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떠 있을 때는 누가 큰지 작은지 알기 어렵다. 그러다 수영장 물이 빠지면 사람들의 키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제도 비슷하다. 우리 경제에는 12월 들어 대통령의 계엄령을 시작으로 정치적 격변이 몰아닥쳤다. 국가의 경제적 위험을 가장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이 환율이다. 원화값은 급속히 떨어졌고 환율은 심리적 저지선인 1400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향후 정치 일정이 헌정 질서 내로 들어오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은 조금씩 줄고 있다. 마치 수영장 물이 빠지듯. 그런데도 환율은 다시 내려가기는커녕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이럴 땐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 경제의 펀더맨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에서 달러당 원화값 1400원은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 장기간 지속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두 차례밖에 없었다.
한국은행 자료를 통해 기록을 살펴보면 1997년 12월9일 환율이 1460원을 기록한 이후부터 1998년3월20일까지 약 100일간 환율은 1400원 위에서 움직였다. 이후 1300원대로 내려왔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같은 해 11월17일부터 12월9일까지 23일간 1400원을 넘었다.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면 분명 우리경제에는 위기 신호다. 정부는 그동안 외환관리를 통해 환율이 1400원을 넘지 않도록 면밀히 관리해왔다. 시장에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서다. 환율이 1400원 위로 올랐다는 것은 정부의 관리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다 환율 1400원선이 장기간 지속되면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환율은 2024년 12월2일 1401원을 기록하며 1400원을 넘어선 이후 12월20일까지 18일간 1400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처음에는 계엄령 선포로 국가 위험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을 휩쓸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정치 리스크는 시간이 갈수록 줄었지만 환율은 시간이 갈수록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0일에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섰다. 정치 리스크 때문만으로 보기에는 과도한 상승이다.

환율 상승을 이끄는 경제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 먼저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글로벌 자금은 수익률을 따라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높은 나라로 움직인다.
12월19일 기준으로 미국과 한국 국채 10년 물로 비교한 한미 간 금리차이는 1.746%포인트에 달한다. 미국 국채 금리는 연4.565%, 한국 국채 금리는 연2.819%다.
한미 간 장기 금리 차는 9월에는 0.6%포인트 정도였다. 이후 조금씩 올라 석 달 만에 3배가량 늘었다. 미국금리는 오른 반면 한국 금리는 오히려 떨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12월 19일을 기준으로 한 한미간 장기금리 차이는 올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미간 금리 차이가 커질수록 원화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오른다.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차이도 여전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상한선은 4.5%, 한국의 기준금리는 3%로 금리차가 1.5%포인트에 달한다. 장기와 단기 금리 모두 차이가 1.5%포인트 이상 되는데 원화가 강세를 보이기는 어렵다.
환율은 실물경제요인도 반영한다. 경제성장이 높은 나라는 통화가치도 높다. 하반기 들어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원화값 하락을 이끄는 요인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은 한국이 1.3%, 미국이 0.4%로 한국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2분기에는 우리 성장률이 -0.2%로 곤두박질 친 반면 미국 성장률은 0.7%를 기록해 차이가 벌어졌다.
3분기에도 한국(0.1%), 미국(0.7%)로 여전히 큰 폭의 차이를 기록했다. 성장률 차이가 커지는 것도 통화가치 하락의 이유다.

외환의 수급 요인도 좋지 않다. 증권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12월19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외국인들은 코스피(KOSPI)시장에서 5조4684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시장을 떠날 때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원화값 하락 요인이 된다.
외국인들은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 개인들이 국내주식보다 해외주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역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1400원대를 넘어선 환율은 정치적 리스크를 걷어낸 우리경제의 펀더맨털을 반영하고 있다. 내년 이후 전망도 밝지 않다. 먼저 우리나라 실물 경제의 내년 전망이 어둡다.
소비와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내수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는 9월 이후 감소세로 전환됐다. 반도체와 자동차 경기가 둔화되면서 이들 분야의 설비투자도 10월 들어 마이너스로 반전됐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으로 경제 심리가 악화돼 내년에도 소비와 투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아우성이다.

우리경제를 지탱해왔던 수출은 ‘트럼프리스크’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올해 10월까지 550억 달러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내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관세를 포함한 무역제재가 예상된다. 최대 수출국인 미국 수출이 줄어들면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내수와 수출 부진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내년에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내려야 할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미 간 금리차가 줄어들기 어렵다. 외국인들의 주식시장 이탈과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선호현상도 지속될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트럼프의 관세폭탄’에 따른 수출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위안화를 평가 절하할 가능성이 높다. 원화가 위안화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대외환경 역시 원화 약세 요인이다.
우리가 처한 경제현실을 감안하면 달러당 원화 환율 1400원대는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 환율 1400원을 넘는 기간은 조만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23일)를 넘어선다. 그 다음은 IMF때의 기록(100일)을 넘본다.
경제의 기록은 숫자로 표시된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경제가 1400원대가 넘는 고환율을 지탱할 체력이 있을지 사뭇 걱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