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한국 코스닥지수가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수익률 꼴찌였다. 코스피지수 역시 글로벌 지수 하락률 4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상위 20개국과 홍콩, 대만 등 22개국의 올해 1~3분기 증시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지수는 한국 코스피·코스닥, 멕시코 S&P/BMV IPC, 러시아 RTSI 등 4개뿐이다. 코스닥은 -13%대로 23개 지수 가운데 꼴찌였다. 우크라이나와 장기간 전쟁 중인 러시아 RTSI지수 수익률 -10%만도 못하다.
글로벌 증시는 상반기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미국의 거대 기술주를 중심으로 랠리를 펼쳤다. 하반기에는 미국 중앙은행(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과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불을 지폈다. 이에 힘입어 미국 나스닥, 대만 자취안지수는 20% 이상 올랐다.
한국 증시는 이런 호재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경기 침체 우려로 바닥을 기던 중국 증시까지 반등하자 한국 증시의 소외감은 더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고 입을 모은다.
1. 투자자 울리는 부실 공시
금양 정정 공시 거센 후폭풍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부실 공시는 증시 불신을 증폭시키는 ‘고질병’이다. 최근 금양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리튬 광산 생산 실적 전망을 대폭 축소하며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단행해 투자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5월 금양은 몽골 광산 개발 회사 몽라(Monlaa LLC) 지분을 취득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금양은 해당 투자로 매출액 4024억원, 영업이익 1609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시 다음 날 금양 주가는 18% 올랐다.
그러나 지난 9월 27일 금양은 몽골 광산의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4024억원에서 66억원으로, 1609억원에서 13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정정된 매출과 영업이익 추정치가 기존 전망치의 각각 1.4%, 0.8%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장에서는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금양 측은 “몽골과 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와 지난해 하반기 굴착에 필요한 채굴용 설비 기초 공사 기간이 지연됐다”는 입장만 내놨다. 한국거래소는 금양이 장래 사업·경영 계획을 거짓 또는 잘못 공시했다며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4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것을 두고도 투자자 원성이 높다. 금양은 몽골 광산 정정 공시를 냈던 지난 9월 27일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4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투자자들은 몽골 광산 부실 공시에 이어 유상증자까지 겹악재를 맞았다며 성토한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영업손실 181억원으로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86억원에서 550억원으로 급증했다.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는 7924억원에 달하지만 유동자산은 1184억원, 현금성 자산은 260억원에 불과하다.

불성실 공시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투자자 피해 대비 규제 실효성은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지정 예고’는 384건으로 집계됐다. 이미 지난해 연간 지정·지정 예고 건수(381건)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7개 테마 업종을 신규 사업 목적으로 추가한 상장사 233개사를 조사했더니, 이 가운데 55%가 관련 사업을 전혀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공시 사실의 공표, 개선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는 수준으로는 부실 공시를 솎아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최근 1년간 코스피 상장사가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건수는 34건이다. 평균 벌점 2.3점으로, 벌점에 따른 페널티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벌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금양 역시 지난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지 1년이 지나 누적 벌점이 0.2점에 불과하다. 금양은 지난해 5월에도 자사주 처분 계획 발표를 지연 공시한 사유로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물론 벌점 누적으로 관리종목 지정 뒤 1년 동안 추가로 벌점 15점을 받으면 해당 상장사는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에 오른다. 하지만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만으로 퇴출 사례는 전혀 없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성실 공시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금전적 제재가 있어야 상장사에 실질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명순영·배준희·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