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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 주고 수천만원 깎아줘도 “안 팔려요”

정다운 기자
입력 : 
2025-02-19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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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악성 미분양 12%가 대구에?

# 지난 2월 11일 찾은 대구 달서구 본동의 주상복합 ‘더샵달서센트엘로(272가구)’ 공사 현장은 펜스가 닫힌 채 사람이나 차가 드나들지 않고 있었다. 이곳 현장은 골조 공사까지 마친 상태지만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공사가 사실상 멈췄다. 내년 6월 입주 예정이었던 더샵달서센트엘로는 최초 공급 당시에도 입지나 규모에 비해 분양가가 비싸다는 평가가 많았고 270가구 모집에 24명만이 지원했다. 저조한 분양률에 공사비 회수가 어려워지자 결국 공사를 중단했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무작정 공사비만 들어가는 상황으로 판단하고 전격 중단한 것”이라며 “시행사와 협의를 통해 후분양 등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지방 부동산 시장 ‘바로미터’로 불리는 대구 분위기가 심상찮다. 올 들어 주요 단지 분양권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가 하면 청약 시장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찬바람이 분다. 고금리 장기화,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7만가구를 훌쩍 넘은 가운데 대구 지역은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지만 정작 실수요는 뒤따르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인중개업소마다 인파를 찾아보기 어려운 데다 전화 문의도 뚝 끊겼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1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173가구로 집계됐다.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6월 7만4037가구까지 늘었지만, 7월 7만1822가구로 줄어든 뒤 5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 달 만에 5027가구가 폭증했다. 수도권은 1만6997가구로 직전 달보다 2503가구(17%), 지방은 5만3176가구로 2524가구(5%)씩 늘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대구 미분양 단지는 전국 지자체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8807가구였다. 대구에서는 달서구 미분양 규모(2805가구)가 가장 크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대구에 몰렸다. 대구 악성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11월 1812가구에서 12월 2674가구로 862가구(47.2%) 급증했다. 전국 준공 후 미분양 물량 가운데 12%가 대구에서 나왔다. 악성 미분양 물량이 전남(2450가구), 경북(2237가구), 제주(1746가구)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많았지만 같은 시기 전국 악성 미분양 물량(2만1480가구)이 전월보다 15.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대구에서 증가폭이 유독 컸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26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에서 공급된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990가구)’는 1순위에서 평균 0.03 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총 984가구를 모집하는데 청약이 32건 접수되는 데 그쳤다. 이튿날 진행한 2순위 청약에서 지원자가 20명 늘었으나, 여전히 소수점대 경쟁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단지는 발코니 확장 등 옵션 항목을 대거 무상으로 제공했지만 인기몰이에 실패했다.

대구 지역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 데는 공급 폭탄이 큰 역할을 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데이터를 살펴보면 올해 대구에서 공급되는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242가구에 달한다. 2020년부터 줄곧 업계가 대구의 연간 적정 입주 물량으로 판단되는 1만1816가구를 크게 웃도는 물량이 공급된 데다, 고금리와 인구 감소 등으로 지방 부동산 수요가 크게 얼어붙은 결과로 풀이된다.

공급이 넘치는 데 반해 시세보다 비싼 분양가도 대구 분양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고분양가를 만회할 만한 차별화된 특징도 없었다.

앞의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의 경우 전용 84㎡ 분양가가 최고 6억3000만원 수준이었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 맞은편 ‘모아엘가파크뷰(598가구·2019년 입주)’ 전용 84㎡가 지난 1월 4억1500만원(12층), 지난해 9월 3억9200만원(2층)에도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분양가가 시세보다 2억원 이상 비싼 셈이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고, 집값이 오르는 추세면 그나마 분양 시장도 순항할 텐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대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64주 연속 하락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2월 둘째 주 대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한 주 전보다 0.12% 떨어졌다. 북구(-0.22%)는 태전·산격동 구축 위주로, 서구(-0.2%)는 내당동 위주로, 중구(-0.16%)는 신규 입주 물량 영향으로 남산동이 구축 위주로 하락했다. 전셋값도 0.09% 떨어져 69주 연속 하락세가 계속됐다.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이 0.04% 하락하고, 전셋값은 0.01% 하락한 것과 비교해 대구 지역 하락폭이 크게 눈에 띄었다.

대구 앞산에서 내려다본 대구시 부동산 전경. 지난 몇 년간 대구 곳곳에 새 아파트가 분양됐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빈집이 수두룩하다. (윤관식 기자)
대구 앞산에서 내려다본 대구시 부동산 전경. 지난 몇 년간 대구 곳곳에 새 아파트가 분양됐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빈집이 수두룩하다. (윤관식 기자)
사진설명

사실상 할인 분양 나서지만

수천 마피에 미분양 해소 쉽지 않아

사정이 이렇자 건설사와 시행사마다 미분양 물량을 털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공사가 한창인 ‘힐스테이트대명센트럴2차(977가구)’는 계약자에게 선착순으로 축하금 2000만원과 골드바 10돈(600만원 상당)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내걸었다. ‘축하금’ 명목이긴 하지만 사실상 할인 분양에 나선 셈이다. 분양 당시만 해도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내야 했지만 지금은 이를 5%로 낮추고, 중도금 6회 차 중 3회 차에 대해 무이자 대출 혜택까지 제공한다.

