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지만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낙관론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조선업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전히 산재한 탓이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 외 다른 분야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 조선업이 벌써 기술력에서 한국을 앞서나가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2020년대 들어 시작된 인력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다. 메이저 3사로만 수주 물량이 쏠리고 있어 중소 조선사는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것도 해결 과제다. 전문가들은 호황에 심취하지 말고, 여력이 있을 때 조선업의 구조적인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제 1 중국의 추격
정부 지원 업은 中 조선업 급부상
조선업에서 중국은 한국의 최고 경쟁자다. 10여년 전만 해도, 가격 경쟁력 외에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연구원이 한국 조선 산업의 가치사슬 종합경쟁력을 분석한 결과(2023년 기준) 경쟁우위 지수는 88.9를 기록, 중국(90.6)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까지 중국을 누르고 1위 자리를 고수했으나, 2023년 역전됐다. 해당 지수는 경쟁우위 요소, 가치사슬, 제품별 중요도 등을 가중치로 활용, 각 산업의 경쟁력을 종합점수 100점 만점으로 산출한 지표다. 한국 조선업은 연구개발(R&D)·설계, 조달 부분에서 중국 대비 우위에 있으나 격차가 좁혀졌다. 생산 부문은 중국에 역전됐으며, AM(애프터마켓)·서비스와 수요 부문은 큰 격차가 지속됐다.
선종별로 살펴보면 국내 조선 산업은 기술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가스 운반선에서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테이너선 경쟁력은 중국과 동등한 수준이 됐다. 유조선은 중국이 2022년에 추월했고, 벌크선은 중국의 우위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수주잔량 기준으로도 중국에 밀린다. 단일 조선소로는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HD현대삼호중공업으로 우리나라 대형 4사가 세계 1~4위다. 그러나 조선소 그룹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국 최대 국영조선그룹인 CSSC가 월등한 1위다. 다른 조선 중국 국영기업인 코스코그룹, 초상기선그룹 등도 10위 안에 있다.
중국은 이들 국영조선그룹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WTO 체제 아래서 공정 경쟁으로 조선업에 대한 지원이 제한적이다. 반면, 중국은 국영조선사를 중심으로 운영, 시장의 규제를 피하고 국가적인 지원을 퍼붓는다.
중국 국영조선사들은 다수의 설계회사, 연구소, 기자재사, 금융사·상사까지 보유했다. 배를 건조하는 조선 산업에만 집중된 한국, 일본 기업과 규모부터 다르다. 고객사에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불황이 닥치면 자국 군함을 건조, 막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 경쟁하기 매우 어렵다. 국내 해운사도 가격이나 납기로 인해 중국 조선사에 상당한 선박을 발주하는 실정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중국 조선업과의 가격 경쟁 상황이 지속된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한 일부 분야만 유지할 수 있다. 중국에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유럽과 일본 조선업처럼 경쟁력 약화의 수순을 밟을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과제 2 인력난
극심한 인력 부족에 노조 리스크까지
2020년대 들어 한국 조선업은 ‘인력난’이라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했다. 조선업 불황과 코로나19 유행이 겹치면서 일감이 급격히 줄었다. 이때 많은 인력이 조선소를 떠났다. 팬데믹이 끝나고 조선업 호황이 돌아왔지만, 떠난 인력은 다시 일터에 복귀하지 않았다. 숙련된 노동력이 한 번에 현장을 떠나면서 비상이 걸렸다.
결국 지난해 정부가 긴급히 조치를 취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법무부가 힘을 합쳐 국내·외국 인력 1만4000명을 충원했다. 국내 인력은 산업부가 진행한 ‘구직자 대상 맞춤형 인력양성’을 통해 2146명을 양성했고, 이 중 2020명을 채용했다. 나머지 외국 인력은 조선협회 추천 인력 중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비자 심사, 고용허가서 발급을 통해 선별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노동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일부 조선소에서는 숙련공 부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납기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화오션의 경우, 6월 30일 납기 예정이던 6척의 컨테이너선 인도 일정을 11월 25일로 미루기도 했다. 숙련공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이 원인으로 꼽힌다. 생산성 하락은 한화오션이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력난에 이어 노조 파업 리스크까지 덮쳤다. 이른바 ‘하투(여름투쟁)’ 위기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7월 18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 신청을 했다. 임금 인상, 성과금 산출 기준 변경, 정년 연장, 승진 거부권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 현재 교섭이 진행 중이다. 차후 교섭이 지지부진하면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 노조는 이미 7월 15일 한 차례 총파업을 진행했다. 한화오션 노조는 조합원 임시총회에서 86%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키고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노조는 지난 5월 말부터 임단협 상견례를 시작으로 교섭에 나서고 있지만, 사측이 진전된 제시안을 내지 않자 파업을 선택했다.
