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경제

자영업 위기 극복 위한 전문가 10人 제언

모두 받는 금융 지원은 ‘좀비 가게’ 양산
창업 준비 기간 늘리고 교육에 지원을

그야말로 ‘역대급 위기’다. 한국 자영업 환경을 둘러싼 각종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폐업자 수와 공실률,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늘어만 간다. 고물가로 손님이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배달 수수료 인상이라는 악재도 겹쳤다.

정부 역시 7월 3일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 대책’을 내놨다.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기료·배달료 지원, 재취업·재기 지원 확대, 대출 상환 기한 연장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부족한 단기 처방”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 자영업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전문가 10인에게 물어봤다.

사진설명

7.3 정부 대책 문제점은

맞춤형 지원 부족…단기 처방 그쳐

최근 정부가 내놓은 ‘7.3 자영업자 종합 대책’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자영업 위기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반갑지만 대책이 금융 지원 위주로 쏠리면서 ‘단기 처방’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맞춤형 지원 부족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가 많다.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편적 금융 지원은 ‘좀비 가게’를 양산할 수 있는 위험을 갖는다는 의견이다.

강성민 대한가맹거래사협회장은 “영업에 무리가 없는 자영업자에는 고용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극한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에는 점포 정리를 돕는 등 각자 상황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모든 자영업자를 한계사업자로 가정하고 내놓은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잘하고 있고 더 잘하고 싶은 자영업자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남윤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워낙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금융 지원과 경영 안정에 집중한 정책은 시의적절해 보인다”면서도 “자영업 전반 성장을 위한 지방 정책 확대, 판로 확장 등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가 창업 결정하기 전 참고할 수 있는 통계·데이터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창업 전 기대 매출과 수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 통계는 불완전하다는 지적이다.

김영갑 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소상공인 창업에 필요한 정보가 제한적이고 나아가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며 “현재 제공되는 통계는 대표성이 없는 평균값이거나 매출 정보에만 치중돼 있어 수익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부 차원에서 업종별 자영업 손익 상황을 매출 수준별로 정확하게 통계화하고, 예비 창업자가 창업 전에 이를 충분히 숙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영업 포화 문제 해결하려면

창업 교육으로 진입장벽 높여야

자영업 위기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과잉 경쟁’이다. 자영업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임금 근로자가 은퇴 이후 너 나 할 것 없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데다가 창업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탓이다.

당장 은퇴 후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정부 차원에서 자영업자 창업 준비 시간과 교육 과정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병철 중간계캠퍼스 대표는 “취업 준비, 하물며 영어 토익 시험 준비를 하는 데만도 상당한 노력을 쏟는다. 그런데 훨씬 해야 할 것이 많고 실패했을 때 위험이 큰 자영업은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드는 이가 많다”며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도 많다. 자영업자에게 꼭 필요한 핵심 역량을 교육하는 기관 자체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융자 등 금융 지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창업 교육, 컨설팅·멘토링 등 체계적인 창업 준비를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박진용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건 실패 확률을 크게 높인다. 견습 창업과 창업 역량 자가 진단 체계 구축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윤황 장안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지역 내 대학교와 연계를 통해 지역 특색에 맞는 자영업자 마케팅 교육이나 디지털 전환 지원 등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스스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가게 운영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노승욱 창톡 대표는 “자영업은 평균 창업 비용이 1억원이 넘는 고위험 투자다. 1억원 주식 투자를 결심할 때는 전전긍긍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이 큰 자영업은 별다른 고민도 준비도 없이 창업하는 이가 많다”며 “기업도 수익의 일정 부분을 연구개발(R&D)로 쓴다. 자영업자도 힘들겠지만 점포 역량 강화를 위한 자기계발 노력과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해외 자영업자 지원 제도는

장사 말고 다른 선택지도 줘야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회전문 창업을 막기 위해선 장기적인 사회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이 여타 OECD 국가 대비 자영업 비중이 높은 이유로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 복지 정책의 미비, 1인 창업 증가 등이 꼽힌다.

결국 ‘임금 근로자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은퇴 후 할 게 없어 창업을 선택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버세대 재취업 기회와 일자리를 늘리고 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남윤형 수석연구위원은 “결국 경제 주체가 임금 근로 시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이 폐업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며 “정년 연장 등 사회적으로 매우 큰 과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스마트경제학과 교수 역시 “근속연수에 따른 급여 체계 탓에 재취업을 꺼리는 이가 많다. 낮은 연봉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장기 과제로서 같은 직무에 같은 급여를 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창업보다 근로 시장에 머무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 위기 극복을 위해 해외 자영업·소상공인 지원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예비 자영업자가 준비된 상태에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전문가)’ 제도가 특히 눈길을 끈다. 마이스터는 자영업자 기술과 경영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둔 제도. 독일에서는 특정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려면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영갑 교수는 “한국에서도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 자영업자들이 충분한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가령 장기간의 전문가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인센티브 차원에서 더 나은 지원 정책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인근에서 활동하는 자영업자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해외 사례도 있다.

