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규 택지 발표는 이명박정부 시절 그린벨트 해제 정책과 유사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명박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취임 첫해인 2008년 9월부터 보금자리주택 건설 계획을 밝혔다. 이듬해 서울 강남과 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등 시범지구 4만4000가구 공급을 시작으로 수도권 그린벨트 34㎢를 풀어 임기 말까지 32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현 정부가 발표한 신규 택지(6.9㎢, 5만가구)와 비교해 면적으로는 5배, 입주 물량으로는 6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실제 그린벨트 해제로 강남 세곡동(6500가구)과 수서동(4300가구), 서초구 우면동(3300가구)과 내곡동(4600가구) 등 강남권에 보금자리주택을 집중적으로 공급했다. 2008년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 발표 이후 2009년 9월 사전청약, 그해 말 본청약을 진행했다. 2012년부터 입주가 시작돼 계획 발표 이후 4년 만에 집들이를 했다. 그만큼 공급 속도가 빨랐다.
강남 세곡지구의 경우 2009년 5월 시범 사업 발표 이후 2년 만인 2011년 입주했다. 강남신동아파밀리에1단지(395가구), 세곡리엔파크3단지(363가구), 강남신동아파밀리에2단지(410가구), 강남데시앙파크(547가구)는 모두 2011년 준공했다.
더 중요한 건 발 빠른 공급 덕분에 뚜렷한 집값 안정 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 조사를 보면 이명박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9년부터 2012년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누적 5.82% 하락했다.

현 정부는 그린벨트를 풀면서 2026년 상반기 지구 지정, 2029년 분양, 2031년 입주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이명박정부와 비교해서는 다소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마저도 정부 목표대로 사업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토지 보상에 난항을 겪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공공택지로 개발하려면 토지 수용, 보상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개인 소유주가 많을 경우 보상에 오랜 시간이 걸릴 우려가 크다. 그린벨트의 경우 보통 60~70%가 사유지라 토지 보상 등 절차가 복잡하다. 현행법상 그린벨트 해제 부지 보상은 주변 시세에 비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일부 토지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서초구 일대 그린벨트 토지 소유주의 42%가량이 개인이었다. 한 필지를 여러 명이 소유한 지분 쪼개기도 적잖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가 이번에 선정한 지구와 인근 지역 내 최근 5년간 거래 5335건을 조사한 결과 1752건 이상 거래가 미성년 외지인 매수, 잦은 손바뀜, 기획부동산 의심 거래였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그린벨트 사유지 보상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거나 보상가에 대한 토지주 불만이 커질 경우 사업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투자에 나선다면 장기적으로 자금이 묶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택지 개발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 재원을 제때 마련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LH가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인데 일부 지역은 아직 보상 절차도 끝나지 않았다”며 “대규모 택지 보상 문제로 자금난에 봉착한 만큼 이번 그린벨트 택지 보상 등 개발 재원을 순조롭게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변수는 또 있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등 그린벨트 분양가를 얼마로 책정할지를 두고서도 정부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책정해야 대기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지만 지나치게 낮으면 자칫 ‘로또 청약’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으로 공급된 강남구 수서동 ‘강남데시앙포레’ 전용 84㎡ 실거래가는 최근 18억원대로 2013년 분양가가 4억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4배 넘게 뛰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지나치게 낮으면 경쟁 관계에 놓인 3기 신도시 등 다른 택지지구 수요를 뺏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적정 분양가를 얼마나 책정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민간 아파트는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분양가가 책정되고, 공공주택 뉴홈도 시세차익을 정부와 수분양자가 공유하는 환수 장치가 마련돼 있다. 과거 보금자리주택처럼 수분양자가 모든 시세차익을 가져가는 구조는 지양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린벨트 해제지역인 서리풀지구 2만가구 중 절반 이상인 1만1000가구가 서울시의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되는 것도 시세차익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서울시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 ‘미리내집’은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으로, 시세 대비 절반 수준의 전세보증금으로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20년 후에는 시세보다 싼값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도 가능하다. 다자녀 출산 가구에게는 분양 전환 시 분양가를 최대 20% 할인한다. 앞서 7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장기전세주택 300가구 모집에는 1만7929명이 신청해 평균 59.8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만 강남권 핵심 지역에 대규모 임대아파트를 공급할 경우 정작 정부가 기대하는 집값 안정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녹지 훼손을 막으려는 시민환경단체는 물론이고 임대주택 공급에 따른 집값 하락을 이유로 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님비(Not in my backyard·지역이기주의)’ 현상이 심화될 우려도 크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리풀지구 인기가 가장 높을 텐데 2만가구 중 절반이 넘는 1만1000가구가 장기전세주택으로 빠지고 나머지 9000가구 중 일부도 공공임대주택 물량으로 배정되면 정작 집값 안정 효과를 낼 만한 분양 물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기대하는 강남 공급 확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신혼부부 등 젊은 층에게만 강남권 인기 지역 물량을 공급할 게 아니라 세대별로 분양 주택 수를 배분한 후 같은 세대끼리 청약 경쟁을 하는 방식으로 공급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고양, 의왕, 의정부 등 수도권 택지지구는 자칫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주를 병행해 자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