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창업 비욘드뮤직 4600억 몰려

지난해 바이오 분야에서 조 단위 M&A로 화제가 된 기업이 있다. 인수 금액만 2조4250억원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2000년 설립된 메디트 얘기다. 메디트는 3차원(3D) 치과용 구강 스캐너 기술이 주력인 회사다.
메디트는 현직 교수가 창업해 설립한 기업이다. 장민호 창업자의 창업 당시 신분은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였다. 미국에서 3D 스캐너 기술을 연구하다 한국에서 교편을 잡았다. 연구하면 할수록 본인 기술이 다양한 산업 현장에 쓰일 것으로 보고 2000년 현직 교수 창업을 단행했다. 초반부터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삼성, LG부터 시작해 소니, 토요타 등 국내외 대기업에 3D 스캐너를 납품하기는 했다. 다만 수요처가 한정적인 데다 필요 수량도 적었다. 이때 치과용 장비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이후 신세계가 펼쳐졌다. 이전까지 치아 교정, 치료를 하려면 보형물을 제작해야 했다. 시간도 5일 정도 걸렸다. 그런데 메디트의 3D 스캐너면 한 시간이면 끝났다. 2018년 이 사업 부문 진출 이후 전 세계에서 수요가 급증해 2022년 매출이 2715억원, 영업이익 1426억원짜리 회사가 됐다. 지난해 대규모 매각을 성사시킨 배경이 여기에 있다. 장민호 창업자처럼 ‘잭팟’을 터뜨린 캠퍼스 창업자가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교수는 물론 재학생 창업이 한국 경제 생태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 2족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를 개발, 매년 로보컵(RoboCup)에 참가하며 기술력을 다져온 대학 연구실이 있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곳이다. 그런데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4’, 웰컴 로봇 ‘에이미’, 반려 로봇 ‘에디’ 등을 잇따라 만들다 보니 국내외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장 개발, 제조 비용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학당국과 협의, 2021년 스핀오프 형태로 창업했다. 앨리스4는 에이로봇이 자체 개발한 250W급 액추에이터를 탑재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판매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되면서 최근 하나벤처스, SGC파트너스, 가우스캐피탈매니지먼트 등으로부터 35억원의 투자(시리즈A)를 유치할 수 있었다.
# 세계 1위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월간 리스너(청취자) 수 2100만명 이상, 히트곡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 4억2400만뷰, 라틴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글로벌 인기 뮤지션 얀델(Yandel)의 위상이다. 이런 세계적인 라틴 가수의 음악 저작권·인접권 일부를 인수한 K스타트업이 있다. 비욘드뮤직이다. 비욘드뮤직은 이 밖에도 방탄소년단(BTS)의 ‘불타오르네(2016년)’, 이효리의 ‘10 Minutes(2003년)’,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1988년)’ 등 약 3만3000곡 음원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는 1993년생 이장원 대표.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생 시절 만든 이 회사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 KB증권, 메이븐그로쓰파트너스, 프랙시스캐피탈 등으로부터 창사 이래 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대표가 세운 비욘드뮤직은 첫 창업 회사가 아니었다. 2013년 대학 2학년 시절 창업한 서울대 전용 배달 앱 ‘샤달’, 군 전역 후 디지털 악보를 다루는 플랫폼 ‘마피아(마음만은 피아니스트)컴퍼니’를 창업하며 사업에 눈을 떴다. 이후 다시 음악 저작권·인접권 인수·매각 전문 회사를 창업, 우상향곡선의 매출액을 만들어내고 있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재학생 창업), 모더나를 공동 창업한 로버트 랭거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 사례처럼 캠퍼스 창업은 미국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 대학가에서도 교원(교수)과 재학생 창업에 불이 붙었다.

창업 인프라 튼실
이는 통계에서 고스란히 보여진다. 일단 인프라가 좋아졌다.
중기벤처부와 창업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 결과 창업 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대학이 캠퍼스 창업에 예산, 장비, 공간을 꾸준히 늘렸다.
2022년 기준 창업 교육 전담조직 운영 예산은 2465억원으로 전년 대비 8% 증가(교비 217억원, 외부 지원 2247억원), 학생 창업 총 지원 금액은 1956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창업보육센터를 보유한 학교 수도 207개로 전년 대비 2.5%, 대학 내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한 학교는 108개로 전년 대비 1.9% 늘었다. 창업보육센터 총 입주 기업 수도 5231개로 전년 대비 0.4% 증가했다.
학생들의 창업 열기도 뜨겁다. 창업캠프 참가자 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3만5772명으로 전년 대비 훌쩍(32.5%) 커졌다. 그 결과물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2022년 기준 교원(주로 교수) 창업자 수는 492명으로 전년 대비 11.1%, 교원 창업 기업 수는 470개로 전년 대비 12.4% 늘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창업한 대학 기술 기반 창업 기업 수 역시 375개로 전년 대비 19.8%로 껑충 뛰었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대학 기술 기반 창업 기업의 총 매출액은 275억원으로 전년 대비 12.6% 높아졌다. 선배 창업자가 승승장구하다 보니 기술 창업의 메카인 카이스트에선 매년 100여곳의 신규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매년 발표하는 ‘매경 대학창업지수’ 실무자인 김병엽 창업보육협회 기획조정부장(경영학 박사)은 “캠퍼스 창업이 활성화되는 이유는 창업을 위한 인프라(교수, 연구원, 장비 등)가 잘 구축된 곳이 대학인 데다 실제 성공 사례가 다수 나오다 보니 후배들도 적극 뛰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청년 실업률 완화에 기여한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김재구 전 한국경영학회장(명지대 교수)은 “캠퍼스 창업이 결국 산업은 물론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는 형태인데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도농 격차, 지역 소멸·청년 실업 해소 등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교원 창업 기업으로 인해 신규 일자리가 2022년 436명, 대학 기술 기반 창업 기업 증가로 818명 생겨났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대학생 ‘먹튀’ 창업 경계해야
물론 부작용도 있다.
일부 학생 창업은 ‘대기업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주요 사례를 들여다보면 일단 재학생 몇몇이서 조별 과제 정도 수준 사업모델로 IR(기업설명회) 발표를 해서 대학 혹은 외부 창업기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각종 지원금으로 연명하다 폐업 후 이를 커리어 삼아 취직한다. 업계에서 ‘지원금 사냥꾼’ ‘취업을 위한 위장 창업’은 걸러내야 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더불어 교수 창업도 여러 문제가 있다. 대학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창업의 경우 초기 대학 지분율이 10% 내외로 시작하다 보니 다음 성장을 위해 투자 유치를 할 때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더불어 경영 경험이 없는 교수가 창업에 뛰어든 경우 대학 내에서는 ‘창업 교수 연구실 가면 기업 잡일, 연구를 병행해야 하니 기피해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1호 (2024.05.28~2024.06.0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