일본의 소규모 상점 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이 시행하는 ‘지역상업 자립 촉진사업’은 소규모 상점을 한데 모아 공통된 지역 특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업이다. 인근 상점이 서로 협력해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될 경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할 수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은 소규모 상점이 협력해 공동 마케팅을 펼치도록 장려하고, 이를 통해 지역 상권과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이런 접근이 파편화돼 있는 한국 자영업 시장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 관광이 활성화되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유럽식 협동조합 모델도 언급된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 국가에서는 자영업자 협동조합이 활성화돼 있다. 자영업자가 공동 이익을 추구하고, 나아가 정책 제언에도 적극 참여하는 방식이다. 남윤형 위원은 “상황이 제각각인 개별 자영업자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며 “소상공인 정책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유럽 협동조합 사례처럼 자영업자 조직화와 협업에 초점을 맞추는 제도도 고민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보호’와 ‘지원’에만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한국 자영업 정책을 꼬집는 지적의 목소리도 비등하다. 미국·일본 등 해외처럼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이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자영업 정책은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 육성보다는 생존을 위한 ‘보호’에 지나치게 방점이 찍혀 있다. 지속 가능한 소상공인을 육성해 고용을 창출하고 골목상권을 활성화시켜 경제 전반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 노승욱 대표의 제언이다.

인터뷰 | 사장님의 선생님…신병철 중간계캠퍼스 대표
“5가지 준비 없다면, 자영업 시작도 마라”

신병철 중간계캠퍼스 대표는 한국 자영업 시장에서 ‘선생님’으로 통한다. 마케팅이라는 ‘학문’과 장사라는 ‘실무’,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2016년 자영업자 전문 교육기관 ‘중간계캠퍼스’를 설립했다. 지금껏 그를 거쳐간 ‘사장님 제자’만 4만5000명에 달한다. 과거 CJ그룹 최고마케팅책임자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최고 마케팅 전문가로 불리는 그에게 회전문 창업 탈출 방안을 물었다.

사진설명

Q. 각자 자영업자가 처한 상황이 다를 텐데. 어떤 교육을 주로 하는지.

A. ‘영어를 잘하기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알파벳부터 독해, 문법, 듣기 등등이다. 뭐가 됐든 결국 중요한 건 ‘기본기’다. 현재 교육 중인 커리큘럼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정리한 나름의 ‘사업 기본기’다.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 사업을 운영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Q. 사업의 기본기라니 조금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A. 모두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장사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다. 이럴 때 ‘5가지 역량’을 갖고 있는지 되묻는다. 독특한 신제품, 고정 고객, 이벤트 전략, 고객 유인 전략, 나만의 브랜드 등 총 5가지다. 이게 사업의 기본기다. 그중에서도 ‘신제품 전략’과 ‘고정 고객 확보 전략’ 이렇게 두 가지가 가장 기본이 되는 역량이다. 제품이 있고 이를 사줄 고객이 있어야 돈을 번다. 두 가지만 해도 고민하고 연구하고 배워야 할 게 정말 많다.

신제품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도 새롭게 보이게 만들라는 의미다. 화장을 하고 나면 얼굴이 달라 보이듯,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 고정 고객도 중요하다. 기존 고객의 재구매, 다른 제품 교차 구매, 그리고 기존 고객의 추천을 받은 다른 이의 구매까지. 세 종류 고정 고객 확보가 필요하다.

Q. 기본기가 갖춰지면 장사가 잘될까.

A. 기본기는 말 그대로 기본이다. 롱런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가격 전략, 리더십 전략, 타 시장으로 침투 전략, 사업 확장 전략이 필요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생존을 넘어 성장을 위해 가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객단가를 높일지, 또 이제는 커져버린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원 관리 역량 등을 확보해야 한다.

Q. 자영업 공부 의지는 있지만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준다면.

A. 생계 등 이유로 당장 공부할 여건이 어렵다면 일단 본받을 만한 ‘롤모델’을 만들고 그와 똑같이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에 성공한 선배 사장님도 좋고 대기업 회장님도 좋다. 목표가 분명해지면 성공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 이정표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노만 열심히 젓다 보면 오히려 목적지와 멀어질 수 있다. 자영업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업하다 보면 회전문 창업 굴레에 갇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장사에 기본기는 있어도 ‘묘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피나는 노력’이 전제될 때 통하는 이야기다.

[나건웅·조동현 기자·김범준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