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대규모 미국 투자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관세 면제를 약속받았다. 미국이 다음달 2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큰 가운데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대응해 관세전쟁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일자리를 어떻게 지켜낼지는 숙제로 남게 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후 4년간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건설과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증설 등이 포함된 것으로 현대차의 대미 투자 사상 최대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라며 "그 결과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미국발 관세전쟁에서 현대차가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철강 등의 분야에서도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우리 기업들의 주력 수출 품목이다. 관세를 피하자고 대미 투자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국내 신규 투자와 일자리는 텅 비어버릴 수 있다. 가뜩이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 취업을 포기한 청년들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최대한 국내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방법을 짜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낡은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동기를 만들어주고, 미국 정부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바를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한국 노동계의 각성도 시급하다. 높은 생산성으로 국내 투자를 유도해야 하며, 특히 노동 유연성을 높여 우리 산업의 역동성이 커질 수 있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밥그릇을 지키겠다며 집단이기주의를 고집한다면 미래 세대 먹거리를 영원히 다른 나라에 넘겨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