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동산 시장 핫이슈였던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드디어 닻을 올렸다.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 13개 구역, 3만6000여가구가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로 선정돼 ‘급행 티켓’을 따냈다. 1991년 첫 입주한 1기 신도시에서 무려 33년 만에 재건축이 속도를 내지만 분담금 급증, 이주 대책 마련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비상계엄 사태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 정부 역점 사업인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기 신도시 재건축 관련 5가지 관전 포인트를 들여다본다.

정부, 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3만6000가구 ‘급행 티켓’ 따내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고양·성남·부천·안양·군포시는 최근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열기가 워낙 뜨거워 무려 15만3000가구가 선도지구에 신청했다. 이는 정부가 정한 기준 물량인 2만6000가구의 5.9배, 최대 물량인 3만9000가구의 3.9배에 이른다.
분당신도시에서는 샛별마을 2843가구(동성·라이프·우방·삼부·현대빌라)와 양지마을 4392가구(금호1·청구2·금호한양3·5·한양5·6·금호청구6), 시범단지 3713가구(우성·현대·장안건영3) 등 3개 구역, 1만948가구가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특히 분당은 특별정비예정구역으로 묶인 통합 재건축 단지 67곳 중 47곳이 신청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분당은 기준 물량 8000가구에 최대 1만2000가구를 선정할 예정이었는데 3개 구역, 1만948가구가 최종 낙점됐다.
선도지구 명단에 오른 양지마을은 수인분당선 수내역세권으로 5개 개별단지, 4392가구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한다. 분당신도시 내에서도 학군, 교통 인프라가 우수해 집값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양지마을1단지 금호 전용 84㎡는 재건축 기대감에 지난 8월 역대 최고가인 17억3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올 2월 매매가(13억8250만원) 대비 3억원 넘게 뛴 시세로, 분당 재건축 단지 중 같은 면적 최고가다.
시범단지 우성은 당초 인근 삼성한신 등과 7769가구 규모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다 둘로 쪼개진 뒤 먼저 재건축할 수 있게 됐다. 가구 수가 비교적 적은 샛별마을은 추가 공공기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일산신도시에서는 백송마을 2732가구(1·2·3·5단지)와 후곡마을 2564가구(3·4·10·15단지), 강촌마을 3616가구(3·5·7·8단지) 등 3개 구역, 8912가구가 선도지구로 뽑혔다. 연립주택인 정발마을2·3단지(262가구)도 별도 정비 물량으로 선정됐다. 백송마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방문해 노후 아파트 단지의 생활 여건을 점검했던 곳이다.
평촌신도시에서는 꿈마을금호·한신·라이프·현대(1750가구)와 샘마을임광·우방·쌍용·대우·한양(2334가구), 꿈마을우성·건영5·동아·건영3(1376가구) 등 3개 구역, 5460가구가 선도지구로 지정됐다. 대부분 인덕원~동탄선 안양도매시장역(가칭) 주변 단지라 교통 인프라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중동에서는 반달마을A 3570가구(삼익·동아·선경·건영)와 은하마을 2387가구(대우동부·효성쌍용·주공1·2) 등 2개 구역, 5957가구가 선도지구 자리를 꿰찼다. 산본에선 자이백합·삼성장미·산본주공11(2758가구), 한양백두·동성백두·극동백두(1862가구) 등 2개 구역, 4620가구가 이름을 올렸다.
선도지구로 지정되려는 신도시 주민 열망이 뜨거워 주민 동의율보다는 공공기여, 주차 대수 확보, 참여 가구 수 등 다른 요인이 당락을 가른 것으로 나타났다. 선도지구 선정을 위한 표준 평가 기준에서 ‘주민 동의율’ 점수가 60점으로 가장 높았지만, 만점 단지가 속출해 당락을 가르는 요소가 되지 못했다.
분당의 경우 주민 동의율 95%를 넘긴 만점 구역만 10곳이 넘는다. 결국 당락을 가른 것은 추가 공공기여였다. 공공기여는 재건축으로 인한 수익 중 일부를 임대주택이나 공원, 도로를 짓거나 그에 상응하는 현금을 내는 것. 분당은 부지 면적의 5% 이상을 추가로 공공기여하면 점수를 6점 부여하기로 했는데, 선도지구로 선정된 단지 모두 이 조건을 충족했다.
