해 질문으로 건네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최근 킬리언 머피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영화계와 문학계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1985년 아일랜드 소도시 뉴로스의 혹독한 겨울로 소설은 시선을 이동한다. 실업과 빈곤으로 모든 시민들이 고통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그저 운이 조금 좋았기에 극심한 가난과 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안온한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모든 걸 잃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펄롱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가톨릭 수녀원의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수녀원에서 수십 년간 은밀하게 벌어졌던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다. 타자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 모든 안온한 일상을 놔버려야 한다. 아일랜드에서 실제 벌어졌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쟁점화했다고 알려진 이 소설은 세계인의 극찬을 받았다. '침묵은 수월하고 용기는 자멸적인' 삶의 비의를 서늘하게 그린 이 소설에선 "삶에서 그토록 많은 부분이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그럴 만하면서도 동시에 심히 부당하게 느껴졌다"란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펴냄.


인간 정신이 불멸하는 시공간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공간으로의 출입권을 팔고 사는 일이 가능하다면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정유정 작가의 소설 '영원한 천국'은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질문한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작가가 밝혔던 이 소설은 데이터화된 인간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펼쳐보이며 수많은 독자의 호평을 받았다. 의뢰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가상세계를 활용해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 해상과 그에게 설계를 의뢰한 경주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집트 하바리아 사막과 일본 홋카이도의 유빙지대를 직접 답사한 정유정 작가는 두 개의 대비되는 시공간을 독자들 눈앞에 펼쳐보이는데 가장 뜨거운 이미지와 가장 차가운 이미지는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거울과 같다. 인간이 데이터화되는 이 소설처럼, 그런 세상은 현실로 다가올까. 정 작가는 인터뷰에서 "인간은 기어코 그런 시대를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취재 과정에서 느껴졌다. 이번 책은 상상이지만 결국엔 자기만의 가상극장 안에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악의 3부작을 완성한 정 작가의 이번 소설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자신의 글쓰기를 파괴적 욕망과 성취적 욕망 사이를 오가는 길항으로 보는 '마에스트로' 정 작가는 이제 여기까지 왔다.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이병률 시인의 7번째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601번으로 출간됐다. 표제작부터 펼친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중략)/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시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부분)은 생의 의지 앞에서 힘을 잃었던 시인의 심연을 짐작하게 한다. '적'은 단지 의도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바로 그곳에 그 순간에, 그 스스로의 자신으로서 망연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들의 고유명사일 것이다. 모든 '적'은 개인화될 준비를 마치고 있지만 그 모든 '적'은 각자만의 경험이어서 타인의 '적'을 우리가 경험할 순 없다. '나는 한 자리에 있었으며 평범에 집중했지만 그마저도 평범했으며 역시 그마저도 지탱할 힘을 잃어 자처한 대역이었습니다'(시 '내가 원하는 것' 부분)라는 문장에선 그가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대리자, 시인은 시의 말을 대신 쓰고 있을 뿐인 시의 숙주일 때가 있지 않던가. 이병률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