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장 탄핵 정국…경제 정책 올스톱
전 세계 경제 10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월 3일 한밤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단행됐다. 이후 한 시간 만에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은 듣기에도 살벌한 포고령을 내렸다. 이후 190명 국회의원이 모여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새벽 4시 윤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까지 숨 가쁘게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당혹감과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며 밤을 지샜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외쳤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후폭풍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실장·수석비서관은 사의를 표명했고,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 유럽 언론들의 표현대로 ‘고도의 문명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초한 셈이 됐다.
문제는 경제다. 주요 기업 임원들은 계엄 선포 직후부터 밤샘 회의가 이어졌다. 가뜩이나 대외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비상계엄은 불난 집에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금융 시장도 크게 흔들렸다.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식을 대거 내던졌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요동쳤다. 2025년을 앞둔 대한민국 경제는 45년 만의 계엄이라는 뜻밖의 변수에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됐다.

지난 12월 3일 재계 50위권 그룹의 A 임원은 밤을 꼬박 지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곧장 회사로 달려갔고 연이은 회의에 임했다. 그룹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에서 해외 수출 동향, 국내 규제 향방 등 대책을 논의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고,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해제한 이후에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튿날에도 현안별로 대책을 챙기느라 7~8개 회의를 주관했다.
A상무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정부의 강경한 통상 정책을 대비하기도 벅찬데, 단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 못한 비상계엄이라는 변수가 경영계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비상계엄 상황이 단시간에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향후 탄핵 등 혼란스러울 정치, 멈춰버릴 규제 개선 등을 생각하면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불과 6시간의 짧은 계엄령이었지만 한국 경제가 직면할 후폭풍은 거세다. 한덕수 총리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경제 관료를 포함한 국무위원 전부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 실장과 수석급 비서관 역시 일괄 사의하기로 했다. 국가 정책을 이끌 정부 관료와 대통령 참모 모두 직을 던지겠다고 나선 초유의 국정 공백 사태가 현실화됐다. 당장 계엄이 해제된 4일, 경제부처의 부동산 공급과 소비 진작 대책 등 여러 건의 회의가 모두 취소됐다.
한국은 지금 정책 리더가 자리를 비워도 좋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3%로 낮췄다. 내년은 2.1%로 기존 전망보다 0.1%포인트 낮췄다. 한국은행 역시 내년과 내후년 모두 2% 성장을 못할 것이라 예상하며 지난 11월 이례적으로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내리기도 했다. 국내 외환·금융 시장이 ‘비상계엄’ 후폭풍에 몸살을 앓는 가운데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 중반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10월 말 1.8%에서 0.2%포인트 내린 수치다. 씨티는 내후년 전망치도 이번에 기존 1.7%에서 1.6%로 낮춰 잡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에 대응하기도 버겁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강력한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트럼프가 20% 관세를 부과하면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이 최대 19%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만큼 한국 경제에는직격탄이다. 기업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대외 환경을 극복하고자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말았다.

금투세 폐지·상법 개정 어쩌나
국정 마비…K브랜드 치명타
무엇보다 경제 정책이 올스톱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내수 진작 방안 마련부터 심각하게 꼬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2일 자신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참모들에게 주문했다. 같은 날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그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여러분이 활력을 찾고 신명 나게 일할 수 있어야 양극화도 타개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전향적인 내수 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지시에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들은 내수 활성화 대책을 준비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기한 미뤄졌다.
경제 정책은 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국회 협조가 절실한데 이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내년도 예산안만 하더라도 이미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깎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을 비롯한 검찰, 경찰 등의 예비비와 특수활동비 4조8000억원 가운데 절반인 2조4000억원을 감액했다. 정부 입장에선 감액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일부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사태로 예산안 협상은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다.
세법 개정도 안갯속이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 연말 카드 사용에 대한 추가 세제 혜택을 언급한 바 있다. 기재부 또한 앞서 하반기 카드 사용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10%에서 20%로 올리겠다고 했다. 소득공제율을 상향하는 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 사항이다.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렵다.
