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기침체(R:recession)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1분기 미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비롯된 일이다. 경기침체를 용인할 것 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도 R의 공포를 한층 부추긴다. 경제적 정의상 경기침체는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나가던 미국경제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R의 공포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Fed)이 3월 발표한 미국 국내총생산(GDP)전망 속보치에 따르면 미국은 1분기 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2.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애틀랜타 연은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해 분기별 GDP성장률을 바꾼다. 전망을 살펴보면 매우 극적이다. 애틀랜타 연은은 올해 1월에는 미국경제가 1분기 3.1%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월말에는 1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소폭 낮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각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한 것이 주된 이유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경제는 정상적인 궤도를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3월 들어 1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대폭 낮췄다. 한 달 만에 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4.7%포인트나 급락한 것이다. 이 정도의 변화라면 시장에 침체의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를 반영해 미국 주식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침체 확률을 종전 30%에서 40%로 올렸다. 아울러 여러 기관들이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미국 경기의 변화를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GDP는 민간소비와 민간투자, 정부지출, 수출과 수입으로 구성된다.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수출이 늘어나면 GDP는 증가하고 수입이 늘어나면 GDP는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2월말에는 1분기 미국 개인소비지출이 전기보다 2.2% 늘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3월 들어서는 소비지출은 0.4%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이 수정됐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이 본격화하면서 미국 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민간투자는 2월과 3월 모두 4.8%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투자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셈이다.
정부지출 증가율은 2월 2.1%에서 3월에는 1.8%로 소폭 감소했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부채에 짓눌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재정 효율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이 추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공무원 감원 정책도 정부지출 축소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대외 무역부분으로 가면 상황은 더 극적으로 반전된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해 총 20%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알루미늄과 철강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서도 4월2일부터 관세를 25% 부과할 예정이다. 여기에 유럽 인도 일본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대해 연일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미국의 무역과 관련한 전망에 그대로 반영된다.
애틀랜타 연은은 미국 1분기 수입 증가율을 2월 5.4%에서 3월에는 28.4%로 대폭 높였다. 아울러 미국의 수출 전망치는 2월 3.1%에서 3월에는 -2.6%로 대폭 낮췄다. 트럼프 발 관세전쟁으로 수출은 대폭 줄고 수입은 한시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수출이 줄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관세를 매기면 다른 나라도 보복관세를 매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산 석탄과 농기계를 비롯해 농축산물에 대해 10-15%의 보복관세를 매기고 있다.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 인도 등 나라들도 미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준비 중이다. 이들이 관세를 매기면 미국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하다.
재밌는 것은 미국 관세 여파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수입 증가율 전망치는 2월보다 3월에 4배 이상 뛰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부과로 미국 수입업자들이 싼값에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 수입 수요가 몰렸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일종의 가수요 현상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입을 줄이기 위해 관세를 부과했지만 현장에서는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수입하자는 물량이 몰리고 있어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1분기 미국의 순수입은 2월 예상치보다 2500억 달러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트럼프의 관세폭탄과 이로 인한 수입 급증이 2분기 미국 성장률을 큰 폭으로 낮춘 근본적인 원인이다.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 보다는 관세정책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1분기 성장률 악화의 원인이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
먼저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정도 과도기가 필요하다”며 관세로 인한 경기침체를 용인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2분기 이후에도 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 증가와 개인소비 지출이 감소하면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기술적으로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미국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경기침체의 주원인이 무역 전쟁인 만큼 이로 인한 악영향은 전 세계로 파급된다.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면 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도 있다.
반면 관세로 인한 경제적인 불안이 심해지면 트럼프 정부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여론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다면 제아무리 트럼프라고 해도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6월경 트럼프 대통령아 중국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국 모두 공멸하는 상황 앞에서 국가 정상들이 만나 무역전쟁을 진정시키는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어찌됐건 당분간은 불확실성이 경제와 시장을 지배할 전망이다. 시장은 침체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 하루하루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투자를 늘릴 사람들은 없다. 미국에서부터 불확실성이 걷힐 조짐을 보이기 전까지 시장은 살얼음판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