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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 NO?...변동비 커 박한 공헌이익 [스페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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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포인트 1. ‘규모의 경제’ NO?

변동비 커 박한 공헌이익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2차전지 산업에서 과연 ‘규모의 경제’가 가능할지 여부다. 우리 기업은 반도체 등 고정비 비중이 높은 자본집약적 산업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왔다. 설비투자 기반 산업은 대규모 고정비를 깔고 앉지만, 생산량이 일정 수준을 웃돌면 단위 생산비용이 급감하는 이익 레버리지 효과를 누린다. 국내 기업이 앞다퉈 2차전지 산업에 뛰어들었던 것도 기존 주력 산업처럼 일정 수준 ‘규모의 경제’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축적된 2차전지 손익 구조를 뜯어보면 이런 전망이 빗나갔다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2차전지 셀 제조사의 경우 반도체 산업 대비 고정비 비중이 훨씬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제조사의 원가 대비 고정비 비중은 50%, LG에너지솔루션 같은 2차전지 셀 제조사 고정비 비중은 20% 안팎으로 추정된다. 고정비 비중이 낮으므로 2차전지 산업에서 손익 관리는 변동비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2차전지 원가 구조에 비춰 이익 레버리지 유무를 뜯어보면 이렇다.

반도체처럼 고정비 80·변동비 20 원가 구조에서는 매출이 2배 뛸 경우 영업이익 ‘퀀텀점프’가 가능하다. 통상 변동비는 매출 증가에 비례해 늘어나지만, 고정비는 큰 변화가 없다. 매출 200을 기록하던 A기업이 고정비 80, 변동비 20 비용 구조라고 가정하자. 이 경우 영업이익은 100이다. 매출이 400으로 2배 뛴다면 고정비 80은 변하지 않고 변동비는 40으로 뛴다. 영업이익은 280으로 2.8배 뛴다. 반면, 매출 200인 B기업 비용 구조로 고정비 20, 변동비 80을 가정하자. 이 경우 매출이 400으로 2배 뛰더라도 이익은 그 이상 늘지 않는다. 매출 증가에 비례해 변동비가 급증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 손익 구조를 예로 들면 이렇다. 2023년 연결 손익계산서 기준 LG에너지솔루션 총비용(매출원가+판관비 등) 32조원 가운데 80%가 변동비(원재료·상품 매입 비용)이고 나머지 20%가 고정비로 분류된다. 전체 비용 32조원 가운데 대략 변동비가 26조원, 고정비는 6조원 정도로 파악된다. 이 같은 손익 구조 아래서는 매출이 늘어도 변동비가 급증하므로 높은 영업이익 구현이 좀처럼 쉽지 않다.

문제는 수요 둔화로 매출이 역성장할 때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공장 가동률이 위축되면 배터리 생산량이 줄고 이에 따라 단위원가 부담이 커지는 악영향에 노출된다. 공장 가동률이 줄더라도 고정비는 그대로인 만큼 단위원가 부담이 커진다. 즉, 배터리를 팔아 번 돈(매출)에 각종 변동비를 뺀 금액(공헌이익)이 고정비보다 커야 영업이익(매출-변동비-고정비) 흑자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2차전지처럼 변동비가 8할인 구조 아래서는 매출에 비례해 비용이 늘어나므로 공헌이익(매출-변동비)이 박한 경우가 많다. 작금의 2차전지 업황은 가격(P)과 수요(Q) 모두 위축되면서 매출·공헌이익이 급감한 데다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이자비용 등 고정비 부담마저 커졌다.

익명을 원한 2차전지 업종 애널리스트는 “공헌이익이 마이너스인 회사는 아무리 매출이 빨리 늘어도 흑자가 되기 힘든 구조”라며 “생산 프로세스와 비용 구조를 효율화해 변동비율을 낮추지 않고는 당분간 유의미한 흑자전환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다.

관전 포인트 2. 구조조정 가속?

설비투자 中 늘리고 韓 줄이고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국내 정책 불확실성이 겹쳐 2차전지 산업에서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든다. 설비투자 감축에 나선 국내 기업과 달리, 중국은 오히려 설비투자를 늘리며 공급 과잉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생산 업체 중국 CATL 등 보유 자원과 현금 여력이 풍부한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과점 수준의 시장 집중화가 이뤄질 때까지 ‘치킨 게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해외 설비 가동 시기마저 늦춰가며 비상경영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10조원대로 정했다. 전년 대비 20~30% 줄인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공장 가동 시점을 늦추며 투자를 최소화한다. 삼성SDI도 신규 라인 증설 비용을 줄이는 등 투자 효율화에 나선다.

반면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본토 선전증시에 상장된 CATL은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CATL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최소 50억달러(약 7조2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CATL은 홍콩증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73억유로(약 11조원) 규모 헝가리 배터리 공장 건설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설비투자를 늘려 점유율을 키우는 한편, 전체 산업 손익분기점(Bep)을 낮춰 후발 주자를 더 압박하겠단 포석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세계 1위 CATL이 설비투자를 줄이지 않는 한 2차전지 산업은 공급 과잉 압력이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 점유율 상위 업체는 버틸 수 있지만 후발 주자 기업에는 재무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미 구조조정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수소전기차 제조 업체 니콜라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유럽 2차전지 제조사 노스볼트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2차전지 산업에 대해 수요 둔화·과잉 설비·정책 불확실성의 ‘삼중고’에 빠졌다는 진단을 내놨다. IB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턴 모기업 지원을 기대할 수 없거나 후발 주자를 중심으로 한계 상황에 봉착한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매각·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이 가파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봤다.

삼성SDI가 CES 2025에서 전시한 전기차 배터리 셀투팩(Cell to Pack) 콘셉트 제품. (삼성SDI 제공)
삼성SDI가 CES 2025에서 전시한 전기차 배터리 셀투팩(Cell to Pack) 콘셉트 제품. (삼성SDI 제공)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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