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예산 쓰지도 않고 부족하다 거짓말”
2022년 강원 산불 총사용 예비비 6000억원↓

영남권 산불 피해가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른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28일 재난 예비비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이 ‘야당의 예비비 삭감으로 산불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은 이미 충분하다’며 여당이 정쟁화를 시도한다고 맞불을 놨다.
지난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부는 ‘비상금’ 격인 예비비를 4조8000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절반인 2조4000억원으로 삭감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 예산에서 재난·감염병 대응 등 사용 목적이 정해진 목적 예비비는 1조6000억원, 용처에 제한이 없는 일반 예비비는 8000억원으로 감액됐다.
여당은 즉시 사용 가능한 재난 예비비가 약 6000억원에 불과하며, 추가 재난·재해에 대비해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본예산 예비비 삭감 폭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예비비 2조원을 충분히 확보하자고 주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당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삭감한 ‘재해대책 목적 예비비’를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감액한 목적 예비비 1조6000억원 중 재난 대비용 가용 예산은 4000억원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김 정책위의장은 “목적 예비비 1조6000억원 중 1조2000억원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고교 무상교육 등 사업 소요경비로 지출하도록 확정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부처별 재난재해비’에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예산도 1998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산림청 예산 1000억원 가운데 786억원은 이미 재선충 방제에 집행됐고, 행안부와 환경부도 이미 466억원의 예산을 집행했다는 얘기다.
반면 민주당은 여당의 ‘예비비 복구 요구’가 정쟁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올해 예산 삭감과 상관없이 아직 불용 예산이 충분하고, 편성된 예산을 다 사용한 이후에 추경을 통해 증액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당이)마치 예산이 삭감돼서, 예산이 없어서 산불 대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 예비비 9700억원, 예비비 2조4000억원이 있다”며 “이 중 재난에만 쓰라고 목적이 특정된 예산만 해도 1조6000억원이고 나머지 예산도 재난 용도로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가족을 잃고 전 재산이 불타고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이재민 앞에서 거짓말하면서 장난하고 싶나”라며 “최소한의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여당을 질타했다. 전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여당이)산불을 빌미로 예비비 2조원을 복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며 “산불 진화·피해 복구가 우선일 때에 또다시 정쟁만 일삼자는 저의를 도대체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관 부처 예산이 부족하면 목적 예비비 1조6000억원에서 집행이 가능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재해대책 국고채무부담행위로도 1조5000억원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매일경제가 정부 예비비 사용명세서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강원 지역의 대규모 산불 당시 산림청이 산불피해지 벌채 사업 등에 사용한 목적 예비비(부처별)는 316억원, 총 재해대책용 목적 예비비는 5437억원이었다.
두 비용을 모두 합치더라도 6000억원에 미치지 않는다. 다만 이번 영남 산불은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당장 집행할 수 있는 예비비 규모를 먼저 산정하고 필요시 예비비를 추가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