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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게 반복하는 수학 선행은 독”...대치동 맘카페서 난리난 ‘이 학원’ 비법은 [톡톡 에듀]

유주연 기자
입력 : 
2024-12-15 08:08:19
수정 : 
2024-12-16 11:13:23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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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생각하는 황소'의 이정헌 대표는 대치동식 선행 속도가 너무 빠르며, 모든 아이들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한, 선행을 빠르게 여러 번 돌리는 공부는 수학 실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모르는 문제를 붙들고 끙끙대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짜 실력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더불어, 부모와의 관계가 수학 실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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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황소 설립자 이정헌 대표 인터뷰
11월 입학시험에 1800명 몰려 북새통
‘선행 속도=실력’ 아닌데 불안감 너무 과해
얕게 여러번 반복하는 선행은 수학 공부에 독
모르는 문제 붙들고 고민하는 과정서 실력 늘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정서적인 힘’도 중요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사진제공=생각하는 황소]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사진제공=생각하는 황소]

대치동에서 ‘수학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학원이 있다. ‘생각하는 황소’ 얘기다. 매해 11월 보는 입학시험일이면 시험을 보려는 초등학생과 학부모들로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올해도 330명 뽑는 초등 입학테스트에 1800명이 넘게 몰리면서 시험 접수 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황소 고시’라고 불리는 입학 시험을 준비시켜주는 학원이 성행할 정도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수학은 가장 많이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과목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만 지나도 ‘선행 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부모들 사이엔 ‘늦어도 초등학교 졸업 전 중등 수학을 끝내야 한다’거나 ‘중학교 졸업 전 미적분까지는 다 마쳐야 한다’는 얘기가 돈다. 최근에는 선행 추세가 더 빨라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 진도를 빨리 빼고 다져야 입시에서 성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등학교에 가면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넘쳐난다. 왜 그럴까.

11일 대치동 생각하는 황소 본원에서 만난 이정헌 대표는 “대치동식 선행 속도가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5년 대치동에 생각하는 황소를 설립한 이후 20년째 수학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4년 전까지는 직접 강의를 했다.

그는 “선행·심화를 하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모든 아이들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행으로 수학 공부를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올바른 수학 공부법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대표와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본다.

- 황소 학생들도 선행과 심화 공부를 한다. 초등 과정을 1년~1년 반 만에 끝내고, 중등 과정을 시작한다.

▶학원을 시작할 때 가르치려고 했던 대상이 KMO(한국수학올림피아드)시험과 지금의 영재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었다. 이 학생들에 초점을 맞춰 커리큘럼을 짜 보니 선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생각하는 황소는 모든 학생에게 잘 맞는 학원이 절대 아니다. 황소가 정답이 아니다. 못 들어 왔다고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공부하면 된다.

우리 학원은 예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입학해 초등과정 수업을 12~18개월에 마무리한다. 그런데 요즘 대치동에선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등 수학을 시작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너무 걱정이 된다. 이런 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학생들은 1년에 대치동에서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한다. 이 속도를 따라가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 학원에 중등 과정을 잘 마쳤다면서 시험 보러 오는 학생들이 많은데, 통과한 학생들은 2~3%에 불과하다. 합격해도 낮은 레벨에 붙는다. 요즘 이런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다보니 걱정이 된다.

- 많은 학생들이 선행을 여러 번 돌리고 반복하는 학습을 한다. 그래야 실력이 다져진다고 믿는다.

▶학부모님들이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게 진도다. 앞선 과정을 공부하는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같아 쉽게 불안해한다. 하지만 진도는 실력이 절대 아니다. 선행을 빠르게 여러 번 돌리는 공부는 수학 실력에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안 좋은 공부 습관을 갖게 만들 뿐이다. 수학은 모르는 문제를 붙들고 끙끙대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짜 실력이 늘어난다.

얕고 빠르게 훑는 식으로 공부하면 ‘수박 겉핥기’식 공부가 습관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렇게 선행을 뽑는 과정에서 학습 태도가 많이 망가진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어려운 부분을 건너뛰는 식으로 선행을 하면 사고력이 길러지지 않아, 여러 번 공부 했어도 결국 수학 못 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진도가 느리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문제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붙으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올라 진도도 따라잡을 수 있다. 이 과정을 잘 견뎌야 한다.