산본, 중동 등 다른 선도지구 신청 구역도 주민 동의율이 비슷해 주차 대수 확보 방안, 참여 가구 수에서 점수 차이가 났다. 각 지자체는 주민 갈등을 의식해 선도지구에 선정된 지구의 평가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잘될까
이주 대책 미흡, 분담금 급증 우려
우여곡절 끝에 1기 신도시 선도지구가 선정됐지만 여전히 갈 길은 험난하다. 정부는 2026년 시행계획, 관리처분계획 수립과 이주를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했다. 통상 10~15년 걸리는 재건축을 정부, 지자체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 6년 내 마무리하겠다는 목표지만, 예정대로 흘러가기에는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첫째 선도지구 단지마다 분담금이 급증할 우려가 크다.
당장 선도지구 선정 단지들은 내년 상반기 내 정비계획안을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정비계획안에는 재건축 후 가구 수, 일반분양 물량 등이 포함되는데 사업성을 나타내는 비례율·분담금 등 추정치도 산출 가능하다. 분담금이 예상보다 많이 나올 경우 주민 동의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
1기 신도시 단지들은 선도지구로 선정되기 위해 추가 공공기여를 약속하고 이주 대책에 쓰일 임대주택 비율을 최대한 높게 써내는 등 공격적인 제안을 했다. 공공기여가 많을수록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들어 조합원이 낼 분담금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올 들어 원자잿값, 공사비까지 급증한 만큼 당연히 사업성도 좋지 않다.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수억원의 분담금이 나오면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지고 사업 추진이 늦어질 수 있다. 분당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단지마다 다르겠지만 공공기여, 임대주택 등 가점을 감안할 경우 분담금이 전용 84㎡ 가구당 최소 1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퇴한 고령층 주민이 많은 만큼 이런 부담을 감내하고 재건축을 추진할 단지가 많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둘째 이주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이번에 선정된 5개 신도시 선도지구 3만6000가구는 2026년 이주해야 2027년 착공이 가능하다. 당장 분당만 놓고 봐도 2년 후에 1만2000여가구가 짐을 싸야 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입주민은 초중고 자녀 학군 등 요인으로 해당 지역에 계속 거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재건축 이주민을 위한 이주 단지나 주택을 짓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주변 신규 택지나 유휴 부지 개발, 공공임대, 노후 영구임대 재건축 등을 통해 이주 수요를 흡수할 계획이다. 정부는 12월 중 구체적인 이주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뚜렷한 해법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주 대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선도지구 주민들이 짐을 싸면 주변 아파트 전월세 가격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해 공급 절벽이 나타날 전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입주 물량은 10만9179가구(서울 2만9388가구, 경기 5만9464가구, 인천 2만327가구)로 2016년 이후 가장 적다. 여기에 수만 가구의 1기 신도시 이주 수요가 더해지면 수도권 아파트 전월세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속도를 내면서 이주 수요가 몰리면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덩달아 매매가도 불안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셋째 신도시 간 양극화 현상도 무시 못할 변수다.
선도지구 지정을 앞두고 1기 신도시 대장주로 불리는 분당신도시 주요 단지 매매가는 수억원씩 뛰었다. 이에 비해 일산 등 다른 신도시 집값 상승세는 미미했다. 기대만큼 재건축 사업성이 높지 않아 오히려 매매가가 하락한 단지도 적잖았다. 이번에 선도지구로 지정된 강촌마을8단지 전용 84㎡는 최근 5억75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2021년 같은 평형 최고가(8억1000만원) 대비 70% 수준에 불과하다. 일산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일산에서는 선도지구 지정 기대가 예상보다 크지 않아 매수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분위기다. 재건축이 속도를 낼지 지켜봐야겠지만 사업성이 나오지 않으면 집값이 더 떨어질까 우려하는 주민들도 적잖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신도시 간 용적률에 따른 사업성 차이로 추가 분담금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아파트 기준 용적률은 분당 326%, 일산 300%, 평촌 330%, 산본 330%, 중동 350%다.
