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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가 57인 꼽은 2025년 정책 우선순위는?

기술 혁신·노동 개혁·親기업 확대

“출구가 아득히 먼 터널에 들어선 것 같다.”

전문가들이 전망한 새해 한국 경제는 녹록지 않다. 당장 2025년만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리스크·탄핵 국면 같은 단기 충격과는 별개로, 한국이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떤 노력부터 해야 할지 감도 잘 안 오는 상황. 매경이코노미가 경제 전문가 57명에게 ‘저성장 극복을 위한 정책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배경이다. 경제·경영학과 교수 27명을 비롯해 여러 증권사 리서치센터, 경제 연구기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담당자 등 총 57명 설문을 통해 저성장 극복 방안을 모색해봤다.

희망의 메시지도 읽힌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혁신’, 서비스 수출 확대 등 ‘수출 구조 전환’ 같은 숙제를 풀어낸다면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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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성장률 “2% 안 될 것”

AI 등 ‘기술 혁신’이 최우선 과제

전문가들이 바라본 2025년 한국 경제 상황은 예상보다 더 어두웠다. 전체 응답자 중 93%는 새해 경제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 역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거푸 낮춰 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 한국은행은 1.9%, 골드만삭스는 1.8% 등으로 전망한다. 2024년 평균(약 2.2%)보다 암울한 상황이다.

상황을 더욱 비관하는 이도 많다. 전체 57명 중 20명이 ‘새해 경제성장률이 1%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응답했다. 전망치보다 실제 경제가 더 안 좋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2% 이상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4명뿐이다.

각 기관 전망치에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이 반영되지 않은 만큼,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다. 좀처럼 줄지 않는 민간부채가 내수와 경기 회복을 더디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은, 안 그래도 얼어붙은 내수 소비에 더욱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계 빚 등 과도한 부채 탓에 내수 부진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요인으로는 크게 3가지가 꼽혔다. ‘내수 소비 둔화’ ‘생산인구 감소’ ‘기술 혁신 부족’이 각각 32표(중복응답 기준)씩 얻었다. 뒤를 이어 ‘수출 부진(25표)’ ‘노동 경직성 심화(21표)’ 탓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가계·기업 등 민간부채 증가’와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18표씩 나왔다.

개별 요인이 서로 문제를 키워 ‘복합 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동시에 수출 산업의 내수 연관 효과가 크지 않은 구조”라며 “수출만 키운다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긴축 재정 기조와 높은 가계부채로 내수 기반이 침식되다 보니 경제성장률 하락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저성장 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결국 ‘생산성 제고’에서 답을 찾는 전문가가 많았다.

정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정책으로 ‘AI 등을 활용한 기술 혁신’을 꼽은 이가 전체 57명 중 40명이나 됐다. ‘생산인구 감소 대응’과 ‘노동 시장 개혁’이 각각 27표씩을 받으며 공동 2위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해결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어 ‘수출 구조 혁신(23표)’ ‘자본 시장 개혁(20표)’ 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답변 중 ‘통화 정책’과 ‘환율 유연성 확보’ ‘건전 재정 기조’ 등은 각각 6표씩을 획득,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시장 내 개혁을 돕는 ‘조력자’ 형태로 저성장 극복에 나서는 것이 더욱 낫다고 풀이할 수 있다.

저성장 극복 위한 ‘5대 제언’

제언1. 결국 ‘테크’가 답이다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 업그레이드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더 많은 노동력, 그리고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될수록 경제 생산량은 커진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에서 노동·자본 투입이 더 늘어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저출생·고령화와 근로 시간 단축으로 노동력 자체가 줄었고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자본 투자 속도가 둔화됐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더해지면 얘기가 다르다. 노동과 자본 투입이 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술을 갖춘 노동자는 혼자서도 기존 두 사람 몫을 해내고, 효율적인 기술 공정을 도입한 공장은 똑같은 돈을 투자해도 생산량이 커진다.

