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외교문서 38만쪽 공개
金주석 사망에 전세계 정보전
한국을 민감국가로 찍었던 美
당시에도 명확한 이유 안 밝혀
金주석 사망에 전세계 정보전
한국을 민감국가로 찍었던 美
당시에도 명확한 이유 안 밝혀

외교부는 30년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1994년 외교문서를 28일 공개했다. 분량은 무려 2506권 38만여 쪽에 달한다. 문서에는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한국 외교당국이 주요국과 나눈 긴급한 외교 소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북한은 당시 김일성 주석이 심장혈관 이상, 동맥경화 등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타살 가능성도 거론됐다. 주중 러시아대사관 참사관은 김하중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와 만나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남북) 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김일성의 사망을 촉진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후계자 김정일과 그가 이끌 북한에 대해서도 부정적 전망이 다수였다. 스탠리 로스 당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당시 주미대사관 공사와 면담에서 "김정일이 승계에 성공하더라도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통성이 결여돼 있는 데다 경제난으로 일정 기간 이후 많은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김정일 체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여기에는 덩샤오핑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중국 외교부의 한 인사는 "김일성은 과거 중국 방문 시 덩샤오핑에게 아들 김정일 문제를 부탁(托孤·탁고)해두었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생존해 있는 한 중국 정부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에너지부(DOE)는 과거에도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하면서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당시 한국 외교당국은 미국이 이유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며 미국 측에 명단 배제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차 한미 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에서 미국에 민감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가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핵 관련 문제로 유추한 정황도 있다. 외교부는 당시 내부 검토를 통해 "핵무기 개발 관련 1970년대 한국의 핵정책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민감국가 지정 이유를 추정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독자 핵무장' 움직임을 언급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 민감국가 지정 사유에 대해 '외교 정책'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 함의가 있는 '보안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 제기된 핵무장론이 지정 이유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번에도 미국은 3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