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야권의 대표적인 험지로 꼽히는 부산을 찾았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부산 금정구 구청장 재보궐 선거 이후 5개월 만의 방문이다.

이 대표의 이날 부산 일정은 국민의힘 소속인 박형준 부산시장 면담과 북극항로 개척 간담회, 송기인 신부와의 만남 등으로 짜였다.

그러나 일정은 부산 표심을 얻으려는 이 대표 측 기대와 다르게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이 대표는 박 시장과 지역 균형발전 등 현안을 논의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처리와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비공개 면담 후 박 시장은 "대단히 실망했다"며 "이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냉담하게 대응한 것은 저를 무시한 것을 넘어 부산 시민들을 냉대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현장에 동행했던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사전에 당 대표 비서실과 시장 비서실이 협의한 의제가 있었는데, 박 시장이 전혀 다른 의제를 꺼냈다"며 "다음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들이받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은 부산의 미래를 논의하려 했는데, 시장이 자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부산시장께서 기대했던 답변을 듣지 못해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당이 부산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폄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어느 정치인이 지역과 단체장을 무시하려고 방문하겠나. 시장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표현이 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날 예정됐던 이 대표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 신부 간 차담은 취소됐다. 민주당은 언론 공지를 통해 "송 신부의 건강 사정으로 차담이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전날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2023년 9월 자신의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와 관련해 "당내 일부와 (검찰이)다 짜고 한 짓"이라고 한 발언한 영향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송 신부는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후보의 공동후원회장을 맡았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김두관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국민 통합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해놓고 국민 통합은커녕 당내 분열을 조장하는 이 대표의 본모습은 무엇이냐"며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최고위원을 지낸 고민정 의원은 "스스로 만들었던 여러 종류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듯한 느낌"이라며 "악수 중의 악수"라고 평가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 대표 발언을 소개하며 "이재명 민주당은 벌써 계엄 중"이라고 썼다. 한 전 대표는 최근 출간한 저서 등에서 '29차례 탄핵'을 강행한 이 대표가 집권하면 계엄을 악용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 구정근 기자 / 서울 서동철 기자 / 박자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