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 개막된 '파리 인공지능(AI) 정상회담'에 앞서 AI 분야에 1090억유로(약 16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펀드,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달까지 AI 스타트업 규제에 대한 개혁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며 "미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도 했다. 프랑스의 전격적인 AI 투자와 규제 완화는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장악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뒤늦게라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은 AI 산업 진흥보다 규제에 초점을 맞춰왔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규제 법안인 AI법(AI Act)도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이 AI에 5000억달러(약 725조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천명하고, 중국 딥시크 쇼크가 시장을 흔들자 프랑스에서 AI 규제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됐다. 투자를 미루다가는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의 이런 행보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지난해 말 AI 산업 육성과 안전성 확보의 근거가 되는 AI기본법을 제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AI 원천기술 개발이나 AI 실탄 격인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인재 양성에서 뒤처져 있다. 한국이 확보한 GPU는 H100 기준 2000여 개로 메타(35만개), 테슬라(3만여 개) 등 글로벌 빅테크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 AI 성숙도가 글로벌 2군으로 분류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민간기업들이 AI 개발에 분투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미국이나 중국 기업과 경쟁이 될 리가 없다.

AI 경쟁이 국가대항전 양상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처럼 늦게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AI는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자산이자 국가 미래를 좌우할 핵심 산업이다.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와 인재 양성, 규제 개혁에 대한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꾸물대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