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말씀을 하나만 들어도 열 가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큰 조직을 실제 이끌어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보니 한마디에 담긴 힘과 통찰이 대단하다. 어떻게든 한 토막이라도 전해 듣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자리를 만들어보려 노력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스타트업 대표 말이다. 후배 창업자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소식이 있다. 최근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전직 CEO가 부지기수 늘어났다. 유형도 다양하다. 비정기적으로 후배 창업가와 만남을 가지며 객관적 시선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도사형’, 정기 강연과 멘토링 모임을 만들어 진짜 수업에 나서는 ‘선생님형’, 멘토링에 그치지 않고 직접 투자, 나아가 경영까지 관여하는 ‘선수형’ 등이다.


1. 도사형: 먼발치서 조언 툭툭
삼성·LG CEO, 대기업 DNA 전파
초기 스타트업 대표에게 선배 CEO 조언은 그야말로 ‘금과옥조’다. 특히 삼성·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CEO로 활동했던 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치 ‘경영 도사’처럼, 객관적인 관점에서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후배 창업가가 많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최고 인기 멘토 중 한 사람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으로 입사 후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 나중에는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권 전 회장은 테크 기반 초기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업계 인사와 주기적으로 만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다. TBT파트너스 비상임 고문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스마일게이트가 운영하는 창업재단 ‘오렌지플래닛’ 이사장으로 초빙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사내벤처 발굴 프로그램으로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산실로 부상한 ‘C랩’ 역시 권 전 회장이 2012년 재임 시절 주도해서 만든 조직이다.
2017년 그가 펴낸 베스트셀러 ‘초격차’는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에는 그동안 후배 스타트업 경영자와 조직 리더 만남에서 비롯한 총 32개 문답을 담은 ‘초격차-리더의 질문’을 출간하며 다시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조직 문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분야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 경영자를 만나며 리더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만 진정한 ‘초격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지속 가능한 혁신은 좋은 기업 문화에서 탄생하며, 리더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책을 통해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황창규 전 KT 회장 역시 후학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연 두 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황 전 회장은 과거 CEO 재직 때부터 스타트업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했다. KT 회장 시절에는 바쁜 와중에도 스타트업 발굴 프로그램인 ‘멘토링 데이’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CES 같은 글로벌 행사에 참가할 때도 스타트업 대표들을 직접 만나 간담회를 갖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황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부제는 ‘혁신을 꿈꾸는 젊은 리더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퇴직 후 후학에게 들려준 강의 내용에 기반해 쓴 책이다.
대기업 전직 CEO 여럿이 뭉쳐 ‘멘토링 전문가 집단’을 꾸린 사례도 있다. LG그룹 계열사 전임 CEO 6명이 함께 2019년 설립한 ‘엔젤식스플러스(엔젤6+)’가 주인공이다.
멤버 면면이 화려하다. LG화학을 글로벌 톱10 화학 기업으로 이끈 주역인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을 비롯해 LG화학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으로 소재 기술 전문가로 꼽히는 유진녕 전 LG화학 사장, 자동차 전장 관련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이우종 전 LG전자 사장 등이 모였다. 여기에 소재·부품 산업 전문가 박종석 전 LG이노텍 사장,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로 꼽히는 신문범 전 LG스포츠 사장, HS애드와 엘베스트 대표를 거친 김종립 전 지투알 사장도 뜻을 함께했다.
엔젤6+는 창업 보육과 컨설팅을 주 업무로 한다. 계약을 맺고 진행하는 정식 컨설팅 외에도 지금껏 백여 곳이 넘는 스타트업을 만나 무료 코칭을 제공해왔다. 스타트업을 모아 분기별 교류회를 여는 등 활발한 멘토링을 이어가는 중이다. 엔젤6+ 관계자는 “전직 CEO로서 회사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그동안 쌓은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해 후배들에게 성공 DNA를 전수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로 뭉친 조직”이라며 “제조부터 R&D, 특허, 마케팅, 홍보, 광고 등 경영 전반에 걸친 융복합 컨설팅 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는다”고 소개했다.
