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책사’ 박선원 민주당 의원 인터뷰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인해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가치외교’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을 위한 선물과도 같았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1기 정부와 달리 정치·이념 영역에서까지 중국과 거리두기를 펼쳤는데, 한국은 이에 적극 동조했다. 그 결과 한국은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입지를 미국으로부터 확인받았다. 민주주의 정상회의까지 개최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가치외교의 근간을 흔들었다. 여기에 더해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인’ 면모가 더욱 강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책사인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말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가치외교에 입각한 대외정책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고, ‘유통기한’이 종료된 만큼 상호주의 실리 외교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낸 박 의원은 주상하이 한국 총영사를 지내고,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한 만큼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일하고 학자 시절 연세대에서 통일 부문 연구교수로 재직한 북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박 의원은 인터뷰에서 외교는 결국 ‘가치’보다는 ‘실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감국가 지정 사태를 예로 들었다. 박 의원은 “미국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한미동맹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러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동맹으로서의 선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핵 비확산 체제가 무너지면 미국의 패권은 흔들린다”며 “미국 민주당 관료들이 정권 교체 직전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으로 한국이 얻은 실익이 분명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박 의원은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확립은 당연한 명제”라면서도 “실제 상호주의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며 “일본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응답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한국의 객관적 지위에 입각한 전략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당면한 과제인 대미 통상외교 방향성에 대해 그는 “국제 분업 체계에서 한국은 화장품부터 인공위성까지 만들 능력이 있는 국가이며,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며 “미국과 전략 대화를 통해 미국의 산업 정책에 발을 맞추며 전략 지도를 같이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게 제시할 수 있는 통상 협력 방편으로는 에너지 부문을 거론했다. 박 의원은 “한국 입장에서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현재 원유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한 뒤 이를 정유해서 돈을 버는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앞으로는 원유를 직접 정유하겠다고 한다”며 “그 공간을 미국 원유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플로리다 웨스트 팜 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재진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마러라고 리조트에 묵을 예정이다. [사진=AFP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3.d56a75e3aa634e04b84b1eafcad64f95_P1.jpg)
최근 논란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지지에 대해서는 “올해에 받으면 좋겠다”며 재차 지지를 보냈다. 박 의원은 “트럼프가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며 “그 변화는 러우전쟁 종전, 북한 문제 해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러우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시작되며 세계 무역이 활성화된다”며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에게 또다른 기회가 생기는 셈”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의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 관계도 개선된다”고도 전망했다.
러우전쟁 종전 논의와 북한 문제 협상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면서 두 사안에 북한이 모두 연결됐기 때문이다.
러우전쟁 종전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북한과 소통하고 있다는 깜짝 발언을 최근 내놨다. 국내에서는 급격한 전개에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박 의원은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오히려 “코리아 패싱을 문제 삼는 행위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의원은 “북한 문제 해결이 반드시 남북미 3자 대화를 통해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없다”며 “미북대화가 먼저 갈 수도 있는 건데, 기계적으로 한국이 끼려고 하면 오히려 미북대화 역시 진행이 더딜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상호 행동 반경의 신축성을 인정하면 된다”며 “1990년대 초부터 약 30년 동안 미북 접촉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한국이 배제되는 모양새가 연출된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6개월 이상 한국이 패싱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의 구조 상 한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짚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방문하고 종합훈련을 지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https://pimg.mk.co.kr/news/cms/202504/13/news-p.v1.20250413.debdf49983894e0eb8d3601d88761247_P1.jpg)
대북정책은 미북관계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박 의원은 “미북 사이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면 남북 양쪽도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남북이 대북전단을 보내고 오물풍선을 띄우는 행위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북한에 대화하자고 공개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며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국이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봤다.
박 의원은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부터 꾸준히 통일을 제안해 왔기 때문에 적대적 두 국가론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이 이를 철회하도록 하는 해결책은 군사적 긴장 완화가 유일해 보인다”며 “적대적인 분위기가 완화되고 민족적 특수관계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1기 때보다 미중경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박 의원은 한국에게는 오히려 바이든 정부 때보다 지금이 기회가 열려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은 미중경쟁을 패권경쟁으로 봤지만 트럼프는 무역분쟁으로 본다”며 “미국이 중국과 무역 관계에서 이용할 부분이 있으면 봉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는 이 틈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새로운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기 보다는 과거 협력 수준을 복원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