- 진도가 늦어도 결과가 좋았던 학생들을 많이 보셨나.

▶학부모님들에게 우리 학원에 선행을 시키지 말고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학생들의 실력을 위해 말씀드리는데도 잘 믿지 못하시는 것 같다.

우리 학원에 선행 없이 입학한 4학년짜리 학생이 있었다. 초반에는 매번 테스트에 꼴찌를 했고 가장 늦게까지 문제를 못 풀어 남았다. 하지만 태도가 참 좋았다. 그 학생에겐 수업 내용이 처음 접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이 다 안다고 생각해 대충 수업을 흘려들을 때, 그 학생은 더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고 좋은 질문도 많이 했다. 이 학생은 최종 고등과정 시험에서 전체 학생 중 압도적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최고 레벨이 나왔다. 제대로 된 공부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면 된다. 이 때 중요한 건 부모가 주는 ‘정서적인 힘’이다.

- 정서적인 힘이 어떤 건가.

▶부모와의 관계가 수학 실력에 큰 영향을 준다.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부모와 유대관계가 좋은 아이들이 결과도 좋았다. 어린 초등학생들은 그릇을 조금씩 키워줘야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학생이라도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중간에 꺾일 수 있다.

많은 부모님들은 쉽게 불안해한다. 아이가 시험을 못 보거나, 문제를 오랫동안 못 풀면 못 견디고 아이들에게 압박을 준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정석대로 공부하지 않고, 다른 친구의 답을 베낀다거나 순간의 위기만 모면하려 한다.

반면 위에 예를 든 학생은 성적이나 등수에 대해 힘들어하는 느낌이 조금도 없었다. 늦어도 자기 페이스 대로 끌고 나가도록 부모님들이 기다려주고 지지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부정한 방법을 쓰기도 하고,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다.

- 누구나 수학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학생마다 맞는 속도가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은 현재 학교 진도를 못 따라갈 수 있다. 이 경우엔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다 배웠던 과정을 다시 돌아가 공부해야 한다.

심화가 중요하다고 아이가 손도 못 대는 문제들이 가득한 문제집을 건네줘선 안 된다. 아이가 70~80% 정도 풀 수 있는 문제집을 골라 한 권을 끝내도록 한다. 열 문제 중 세 문제를 틀렸다면, 틀린 그 세 문제를 오랜 시간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을 끝내야 다음 단계 선행으로 나갈 수 있다.

선행은 이전 단계가 채워진 상태에서 하지 않으면 모래성 쌓기나 다름없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의욕도 사라진다. 아이의 역량이 100이라면 120, 130 정도 노력이 필요한 문제에 도전하게 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선행을 두 번 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한 번에 제대로 해야 한다. 아이 속도에 안 맞는 ‘학원 주도 선행’을 하면 채워지는 게 없을 것이다.

- 수학 공부에 상당한 시간을 써도 수학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다.

▶ 대다수 학생들의 공부법이 이렇다. 개념 설명 듣고, 문제 풀어 채점한 뒤 모르는 문제는 오답노트를 만들어 선생님에게 질문하거나 답지 보고 이해를 한다. 그런데 모르는 문제 별표치고 학원 가서 설명 들으면서 수학 공부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수능에서 좋은 등급 받기 어렵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답을 맞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혼자서 수학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고 끙끙대며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학 실력이 길러진다. 수학 공부는 궁극적으로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됐다고 이 능력이 키워지지 않는다.

수학 잘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혼자 오랜 시간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다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해도 못 푼 문제는 바로 답을 볼 것이 아니라 표시만 해두고 넘어가면 된다.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나서 다시 풀어보면 된다. 또 못 푼다면? 시간이 지나 수학 공부를 좀 더 해서 시간이 지난 후 또 도전하는 것이다.

이번에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광남고 학생도 우리 학원(광진점)에서 3레벨(밑에서 두 번째 레벨)로 시작한 학생이다. 늦어도 깊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실력을 쌓는다면 어느 순간 탄력이 붙어 빨리 갈 수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하루 열 문제라도 고민하며 푸는 습관을 들이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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