최근 삼성 출신 CEO와 임원이 결성한 전문가 그룹도 주목받는다. 삼성전자와 삼성SDS 사장을 역임한 전동수 전 사장이 주축이 돼 만든 ‘아브라삭스’다. 전 전 사장과 삼성 출신 임원이 스타트업 초기 투자기관 더인벤션랩과 함께 딥테크 전문 초기 투자 펀드를 결성했다. 초기 창업 기업에 전문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초기 투자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전 전 사장 외에도 삼성그룹 부사장급 출신이 주를 이룬다. 조재문 전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부사장, 김호 전 삼성SDS 부사장, 이효건 전 삼성전자 VD사업부 부사장, 이재철 전 삼성SDS 스마트팩토리사업부 부사장, 안용일 전 삼성전자 CX-MDE센터 부사장 등이 멤버로 참여했다.
2. 선생님형: “수업, 해드립니다”
강연 모임·플랫폼 만들어 멘토링
전직 CEO가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선생님’으로 나선 경우도 있다.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경영 수업을 해주는 모임이나 조직을 정식으로 출범해 후배 양성에 나선 이들이 여럿이다.
올해 첫 수업과 멘토링 모임을 시작한 ‘리볼드 파운더 클럽’이 대표적이다. 국내 스타트업 초기 창업가 고민을 해결해주는 ‘밀착 과외’를 콘셉트로 출범했다. 전직 CEO들로 구성된 멘토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진행된다. 정기 강연 외에도 각 멘토가 스타트업 대표 3~4명씩을 전담하는 소그룹 컨설팅도 진행한다.
멘토는 국내외 기업 리더 5명으로 구성됐다. 그중 3명이 대기업 전직 CEO 출신이다. 제조업 분야 멘토링을 담당하는 박정국 전 현대차 사장와 글로벌서비스 사업 분야 멘토인 이인석 전 이랜드서비스 대표, 투자 분야를 맡은 이상하 BTB벤처스 회장이 주인공이다.
박 전 대표는 30년 가까이 현대차그룹 관계사에 몸담았던 ‘현대맨’이다. 현대차 성능시험실장과 미국연구소장 등을 거쳐 2014년 현대엔지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처음 대표직을 맡았다. 2016년에는 현대케피코 대표로 사장 승진, 이후 현대모비스 대표와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등을 거쳤다. 현재는 리볼드 파운더 클럽을 비롯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창업가에게 리더십과 조직 문화 강연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다.
이인석 전 이랜드서비스 대표는 평사원에서 출발해 CEO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과거 이랜드서비스, 이랜드문화재단, 이랜드CSR 대표를 동시에 겸직하며 업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는 이랜드그룹 경영고문을 맡으며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 CEO를 대상으로 컨설팅 중이다.
이상하 BTB벤처스 회장은 두산그룹 지주사 부사장 출신으로 9년 동안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 사장을 역임하는 등 두산그룹을 대표하는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BTB벤처스’ 회장으로 후학 양성을 넘어 자금 조달에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박정국 전 대표는 “현직에 있을 때 여러 스타트업 대표 고민을 들을 기회가 직·간접적으로 많았다. 조금만 도와주면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초기 창업가를 돕는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대학생 등 미래 창업가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등 현업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부지런히 다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금룡 전 옥션 대표 ‘무료 멘토링’
초대 인터넷기업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IT 분야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금룡 전 옥션 대표는 스타트업 후배가 ‘무료’로 강연과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럿 운영 중이다. 2018년부터 스타트업 무료 멘토링 플랫폼 ‘도전과나눔’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매월 조찬 포럼을 1년 동안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 등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150명이 넘는 전문가 멘토 그룹과 선배 창업가가 연사로 나서 스타트업 업계에 양질의 강연 기회를 늘린다는 취지다.
2022년부터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무료 스케일업 MBA 과정 ‘G&G 스쿨’ 운영도 시작했다. 반년에 한 번 매 기수마다 스타트업 40개사를 선정해 대면 교육 프로그램을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매주 1회씩 20주간 스케일업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윤재 지누스 이사장이 후원하고 G&G 스쿨 교장을 겸임하는 이금룡 이사장이 주관한다. 과정 수료 이후에도 초기 창업 단계에서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금룡 이사장은 “옥션 대표와 인터넷기업협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스타트업이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며 “진짜 위기는 기존 산업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정말 필요한 것은 성공한 선배 창업자가 후배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주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멘토를 넘어 ‘진짜 교수님’이 된 이들도 있다. 이영민 서울대 경영대 벤처경영학과 교수, 이승훈 가천대 글로벌 경영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영민 교수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장, 코웰창업투자 대표이사, 알바트로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20년 넘게 VC 업계에서 활약하다 2015년 서울대 경영대 벤처경영학과 산학협력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 대표로 취임해 3년간 재직 후 지난해 다시 서울대 교수로 돌아왔다. 벤처경영학과는 창업에 관심 있는 학부생이 복수전공과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공으로, 2014년부터 매년 40명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이 창업가정신과 창업 교육을 받는 과목이다.
