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증시의 주인공
'반도체 투톱' 말고도
AI 수혜 기업들 있다
'반도체 투톱' 말고도
AI 수혜 기업들 있다
올해는 누가 뭐래도 SK하이닉스의 해다. 3분기 이익이 1년 전보다 60% 넘게 급증할 것으로 보이면서 올 들어 주가는 미리 2배 이상 올랐다. 이에 못지않은 실적 개선에도 주가가 덜 오른 한미반도체, 3·4분기 모두 예상 실적이 좋은 이수페타시스, 실적 개선과 배당수익률이 양호한 피에스케이홀딩스·ISC, AI 관련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전통 반도체(메모리 칩) 수혜주인 심텍 등이 투자 대안으로 떠오른다.
AI 사업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바이올린 등 핵심 연주자다. 한미반도체는 각 연주 파트를 잘 융합해 화음을 만들어준다. ISC와 피에스케이홀딩스는 연주 전에 악기 소리를 점검하는 '튜닝' 팀으로 비유된다. 이수페타시스는 연주할 내용이 적힌 '악보'이며 심텍은 연주가 왜곡 없이 전달되도록 돕는 사운드보드(울림판)다.
이들 5인방은 반도체 업종 내 중소형주여서 주가 탄력성이 높다. 주가 호재에 대형주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비교해 설비투자(CAPEX) 부담이 작아 AI 수요 증가 시 마진율이 껑충 뛰어 주목받는다. 5인방 모두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이며 배당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신 포트폴리오에 포함할 만한 종목으로 꾸준히 입에 오르내린다. 3분기 실적이 이미 주가에 녹아 있는 종목이 많지만 이들은 4분기 예상 실적도 좋다.
중소형주 투자 리스크는 주가 고평가와 경쟁 심화다. 칩 제조 단계에서 경쟁을 붙여 단가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업종은 주가 급등락이 수시로 나타나 한 번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국내에서 독과점을 누렸던 중소형주들도 점차 경쟁에 노출돼 마진이 하락할 수 있다"며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낮춰야 한다"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 중소형 5인방은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 중이나 국내에선 점유율 1등을 달린다. '독점주에 투자하라'는 원칙에 맞는 투자 대안이다. AI 전성시대를 맞아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고, 각 분야에서 한자리하는 '소수 강자'로서 당분간 지위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 서버의 심장을 움직이는 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엔비디아 GPU가 제 속도를 내려면 HBM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미반도체는 AI 칩 옆에 붙는 HBM 메모리를 초미세 단위로 층층이 정확하게 붙여주는 접합(본딩) 장비 회사다. 주로 SK하이닉스에 제품을 공급한다. 5인방 중 시총이 가장 크다. 한때 한미반도체는 '하이닉스 하청업체'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실적과 주가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나 한미반도체는 HBM을 층층이 붙이는 '열압착(TC) 본더' 중심의 사업에서 칩을 기판에 뒤집어 붙이는 '플립칩(FC) 본더'로 영역을 넓혔다. 반도체 사업 중 최근 각광받는 분야가 패키징인데, FC 본더는 패키징 조립의 핵심이며 수익성도 높다. 다음달 초 3분기 실적이 발표될 예정인데 매출과 영업이익 추정치는 각각 2411억원, 1173억원이다. 에프앤가이드 기준이다. 매출은 작년 3분기보다 15.6%, 이익은 18.1%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4분기는 같은 기간 기준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3.9%, 55.6%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반도체의 4분기 실적 성장률은 주요 고객사 SK하이닉스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33.3%, 54.6%다.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추정 영업이익률은 각각 48.7%, 46%로 한미반도체가 소폭 앞서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주가는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71.4% 올랐다. SK하이닉스(183.6%)보다 덜 올라 매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문제는 SK하이닉스가 TC 본더에 대해 경쟁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한미반도체가 독점해온 물량이 국내 한화세미텍, 싱가포르 ASMPT 등으로 분산되고 있다. 또 다른 투자 리스크는 실적 대비 고평가다. 작년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90.48배다.
주가 1년 새 3배…영업이익 44배 뛴 곳도
피에스케이홀딩스는 AI 칩 라인을 청소하는 인프라스트럭처를 공급하는 상장사다. AI 칩과 HBM 증설이 늘어날수록 이 회사의 일거리가 늘어 실적도 증가한다. 피에스케이홀딩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284억원으로 추정돼 1년 새 이익이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3대 회사에 모두 납품을 하는 국내 유일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 피에스케이홀딩스의 배당수익률은 1.33%다. 최근 2년 연속 배당금이 증가하면서 배당성장주로도 자리매김했다.
같은 반도체 '클린팀'에 묶여 있는 ISC의 핵심 제품은 '테스트 소켓'과 '번인보드(BIB)'다. AI 칩이 대량으로 나오기 전에 불량을 선별하고 신뢰성을 검증하는 데 두 제품이 필수적으로 쓰인다. 이 상장사의 3분기 매출과 이익 성장률은 모두 33% 수준으로 양호하다. 다만 '큰손'이 빠져나간 것은 유의할 점이다. 최근 공시에서 노르웨이 중앙은행인 '노르겐 뱅크'는 ISC의 지분 1%포인트를 줄여 4%를 유지했다. 차익 실현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올 들어 3배 이상 오르며 SK하이닉스의 수익률을 능가했다. 이 코스피 상장사는 매우 두껍고 복잡한(초고다층)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든다. 18층 이상 PCB를 만드는 회사 중에선 글로벌 매출 1위사다. AI 서버에 이 PCB가 들어가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주문이 몰려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이수페타시스의 올해 매출은 사상 처음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3분기 영업이익은 465억원으로, 1년 전보다 79.4%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당 매력은 거의 없다. 배당수익률은 지난 20일 기준 0.17%다.
심텍 역시 올해 1조원대 매출을 노린다. 이 코스닥 상장사는 메모리 반도체가 제대로 쓰이도록 받쳐주는 기판을 만든다. AI 서버 확산에 따라 덩달아 늘어난 전통(구식) 반도체 수요의 수혜를 보고 있다. 3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44배나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4분기 예상 실적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 소식도 있다. 각종 호재에 심텍 주가는 올 들어 4배 이상 급등해 고평가 부담이 커졌다. 주가는 올랐는데 배당금은 주춤하면서 배당률이 0%대다.
[문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