야당이 주도하던 법 개정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개최하는 ‘상법 개정 토론회’에서 직접 좌장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계엄 사태로 토론회가 돌연 취소됐다. 토론회 발표를 맡았던 관계자는 “새벽 3시 취소 연락을 받았다”면서 “아무래도 정국 수습이 우선인 상황이라 상법 개정은 야당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지 않겠냐”고 밝혔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 12월 10일까지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금투세 폐지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마저도 계엄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대외 신인도 하락도 우려된다. 윤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심야 계엄 선포 자체가 글로벌 투자자에게는 국내 정치·사회적 불안이 크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BBC·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국 유력 매체들은 실시간 업데이트 형식으로 한국 계엄 상황을 보도했다. 외신들은 계엄 선포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김건희 여사 논란 등 정치적 갈등을 부각했다. 한밤중 전투용 헬기로 국회에 들어와 창문을 깨고 강제로 진입하는 계엄군, 국회 앞에서 계엄군과 시민이 대치하는 상황 등이 전 세계에서 전파를 탔다. 모두 글로벌 투자처로서 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리더인 대통령이 앞장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악화시킨 꼴이 됐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의 마이클 완 선임 외환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이미 트럼프 관세 위협에 취약한 국가”라고 지적하며 “(계엄 사태는) 적어도 정치적 안정이 명확해질 때까지 통화(원화를 지칭)에 대한 추가 위험 프리미엄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외인 매도세…밸류업 공염불
‘미장’으로 머니무브 더 빨라져
자본 시장 충격파도 크다. 이미 국내 증시는 경기 둔화와 외국인 이탈로 주가는 심각하게 무너졌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대형 악재가 더해져 당분간 추가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나마 계엄 선포가 6시간 만에 해제되며 증시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내내 이어진 외국인 ‘셀코리아’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도 비상계엄 선포로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는 “변동성 극대화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은 위험자산 회피 현상으로 이어진다”며 “계엄령 해제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주식·펀드 등 고객의 자금 이탈 우려가 있다. 주식 시장에서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나아가 “외국인도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금 일부 회수 가능성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시장 유동성을 고려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경우 낙폭이 커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국내 경기의 추가 둔화와 중장기 경제 성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연말 소비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성장률에도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며 “더 큰 문제는 국내 증시의 반등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급격히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정치, 경제적인 불확실성이 중장기적으로 흐르면 국가신용등급에 불리한 영향을 미쳐 코스피가 약세 압력에 노출된다”며 “한국 주식을 보는 해외 투자자의 시각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증시 변동성이 확대돼 당분간은 음식료·통신 등 방어적 특성을 보유한 업종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계도 초비상…긴급 사장단 회의
탄핵 정국 대비한 시나리오 경영
재계도 할 말을 잃었다. 가뜩이나 내년 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글로벌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에서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이 더해지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만큼 향후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는 데 고심하는 분위기다.
삼성과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12월 4일부터 긴급회의를 소집해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그룹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 등을 논의했다.
LG는 계열사별로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해 금융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해외 고객 문의에 대한 대응 등을 논의했다. 여의도에 사옥이 있는 LG는 12월 4일 새벽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비상계엄 관련 여의도 상황이 좋지 않아 트윈(사옥) 동관, 서관 모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HD현대는 오전 7시 30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향후 발생 가능한 경제 상황을 집중 점검하고 각 사별 대응 전략을 수립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돼 각 사 사장들은 비상경영 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환율 등 재무 리스크를 집중 점검해줄 것을 주문했다. 또 조선 등 생산 현장에서는 원칙과 규정 준수에 더욱 유념해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줄 것도 당부했다.
롯데그룹은 “계열사별로 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하고 이후 각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 유통군은 김상현 부회장 주재로 유통 계열사 전반에 대한 점검 회의를 열었다. 화학군 등도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로 기업 운영에 차질이 없는지 파악했다. 신세계그룹은 경영전략실 주재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따른 긴급 점검 회의를 열어 대외 환경 불안에 따른 그룹사 전반 사태 파악과 대응을 논의했다. CJ그룹도 계열사별로 경영진 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환율과 주가, 내수 등에 미칠 파장을 논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도 이번 사태가 경제계에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일부 회원사는 해외 거래처 기업으로부터 우려 섞인 전화를 여러 통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