전문가들이 찾은 저성장 극복 방안도 결국 ‘기술 혁신’에 있었다. 전체 응답자 57명 중 절반이 넘는 40명(70.2%)이 ‘기술 혁신’을 최우선 순위 정책으로 꼽았다. 특히 AI 분야에 대한 정부와 기업 투자가 꼭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기존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도 기술 혁신은 중요하다. AI 등 고부가가치 기술 경쟁에서 밀릴 경우 한국 경제 한 축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디지털 전환(DX) 시대에 뒤처져 장기 저성장 국면을 맞이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컴퓨팅파워·데이터 등 인공지능 전환(AX) 시대 ‘3대 인프라’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필요성도 강조된다.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육성을 비롯해 연구·개발(R&D) 투자 예산 확충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 정부는 실체도 없는 과학기술계 이권 카르텔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며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수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이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기술 혁신 생태계가 자리 잡은 미국 선례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미국은 20세기 유효했던 ‘요소·효율 주도’ 성장을 지나 이제는 ‘혁신 생태계 주도’로 경제 구조 자체가 진화했다”며 “경제 주체 간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한 미국식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법·제도, 문화가 세심하고 정교하게 작동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아우르는 국가 리더십이 전제돼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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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2. 노동 생산성 높여라

노동 시장 유연화…여성·고령층 참여↑

부족한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저성장 극복을 위한 우선 과제에 꼽혔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화해 노동 효율을 높이고 둘째, 생산인구 자체를 늘리는 방향이다.

먼저 노동 시장 개혁이다. 정규직 근로자를 향한 과도한 보호, 산업별 고려가 없는 일괄적인 근로 시간, 거듭되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경직성을 높이는 요인을 줄여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현재처럼 노동 시장 경직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기업의 국내 생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을 떠나는 선택지를 집어들 수 있다.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 투자를 꺼리는 주요인도 노동 시장 경직성에 있다”고 평가했다.

경직된 노동 시장이 산업 경쟁력과 기술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역시 “거칠게 표현하면 한국은 인력 100명이 주 52시간 일해 연구개발을 하지만, 중국은 1000명의 인력이 주 80시간 연구에 뛰어든 상황”이라며 “노동 경직성 문제 해결 없이는 신성장동력 발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위주 정책’이 노동 시장 수급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술 혁신과 상생이라는 포장 아래, 한국에서는 유독 소기업 위주 성장·지원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며 “그 결과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부족해졌고 인적 자원 축적이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인구 절벽에 따른 부족한 생산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저출생 해결’이 근본적이면서도 확실한 방안이지만 문제는 ‘속도’다. 정책 노력으로 출생률이 점진적으로 회복된다 해도 해당 인구가 노동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일·가정 양립 등 정책으로 여성 경제 참여를 늘리고, 고용 연장에 따른 고령층 생산인구를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뛰어난 외국인 인재를 적극 유치하자는 의견도 많다.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정석 사이몬쿠처앤파트너스 대표는 “미래를 이끌 혁신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정부와 사회 인식은 아직도 절실함이 부족해 보인다”며 “국가 경제와 산업 성장 근간이 되는 인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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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3. ‘친기업’으로 경제 활력 UP

기업이 국내 투자할 유인 만들어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친기업 정책’이 필수라는 의견도 적잖게 나왔다. 응답 전문가 57명 중 26명(45.6%)이 ‘기업 친화적 정책과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저성장 극복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 혁신’이 기업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친기업 정책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탄핵 국면으로 입법 리더십이 실종된 가운데, 그간 추진돼온 친기업 정책은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였다. ‘반도체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공제 등을 모두 포함해도 1조2000억원 수준이다. 미국의 5분의 1,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은 최근 대규모 반도체 산업 지원 펀드를 조성하며 국가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반도체뿐 아니다. 첨단 산업에 속한 국내 기업 체감 규제 수준 역시 높은 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바이오·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기업 43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첨단전략산업 규제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첨단 산업 규제 수준이 경쟁국보다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 53.7%로 응답 기업 절반을 넘는다. 규제 이행 시 부담 여부에 대해서는 전체 72.9%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법인세 인하 등 세제 개편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법인세 인하 정책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법인세 인하안이 의회를 통과하게 되면 한미 세율 차이는 3%포인트에서 최대 9%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24%(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기준)로 2023년 기준 주요 7개국(G7) 평균인 21.4%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와 세제 개편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혁신과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강조한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력 산업 분야 기업 육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세제와 금융, 보조금 지급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기업 신산업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기업 정책이 단순히 규제 완화나 세제 혜택에 그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정부와 기업이 상호 협력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기업 혁신 노력과 함께 고용의 유연성과 규제 완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면서도 기업 스스로가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 수출 전망은 다소 어둡다. 2024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한국 전체 수출 약 20% 차지한 ‘반도체’가 벌써 위기론에 휩싸였다. 사진은 부산 항만의 모습. (연합뉴스)
제조업 수출 전망은 다소 어둡다. 2024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한국 전체 수출 약 20% 차지한 ‘반도체’가 벌써 위기론에 휩싸였다. 사진은 부산 항만의 모습. (연합뉴스)

