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부활의 중심인 미국 '인텔'은 천문학적 자금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투입했지만 안타깝게도 혁신에 실패했다. 경영자였던 팻 겔싱어가 재무제표에 집착해 무리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탓이다. 뒤늦게 투자를 늘렸지만 쫓겨난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연히 미세공정 도전에 가속이 붙지 않았다.
대만 'TSMC'는 얼마 전 트럼프에게 14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대미 투자를 선물했다. 이사회도 대만이 아닌 애리조나에서 열었다. TSMC가 개소한 첫 미국 공장이 이곳에 있다.
그런데 작년 미국 경제학자들은 애리조나 공장에서 미국 노동력의 비극을 확인했다. TSMC가 들여온 첨단장비와 화학물질을 다룰 숙련된 근로자가 부족했던 것. 급기야 TSMC는 대만 본토 인력을 공수해 애리조나 공장에 투입했다.
트럼프가 꿈꾸는 미 조선업의 부활에서도 '통점'은 고숙련 노동력이다. 최근 한국 한화오션이 미 해군 함정을 수리해 납품했는데 미 해군은 '방향타' 수리 역량에 놀랐다. 부품 도면이 없어져 난제인 작업을 한화오션은 역(逆)엔지니어링과 3D 프린팅으로 극복했다. 미 조선사들은 엄두도 못 낼 사안을 해결했고, 이 성과는 한화오션 보도자료가 아니라 한국 엔지니어들에 감탄한 미 해군의 감사 성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경제 석학인 대런 애쓰모글루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한국과 일본, 독일이 인력 재투자로 숙련된 역량을 유지하는 반면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탄식한다. 외국 기업이 미국에 거액을 투자한들 무용지물이라는 경고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미국을 위대하게(MAGA)'에는 알파벳 'n'이 빠진 상황이다. 미국(America)이 아닌 숙련된 미 근로자(America'n')를 먼저 키워야 나라 경제가 위대해진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고마운 이유는 쇠락한 미국 노동력의 허물을 들춰 각국에 경고를 주기 때문이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라고.
[이재철 글로벌경제부 humming@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