그가 서울대에서 지도한 제자들은 현직 스타트업 대표로 활발하게 필드를 누비는 중이다. 졸업생 기준 현재 50여개 창업 기업이 활동 중이고 그들이 받은 누적 투자 금액만 2500억원이 넘는다. 인공지능(AI) 에듀테크 스타트업 ‘매스프레소’, 부동산 중개 솔루션 ‘집토스’, 스포츠 경기 영상·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서비스하는 ‘비프로일레븐’ 등이 대표적이다. 이영민 교수는 “모든 일을 시작하기 앞서 전문 역량을 갖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학습이 필수다. 그런데 스타트업 창업자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창업가 교육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승준 교수는 국내 1세대 인터넷 서비스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SK컴즈 싸이월드 본부장, SK텔레콤 인터넷사업본부장을 거쳐 인터파크 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까지는 CJ그룹 미래 전략 수립 역할을 맡는 CJ경영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이다. 이 교수는 “CEO에서 교수로 경력 전환을 한 후 플랫폼 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플랫폼의 생각법’이라는 책도 썼다. 플랫폼 관련 스타트업 자문 요청이 많아 투자와 멘토링을 함께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3. 선수형: 멘토링 넘어 투자까지
직접 스타트업 경영 나선 CEO도
멘토링을 넘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전직 CEO도 많다.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하는가 하면 아예 스타트업 대표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뛰어든 이들도 적잖다.
‘판사 출신 경영인’으로 유명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여기 속한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네이버 대표직을 수행하며 네이버 전성기를 이끌어낸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김 전 대표는 활발한 멘토링은 물론 개인 투자자로도 맹활약 중이다. 퇴직 후 7년 동안 30여개 회사에 직접 투자했다. 이뿐 아니다. 프라이머, 끌림벤처스, 패스트벤처스 등 국내외 초기 액셀러레이터와 VC 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 중인 스타트업 개수를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 대표 시절 스타트업 영역 침범 이슈로 스타트업 대표들과 수없이 면담하면서 대기업은 할 수 없는 스타트업만의 혁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이후 스타트업 혁신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멘토링과 직접 투자에 나섰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장으로 활동 중인 고영하 전 SK브로드밴드미디어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 IPTV인 셀런TV를 창업한 벤처 창업 1세대로 ‘한국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국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있는 ‘팁스(TIPS)’의 운영사 선정을 총괄하는 역할도 도맡는다. 고 회장이 직접 투자한 기업은 약 70개. 현재까지 멘토링한 스타트업은 200여개사다.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를 차린 전문 CEO도 적잖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 창업자인 이택경 전 다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매쉬업벤처스를 설립했다. 투자사 설립 이후 오늘의집, 마이리얼트립, 스타일쉐어, 캐시워크 등 170개 이상 스타트업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이 대표가 멘토로 직접 나서 스타트업을 돕고 있는 덕에 매쉬업벤처스는 스타트업이 가장 투자받고 싶어 하는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로 꼽힌다.
현직 CEO 중에서도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가 많다. 송병준 컴투스 의장 겸 글로벌전략책임자(GSO)와 그 동생인 송재준 컴투스 글로벌최고투자 책임자(GCIO)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큰손’으로 꼽힌다. 송재준 GCIO는 ‘크릿벤처스’라는 VC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초기 투자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전직 CEO 출신으로 스타트업 경영에 직접 뛰어든 이들도 있다. 김동현 전 코웨이 대표는 공유 킥보드 스타트업 ‘씽씽’에 초기 투자금을 넣고, 부대표로 들어왔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스타트업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옮기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이 새롭게 배우고 있다”는 감상을 들려줬다. 이희성 전 인텔코리아 대표 역시 로봇 제작 중소기업인 현성 대표로 다시금 경영 일선에 뛰어든 케이스다. 이 대표는 “인텔 같은 다국적 기업 경영과 벤처 기업은 환경이 판이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창업 자금 고갈을 넘어설 수 있는 추가 펀딩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CEO가 전하는 ‘조언 한마디’
구성원 간 진솔한 소통이 ‘1순위’
선배 기업가 말 한마디가 후배 창업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 매경이코노미는 다수 스타트업 멘토링 경험이 있는 전직 CEO들에게 직접 물어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 한마디’를 들어봤다.
