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에겐 이번 한해가
계엄시국과 마찬가지였다
신규 의사 배출 막힌 지금
내년 전공의 모집도 '참담'
진료 기다리는 환자 위해
의정 간 합리적 양보 기대
계엄시국과 마찬가지였다
신규 의사 배출 막힌 지금
내년 전공의 모집도 '참담'
진료 기다리는 환자 위해
의정 간 합리적 양보 기대

의사들은 자신들이 4년 동안 수련의 과정을 마쳤던 각 대학이나 종합병원 의국교실 출신별로 모인다. 자신을 전문의로 키워준 스승님이나 동료, 선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근황을 교류하고 한 해를 회고하며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런 뜻깊은 송년 모임에 쭈뼛거리고 주저하면서 들어오는 젊은 의사들은 사직 전공의들이다. 당연히 전공의들은 가장 당당한 구성원이고 또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술과 음식이라도 한 번 더 권하는 것이 졸업한 선배 전문의들의 애정 표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련병원을 사직한 신분이니 해당 진료과 소속의 전공의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돼버렸다. 거기에 자신들과 아침저녁으로 회진을 함께 돌고 수술실에서 수련과 교육을 시켜주던 호랑이 같은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몫까지 떠안고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워했다.
근황을 물어보았다. 1~2년 차 전공의들은 의사면허는 있으니 필러나 보톡스, 레이저 시술 등을 하는 의원에 일반의로 취업도 해봤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미국 의사면허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동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고연차는 경험이 있는 만큼 선배 병원에 취업해 수술 보조도 해주고, 경험도 쌓는다고 부러워한다.
사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전국적으로 진료 분야별 전문의 시험이 있다. 3000명이 넘는 분야별 신규 전문의가 배출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4년 차 수련을 하지 못했고 사직을 한 셈이니 대부분의 신규 전문의 배출은 중단됐다. 본과 4학년들도 의사면허 시험에 응시를 하지 않았으니 신규 의사 배출도 중지돼 버린 엄청난 전대미문의 사건이 의료계에서 벌어진 것이다. 남자는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각 분야 신임 전문의들이 3월부터 의무사관후보생으로 군의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대위 계급장으로 군의관으로 가거나 오지 지역 공보의로 38개월여를 복무하게 되는데 그 맥이 끊겨 버린 셈이다.
송년회의 화제는 당연히 계엄령에 대한 토론이었다. 우리 전공의들은 '올 한 해가 계엄 시국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진료 복귀 명령, 사직 금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유언비어나 선동자로 낙인찍어 수사하기, 한마디 거든 전임 의협 회장들은 선동자로 몰려 마치 중죄인처럼 경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약대, 수의대도 6년제인데 의대생들을 문제없이 5년 만에 의사로 양산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퍼뜨리던 교육부 관계자들이 의대생들한테 유급이 아닌 휴학을 허락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무슨 사변이나 비상 시국도 아닌데 3000여 명의 의대생을 200~300명씩도 아니고 57%가 넘는 2000여 명을 한꺼번에 늘리겠다는 폭탄 발언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망했는지는 나중에 통계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최근 충격적인 내년도 전공의 모집 확정 인원이 나왔다. 2025년도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최종 집계한 내년도 신입 전공의 현황을 보면 의료계가 얼마나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알 수 있다. 소위 의대생 증가로 낙수효과가 생겨 필수진료 과목으로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복지부 관계자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료는 안보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젊은 층이 많은 군대 특성상 교전 상황에서는 신경외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같은 외과 계열의 숙련된 군의관들이 배출되고 뿌리내려야 한다. 전문의 한 명을 키우는 데 남자라면 군대까지 합쳐 15~16년이 걸린다. 그런데 이번 계염령에서 '진료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포고령에 따라 처단하겠다'는 문구는 올 한 해가 '의료계엄'과 같았던 전공의들한테 화룡점정을 찍었다.
과연 정부의 의도대로 파격적인 의사 증원이 이루어질 것인지, 아니면 70여 년의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인한 의료 개악으로 이어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지금도 자신의 차례를 한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상호 간에 합리적인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