일산신도시의 경우 다른 신도시보다 용적률이 낮아 주민들이 용적률 상향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고양시의회는 최근 정례회에서 ‘고양시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용적률 상향 조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용적률을 최소한 분당 수준(326%)까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산은 인근 창릉, 대곡 등 택지에서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재건축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기 신도시 중에서도 입지가 좋은 일부 단지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재건축이 지지부진할 수 있다. 주민들이 추가 분담금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가 변수인데 신도시 내에서도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당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일산, 중동 등 다른 신도시에서는 재건축을 해도 일반분양 수익이 적어 분담금이 예상보다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에 이탈하는 단지도 나타날 수 있다”는 부동산업계 관계자 분석도 비슷한 맥락이다.
넷째 조합원 간 이견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2개 단지 이상이 모인 통합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각 단지 주민뿐 아니라 아파트와 상가 조합원 의견을 모으기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면 일조권 침해와 공원, 자연 녹지 부족 등 주민 삶의 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지마다 서로 유리한 방향으로 통합을 주장해 불협화음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짚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단지마다 평형에 따라 지분, 감정평가액이 천차만별인 만큼 통합 재건축 참여 단지들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변수다.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을 통해 얻은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월 제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법을 발의했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에서 폐지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다 비상계엄 여파로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밖에 조합설립 후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을 동시 처리하는 등 정비사업을 3년 단축할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재건축 시 공공기여를 줄여주는 내용이 담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국회 논의가 멈춰 통과가 쉽지 않다.
다섯째 선도지구 지정 과정에서 탈락한 단지들을 어떻게 달랠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이번에 탈락한 11만7000여가구와 나머지 1기 신도시 단지들은 향후 공모를 통한 채점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끼리 합의해 정비계획을 먼저 마련한 단지부터 재건축에 착수할 계획이다. 단지 간 과열 경쟁으로 공모 방식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데다, 탈락한 단지 사이에서 재건축이 아예 무산됐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산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선도지구 선정 단지 주민들은 반기지만, 선도지구에서 탈락한 주민들은 재건축이 한없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재건축 로드맵을 내놓아야 할 듯싶다”고 말했다.
현재 1기 신도시 5개 지자체가 마련한 신도시별 기본계획도 향후 10년에 걸쳐 연간 2만~3만가구씩 물량만 설정해둔 상태다. 구역별로 정비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주민 입장에서는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재건축에 들어갈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이를 의식한 듯 1기 신도시 지자체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구역별 정비계획 수립 시기를 제시하기로 했다. 일례로 주민 동의율에 따라 재건축 순서를 정하거나, 이번에 선정된 선도지구를 거점으로 두고 인근 구역을 다음 순서로 설정하는 식의 방안이 나올 수 있다. “재건축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는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설정하면 된다”는 것이 국토교통부 입장이다.

정부, 행정 지원한다지만
수만 가구 짓는데…광역교통망 필요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두고 우려의 시선이 확산하자 정부는 각종 행정지원을 통해 재건축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선도지구에는 바로 예비시행자를 지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 정비계획안을 마련하는 ‘특별정비계획 수립 패스트트랙’을 도입한다. 추정 분담금 산정 결과에 대한 공신력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한국부동산원이 분담금 산출 업무를 지원한다. 반복되는 주민 동의서 작성 등이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전자 동의’ 시스템도 도입한다.
내년부터 ‘미래도시펀드’라는 이름으로 12조원 규모 펀드도 조성한다. 이 펀드를 통해 2026년부터 재건축 초기 사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통상 재건축 사업은 분양 수익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업 자금을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다 보니 초기 사업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미래도시펀드를 활용해 초기 사업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미다. 이후에도 자금 지원을 이어간다. 재건축 후반 단계에서 총사업비를 산정할 때 공사비를 포함,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한도 안에서 필요 자금을 충분히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정부 계획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의견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인근 지역을 잇는 촘촘한 광역교통망 등 인프라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축 대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오면 주민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2027년 신도시 선도지구 착공 무렵 재건축 일반분양도 동시에 진행한다. 재건축 증가분인 1만9000가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만큼 공급 과잉에 따른 미분양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신도시 선도지구마다 분양, 입주 시기를 조절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재건축 로드맵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서울 도심 몇백 가구 개별 단지 재건축조차 사업 과정이 만만찮은데 수만 가구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을 손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지역별 이주 수요까지 고려한 구체적이고 꼼꼼한 후속 대책을 내놓고 지자체, 주민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차근차근 사업 걸림돌을 제거해야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총평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