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하철 1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서는 용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좀 더 걸으면 등장하는 용산전자상가 교차로. 주변을 돌아보니 주요 상가는 대부분 문이 닫혀 있거나 한산한 모습이다. ‘철거 후 재건축 예정’이라는 글귀와 함께 철거에 돌입한 상가 건물도 눈에 띈다. 철거를 위해 내부 상가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안내 표지판도 보인다. 용산전자상가로 불리는 이곳이 위축됐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3분기 상업용 부동산 통계지표에 따르면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포함한 용산역 주변 집합상가 공실률은 무려 37.6%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 3곳 중 1곳 이상은 비어 있다는 얘기다.
한강로3가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전자상가 일대 상가의 경우 건물 자체가 노후화됐기 때문에 임대료가 굉장히 낮은 편”이라면서도 “전자기기 판매가 주를 이뤘지만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직격탄을 입고 사업 자체를 그만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 한때 부동산 시장에서 ‘알짜’로 평가받던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역시 요즘 찬밥 신세다. 단지 내 상가는 안정적 배후 수요를 확보한 수익형 부동산으로 주목받았다. 집값과 매매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몇 년째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위주로 소비 패턴이 바뀐 데다 분양가와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 아파트 상가조차 공실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헬리오시티. 총 9510가구로 이미 입주 6년이 지났지만 지하상가 약 30곳은 여전히 공실로 남아 있다. 입주 당시 워낙 가구 수가 많아 헬리오시티 단지만으로 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기대에 못 미친다.
자양동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입주민 대부분이 차를 타고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단지 내 상가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아파트 주변은 노후 주택가로 소비 수요가 약해 상가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소비 패턴 변화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상품 중 ‘상가’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 경기 둔화 등으로 가계소비가 줄면서 문을 닫는 점포가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공실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물단지 상가 부동산
3분기 공실률 10% 돌파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집합상가 공실률은 2024년 3분기 기준 10.1%로 집계됐다. 1년 전인 2023년 3분기(9.4%)와 비교해 0.7%포인트 상승했다.
집합상가란 ‘집합건물의 소유·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인 건물’을 말한다. 집합건물은 동 법률의 적용 대상인 1동의 건물 중 구조상 구분된 여러 개의 부분이 독립한 건물로서 사용될 수 있는 건물을 뜻한다. 쉽게 말해 아파트와 같이 각 호별로 구분 등기가 가능해 독립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집합상가는 호수별로 별도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인식됐다.
지역별로 집합상가 공실률을 살펴보면 경북 지역이 평균 26.42%로 가장 높다. 전남(23.21%), 울산(19.99%), 제주(16.35%), 충북(14.75%), 세종(14.7%) 등이 뒤를 잇는다. 수도권에서 서울은 10.1%로 전국 평균 수준을 유지했으며 경기는 5.5%, 인천광역시는 7.8%를 기록했다. 수도권의 경우 집합상가 공실률 현황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지역 교통 중심지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공실률이 유달리 높다.
서울에서는 대표적으로 용산역(37.6%)과 청량리(27.6%), 영등포역(23.5%) 등 일대다. 세 곳은 서울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 1~3위를 기록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용산은 전자상가 침체 영향이 크다. 주요 유통 채널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용산 일대 소규모 집합상가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또 세 곳 모두 비교적 오래된 구도심이다. 건물이 낙후된 반면, 땅값은 비싸다.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공급량도 많다. 반면 신축 집합상가의 경우 임대료나 분양 가격이 턱없이 높아 입점하기 부담스럽다. 특별한 요인이 없는 한 상권을 다시 살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도에서 집합상가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바로 경의중앙선이 있는 파주시 금릉역 일대로 26.6%를 기록했다. 상가 4곳 중 1곳 이상은 공실이라는 얘기다. 경기도 역시 서울처럼 비교적 오래된 지역, 지하철역 주변에 이름 있는 상권 집합상가 공실률이 유달리 높다. 과거 ‘안양1번가’로 이름을 떨친 안양역 일대 공실률은 25.5%로 금릉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수원역(13.8%), 의정부역(13.8%), 평택역(11%) 등 지역 교통 중심인 지역도 공실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 내 새 아파트 상가는 대부분 사정이 비슷하다.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 올랐지만 상가는 거래도 잘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싸게 처분하기도 어려운 물건이 됐다. 대표적인 곳인 남양주 다산신도시다. 2024년 3분기 다산신도시 집합상가 공실률은 15.4%에 달한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미사신도시 상가 역시 공실률이 높다. 한 예로 ‘미사역파라곤스퀘어’ 상가는 5호선 미사역 바로 앞에 위치했지만 빈 점포가 가득하다. 1층은 모두 153개 상가로 구성됐는데 입점한 곳은 80곳이 되지 않는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은 대체로 공실률이 40% 수준이라고 말한다.
경매 시장에서도 찬밥
대부분 감정 가격 반값에 팔려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경매 시장에서도 ‘상가’는 외면받는 상품이다. 부동산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10월 경매에 나온 수도권 상가는 7196건이다. 이 중 낙찰에 성공한 사례는 1393건(19.3%)에 불과했다. 전국 상가 경매 낙찰가율(감정가격 대비 낙찰가율)은 2024년 4월부터 6개월 연속 50%대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물건이 감정 가격 대비 반값에 팔린다는 얘기다. 2024년 11월 서울 상가 경매 낙찰률은 8.9%로 전달(12.6%) 대비 3.7%포인트 하락했다. 2024년 초 10% 안팎이던 상가 낙찰률은 8월 26.8%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다. 수도권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2024년 11월 경기도 상가 낙찰률은 17%로 전달 22.8%와 비교해 5.8%포인트 하락했다.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상가도 외면을 받는 실정이다. 2024년 11월 서초구 소재 상가는 48건 매물이 경매에 나왔으나 모두 유찰됐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각각 2건, 1건이 경매에 부쳐졌으나 낙찰률이 제로였다.
향후 상가 전망은 당연히 불투명하다.
표면적인 전국 집합상가 공실률은 10.1%다. 하지만 일정 기간 임대료를 받지 않고 빌려주는 ‘렌트프리’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공실률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가의 경우 공실이 발생하면 임대수익 감소뿐 아니라 금융이자, 관리비 등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소비 심리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상가 투자를 꺼리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시장 활성화로 예전보다 오프라인 상가를 찾는 수요가 줄어 자영업 폐업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리도 여전히 높아 일반적인 상가 투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반면 공급 측면에서 신규 택지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택지지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의무적으로 상업용지를 공급한다. 상가 공급량은 조금씩 늘어나는 반면 경기 침체 영향으로 수요는 제한적이다.
전국 상가 거래량은 2024년 3분기 기준 2830건으로 2023년 같은 기간(7065건)과 비교해도 약 60% 급감했다. 수익성이 떨어진 상가를 낮은 가격에라도 받아줄 구매자가 많지 않다. 2025년에도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동산R114가 발표한 ‘양극화된 소비, 웃는 대형 리테일과 우는 자영업자’라는 보고서에는 상가 부동산 시장 현실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는 “대형 쇼핑몰이 지역에 들어서는 것이 지역 주택 가격에는 긍정적인 호재지만 상가 투자자 입장에서는 악재”라며 “기본적으로 아파트의 경우 ‘공실이 돼도 내가 살면 되지’라는 심리가 깔릴 수 있지만, 상가의 경우 ‘공실이 나면 내가 장사하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2025년은 상가에 대한 리스크가 가장 커질 시기”라며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많은 시장조사가 필요하며 준비가 되지 않으면 상가 투자는 삼가는 것이 가장 나은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