과제 3 양극화
‘수주 가뭄’ 중소 조선사 지원 절실
나날이 심해지는 양극화 역시 조선업계 고민이다. 일감이 쏟아지는 대형 3사와 달리 중소 조선사들은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국내 조선업체 수주 건수 중 87.4%가 대형 조선사 물량이었다. 대형사를 제외한 중소 조선사의 물량 비중은 12.6%에 그쳤다. 양극화는 2010년대 조선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조선업 경기가 절정이었던 2008년, 국내 중형 조선사는 27곳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금융위기로 인한 조선업 불황이 겹치며 회사들은 하나씩 문을 닫았다. 현재 남아 있는 중소형 조선사는 대한조선, HJ중공업, 케이조선, 대선조선 4곳에 불과하다. 이들마저도 수주 물량이 부족해 고군분투 중인 것이 현실이다.
중소 조선사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금융 지원 부족’이다. 신규 수주에 필수인 선수금 환급보증(RG)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RG란 선주가 낸 선수금을 은행권이 보장해주는 제도다. 선주가 배를 주문하면 조선사는 대금의 20%가량을 선수금으로 받는다. 이후 30% 중도금을 제작 단계서 수령한다. 마지막으로 선박 인도와 함께 잔금 50%를 받는 구조다.
RG는 배를 만드는 도중 조선사가 파산할 위험에 대비한 제도다. 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RG 보장을 해준 금융사가 이미 지급한 선수금을 선주에게 돌려준다. 통상적으로 선주는 RG 발급을 받은 조선사만 계약을 맺는다. 문제는 금융권이 중형 조선사에는 RG 발급을 꺼린다는 점. 정부 지원을 받아 수주를 따내도 RG를 발급받지 못해 계약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적잖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산업 구조 변화 절실
R&D·디지털화·금융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K조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크게 3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연구개발 투자 확대, 공정의 디지털화 그리고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다.
우선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연구개발비를 늘려 중국이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점하라는 설명이다.
국내 조선업은 이미 R&D 투자의 수혜를 크게 입은 바 있다. 2010년대 들어 정부가 앞장서서 연구개발비를 늘리며 조선 산업에 막대한 자본을 들이부었다. 덕분에 LNG 운반선 등 첨단 선박 분야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국내 조선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투자 효과를 본 정부는 다시 한번 대형 투자를 진행한다. ‘2040년 세계 최고 조선 기술 강국’을 목표로, 역량을 모은다.
암모니아 추진선, 액화수소 운반선,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중대형 전기 추진선, 선박용 탄소 포집 장치, 자율운항 플랫폼 등 10대 핵심 과제를 정하고 2조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투자 규모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력난 해결을 위한 공정의 디지털화도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생산 현장의 디지털 전환은 작업장 안전이나 품질·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수다. 장기적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주요 국가의 인력 부족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업은 수주 산업이어서 기계화나 자동화가 쉽지 않지만 이게 성공한다면, 관련 기술과 제품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중형 조선사 금융 지원을 통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라는 조언이 이어진다. 민간 금융기관이 중형 조선사 RG 발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 민간금융업체가 참여를 꺼린 탓에, 중형 조선사 RG 발급은 사실상 산업은행이 도맡아왔다. 다만, 산업은행이 발급하는 RG 한도는 이미 채워진 상태다. 때문에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민간은행의 RG 발급을 권유해왔다.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이 2023년 케이조선과 대한조선에 RG를 발급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조선사가 RG 발급이 안 돼 수주에 실패하고, 부진에 빠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민간금융기관이 지속적인 RG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더 독려해야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 토로다.
[김경민·정다운·반진욱·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