힐스테이트대명센트럴2차가 청약을 받은 것은 2022년 7월이다. 967가구를 모집하는 데 1·2순위를 통틀어 244가구만 신청하면서 대거 미분양됐다. 이후에도 남은 물량을 털어내지 못하자 시행사는 준공 후 미분양 오명을 피하기 위해 파격 조건을 내걸었지만 계약 실적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대구역 근처인 동구로 넘어가 노후 주택이 즐비한 효신로를 따라 걸어 오르다 보면 사정이 비슷한 단지가 또 나온다. 지난해 11월 준공된 효목동 ‘동대구푸르지오브리센트(794가구)’다. 2021년 12월 최초 공급됐고 지금은 준공해 입주까지 했지만 이 단지에는 아직도 텅 빈 아파트가 여럿이다. 단지 내 상가 외벽에는 ‘회사 보유분 특별 혜택’이라며 내걸어둔 홍보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다.

효목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분양 업체가 중도금 1~5회 차 유예 등 다양한 조건을 마련해 선착순으로 동·호수 지정 계약을 받고 있다더라”며 “800가구도 채 안 되는 단지에서 무피(웃돈 없음), 마피(마이너스 웃돈) 매물로 나온 물량만 90여건(중복 매물 제외)이라 잔여 물량이 금방 해소될지는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동대구푸르지오브리센트에서는 발코니 확장 등 옵션을 적용한 전용 84㎡ 분양권이 5억2000만~5억30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저층을 제외한 기준층 분양가가 5억3700만~5억4800만원(옵션 제외)에 책정됐던 아파트다. 매물로 나온 아파트에 6000만원가량의 마피가 붙은 셈이다.

동대구역 인근 효목동 노후 주택가에 들어선 새 아파트 단지 ‘동대구푸르지오브리센트(794가구)’다. 이미 입주가 진행됐지만 이 단지에는 아직도 텅 빈 아파트가 여럿이다. (윤관식 기자)
동대구역 인근 효목동 노후 주택가에 들어선 새 아파트 단지 ‘동대구푸르지오브리센트(794가구)’다. 이미 입주가 진행됐지만 이 단지에는 아직도 텅 빈 아파트가 여럿이다. (윤관식 기자)

공급 넘치는데

대출 규제 풀어준다고 해결될까

이런 분위기 속에 건설·시행사들이 어떻게든 준공 후 미분양만큼은 막아보려 애쓰지만 이미 고꾸라진 대구 분양 시장 분위기가 쉽게 반전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미분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구 분양 시장은 올해도 그닥 전망이 좋지 않아서다. 주산연에 따르면 올 2월 대구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76.2로 전달보다는 12.2포인트 올랐지만 여전히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도는 실정이다. 분양전망지수는 공급자 입장에서 분양을 앞뒀거나 분양 중인 단지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로 100을 밑돌면 시장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업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악화를 핑계로 지난 몇 년간 분양을 미뤄왔던 대구 아파트 단지들 입주가 임박해 후분양 물량으로 쏟아질 가능성이 커서다. 분양 업계에 따르면 올해 대구 지역에서 분양할 단지는 20여곳으로 전망되는데 후분양 물량이 12개 단지, 4167가구에 달할 전망이다. 악성 미분양이 계속해서 쌓이자 정부와 여당에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지만 이 역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최근 국민의힘은 지난 2월 4일 ‘경제 분야 민생대책 점검 당정협의회’를 통해서 정부에 비수도권 악성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DSR은 대출자의 총소득과 대출 이자, 원금 상환액 등을 고려해 대출 한도를 정하는 제도인데, 이 규제가 완화되면 대출 한도가 늘어나 수요자의 자금 마련이 더욱 수월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DSR 완화는 당장 대구를 포함한 지방 미분양 물량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집값이 높아 대출 영향이 큰 서울·수도권과는 다르게 지방은 평균 주택 가격이 낮아 이미 대출 규제 영향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DSR 완화가 당장 대구 지역에 쌓여 있는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데 도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토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가 올 상반기 중 설립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바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CR리츠는 여러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서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고, 임대로 운영하다 부동산 경기 회복에 따라 매각하는 구조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정부에서는 미분양 해소를 위해서 CR리츠를 10년 만에 다시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리츠 등록 허가는 아직 없는 상태다. 미분양 사업장을 보유한 사업자는 높은 가격으로 매도하기를 원하고, CR리츠는 매입 가격을 낮추다 보니 가격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방 광역시나 대도시 권역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미분양 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양도세 감면 등 혜택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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