후배 스타트업 대표가 마주한 고민은 각양각색이다. 흔히 사업 단계별로 고민이 나뉘는 경향이 있다. 이영민 교수는 “창업 극초기 스타트업은 내외부 계약 문제와 정부 지원 자금 조달 등에 관련한 조언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되면 개별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는 각각 이슈와 관련된 전문가를 연결해 도움을 받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성장’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업계 분위기가 최근 많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고영하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을 강조한다. 더 넓은 시장에 진출해야 더 많은 수익원이 확보된다는 것. 그는 “국내 스타트업은 유독 좁은 국내 시장에 매몰돼 있다. 가능하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며 “특히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이나 유럽 시장 실정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교수는 “플랫폼으로 확장”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메이저맵이라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멘토링 사례가 떠오른다”며 “기존에는 단순한 대학 학과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후 대학 학과와 고등학생을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시리즈A 투자를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인사 관리’ 또한 주요 고민 중 하나다. 전직 CEO들은 대표가 열린 마음으로 구성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정국 전 대표는 자신이 멘토링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가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사람과 관련된 이슈와 고민을 털어놨다. 자세히 들어보니 결국 본인 사고의 틀에 갇혀 구성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이 부분을 지적하고 결국은 대표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 이후 본인 노력을 통해 회사가 관련 이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영민 교수 역시 “창업자나 CEO는 규모가 커질수록 본인이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 구성원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창업자의 역할론과 함께 채용과 해고 등에 대한 원칙을 엄격히 세울 것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라”는 전직 CEO들이 스타트업 대표에게 공통으로 건네는 조언이다. 이금룡 이사장은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외부 인적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라”는 조언을, 김상헌 전 대표는 “구성원 간 지속적인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김 전 대표는 “과거 글로벌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 하이퍼커넥트가 미성년자의 거액 결제 사건으로 부정적인 여론에 노출됐던 적이 있다. 수개월 동안 매주 진행된 ‘리스크 점검회의’가 답이 됐다”며 “회의를 통해 임직원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고 서비스 미비점을 함께 짚어가면서 문제를 모두 개선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유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됐고 이후 하이퍼커넥트는 약 2조원 가치로 평가받고 성공적으로 매각됐다”고 설명했다.
유니콘 1000개 만들면 미래 100년 걱정 없어

Q. CEO 은퇴 후 스타트업 투자와 멘토링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당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7명과 한 달에 한 번씩 식사 모임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때 큰 보람을 느껴 이후 멘토링에 적극 나서게 됐다. 갖고 있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투자도 하면서 한국 경제 미래인 스타트업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Q.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트업을 만나봤을 테다. 공통적인 고민이 있던지.
A. 크게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자금 조달, 둘째는 팀을 어떻게 꾸리고 팀워크를 다져나갈 것인지에 대한 인사 관리, 셋째는 규제다. 특히 규제 관련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스타트업 특성상 전에 없던 사업이 많다 보니 기업이 가진 사업 모델과 정부 규제가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민간 기득권 세력에 의한 ‘민민규제’도 있다. 예를 들어 법률 자문 플랫폼 ‘로톡’은 외국에서는 문제 되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변호사협회와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원격 의료 역시 의사협회 등 반대로 서비스 제공이 쉽지 않다.
Q. 과거 경험에 기반해 어떤 조언을 주로 해주고 있는지.
A. CEO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는 결국 좋은 인재가 많이 모여야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CEO 정서적 안정,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수다. CEO 마음가짐은 회사 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곧 회사 DNA가 된다. 좋은 DNA가 기반이 된 회사만 지속 성장한다.
Q. 앞으로 스타트업 양성 과정에서 어떤 족적을 남기고 싶은지.
A. 현재 대한민국 경제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 전략을 통해 이만큼 성장을 이뤄낸 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좋은 기업이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결국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국 경제에 미래가 있다. 엔젤투자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팁스(TIPS)’ 사업을 통해서 올 한 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900개 발굴할 예정이다. 이 숫자를 늘려 1년에 3000개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10년 후에는 3만개 기술 스타트업이 탄생할 것이고 이 중에서 3%인 1000개만 유니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서 이탈할 걱정이 없다. 단순 계산으로 1000조원이 훌쩍 넘는 가치가 탄생하는 셈이다. 유니콘 기업 1000개 만들기를 남은 인생의 목표로 생각한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