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했다는 사실을 정부가 두 달이 넘도록 몰랐다고 한다.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핵무기 개발 우려가 있는 나라가 민감국가로 지정된다는 점에서 핵무기가 없는 동맹인 한국이 지정된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외교 당국은 이를 막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두 달간 '깜깜이' 상태였다고 하니 그 무능함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민감국가 지정은 단순한 행정조치가 아니다. DOE가 관할하는 원자력과 핵무기 기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접근이 제한된다. 한국 과학계와 산업계에 타격이 될 수 있다. 특히 원자력 분야가 그렇다. 연구용 원자로 개발,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 등 주요 원자력 기술 대부분이 DOE의 협조 없이는 진전이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향후 체코 원전 수출에도 장애가 될까 걱정이다. 더욱이 민감국가 목록에 올라 있는 국가 대부분이 북한·중국·러시아 등 미국의 적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상징적 의미도 적지 않다.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에서 계엄·탄핵으로 정치적 혼란이 커지고 자체 핵무장 여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외교 당국이라면 미국의 움직임을 미리 포착하고 대응했어야 했다. 민감국가 지정 단계에서 손을 놓고 있었고 이후 두 달간 상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부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와 협의 중이라고 하지만 이미 한국의 외교적 위상은 추락했다.

이런 외교력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압박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정부는 다음달 2일 발표 예정인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한국을 빼달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요청했다고 하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4일 한국 자동차에도 상호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뿐만 아니라 미국의 관세 부과 계획에도 깜깜이로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대미 외교 역량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