제언 4. ‘수출 고정관념’ 부숴라

‘제조 → 서비스’…패러다임 전환

현재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수출 전략은 밑바닥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수출 강국’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숴야 미래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비스 수출을 늘리고 주요 무역 국가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조업 수출 전망은 다소 어둡다. 2024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한국 전체 수출 약 20%를 차지한 ‘반도체’가 벌써 위기론에 휩싸였다. 한국 메모리를 수입해 쓰던 중국이 중국산 메모리로 대체를 시작하면서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국내 주요 업종별 전문가 1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지수(PSI) 조사에 따르면, 2025년 1월 제조업 수출 전망지수는 76에 그치며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외부 변수가 한국 전통적 수출 구조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중심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서비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상품 수출은 세계 8위를 기록한 반면 서비스 수출 규모는 18위권에 그쳤다. 최근 10년 새 한국 서비스 수출 비중 증가폭은 주요 제조업 국가 중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0.9%포인트에 머물렀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콘텐츠와 IT 서비스를 넘어 운송·여행·건설·금융 등으로 업종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며 제조업 경기 자체가 악화될 것으로 본다”며 “반도체·이차전지·자동차 등 제한된 품목에 의존하던 수출 구조에서 서비스 수출을 확대하는 식으로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K-콘텐츠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글로벌 위상이 높아진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이런 성공이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으려면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외교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수출의 IT 의존도가 계속 심화하고 있다”며 “대기업 IT 중심의 수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한 수출 먹거리를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제언 5. 내수부터 살려라

적극적인 통화·재정 정책 필요

정부와 한국은행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자니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민간부채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긴축 재정을 이어갈 경우 침체된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일 수 있는 묘수가 딱히 없다.

전문가들은 일단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환율 상승과 부채 증가 불확실성보다는 내수 경기 회복에 더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적극적인 금리 인하와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계부채와 원화 가치 방어보다는 적극적인 통화·재정 정책이 필요한 때”라며 “금리 인하로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이 정상화되면 자연히 원화 강세로 이어지고 외국 자본도 다시 유입될 수 있다. 가계 부채 문제는 신규 대출 제한 등 다른 카드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 역시 “저성장 국면 타개를 위해서는 적극적 통화 완화와 공격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며 “우선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넘어설 때까지는 경기를 회복시킨 후 그 이후를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부양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가뜩이나 내수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계엄 사태 직후인 12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 동안 신용카드 일평균 사용액(약 2조5102억원)은 전월 동기 대비 3%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월 대비 12월 소비자심리지수 하락폭은 12.3포인트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8.4포인트)를 크게 웃돌고 있다.

물론, 너무 오른 원달러 환율은 변수다. 트럼프 당선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급등해 현재는 1450원대에 이르렀다. 금리 인하 같은 통화 정책을 쓰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도 없잖다.

단 “환율이 오르고는 있지만 아직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많은 전문가 평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비상계엄 조기 해제와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조치 등으로 현재 환율이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정치 상황이 안정된다면 곧 계엄 사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환율이 고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202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웃돌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전문가 소수 의견’은
이공대 늘리는 ‘교육 개혁’…부동산 편중 줄여야

이번 경제 전문가 57인 설문조사에서는 눈에 띄는 소수 의견도 많았다. 저성장 극복을 위해 경제뿐 아니라 교육·정치·재테크 등 사회 다방면에 걸친 구조와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교육 개혁’을 저성장 극복 과제 1순위로 꼽았다. 국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 회장은 “우수 인재가 전부 의대에만 쏠리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미래 먹거리 창출에 기여할 기술 관련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공대 우대책을 적극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에 과도하게 치중돼 있는 한국 자산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당장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다변화하면 경기 부양과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선진국 대비 한국인 가계자산은, 금융자산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고 수도권 부동산에만 편중돼 있다. 금융자산 기반을 키워 노후에도 안정적인 소비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성장 극복을 위해 ‘행동주의 펀드’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이채롭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재 국내 기업이 투자 시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예를 들어 예상 투자수익률이 자본비용보다 낮아도 투자를 단행하거나, 투자처가 없는데도 현금만 쌓아두면서 주주환원을 미루는 행태다. 김우찬 교수는 “자본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기업 자본 배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상당 규모 자금을 행동주의 펀드에 위탁하는 등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문에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순, 총 57명) |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 김병연 NH투자증권 투자전략 부장,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태봉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현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노정석 사이몬쿠처앤파트너스 대표, 박영호 BCG 파트너,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명예교수,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손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신우석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수성 롤랜드버거 대표이사,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승훈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이진영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장,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 최병일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최광혁 LS증권 리서치센터장, 최도연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장, 최중경 한미협회장,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나건웅·문지민·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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