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이 빠지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 ‘홈술’ 열풍을 타고 급성장했던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1위이자 ‘수제맥주 1호 상장사’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제주맥주가 최근 경영권을 매각하면서 수제맥주 위기론이 급격히 확산 중이다. 적자 회사가 늘어나고 주요 판매 채널인 편의점에서도 수제맥주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위기 요인은 다양하다. 위스키·하이볼 등으로 주류 트렌드가 이동한 데다, 한동안 쏟아진 ‘컬래버 맥주’에 소비자 피로감이 누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생산 설비를 늘리기 위한 투자는 비용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최근 위기가 장기적으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편의점 맥주’로 굳어진 기존 수제맥주 이미지를 탈피하고, 품질과 정체성을 새로 정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위기 맞이한 수제맥주 산업
제주맥주 매각, 세븐브로이는 적자
최근 제주맥주 경영권 매각 이슈가 국내 수제맥주 위기설에 불을 지폈다. 지난 3월 제주맥주는 최대주주 엠비에이치홀딩스와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가 보유한 주식 864만주(14.8%) 전량, 그리고 경영권을 약 101억원에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하기로 했다. 엠비에이치홀딩스는 제주맥주 창업자 문혁기 대표 부친인 문성근 씨가 대표로 있는 기업으로, 사실상 가족 회사다.
‘당황스러운 매각’이라는 게 수제맥주 관계자 중론이다. 더블에이치엠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업력 3년의 자동차 수리·부품 유통업체다. 지난해 매출이 26억원 정도로, 덩치가 제주맥주 10분의 1 수준이다. 전혀 다른 업종에, 규모도 더 작은 기업이 제주맥주를 건네받게 된 셈이다.
제주맥주가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서 갖는 상징성은 크다. ‘제주’라는 특수성에 기반한 개성 있는 맥주로, 2015년 설립 직후부터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수제맥주 상장사’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제주맥주는 적자 기업이기는 하지만 미래 성장성을 고려해 상장을 허용하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으로 2021년 5월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당시 ‘2021년 흑자전환, 2023년 매출 1000억원’을 목표로 상장했다.
야심 찬 포부와 달리 제주맥주는 상장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매출은 쪼그라들었고 적자폭은 커져만 갔다. 상장 당해인 2021년 28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24억원으로 감소했고, 2022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1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5000원에 육박하던 주가는 올해 초 80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수익 악화에 지난해 전체 임직원 40%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대표가 급여를 반납하는 등 강수를 뒀지만 최근 결국 경영권을 넘기게 됐다.
위기를 맞이한 수제맥주 기업은 제주맥주뿐 아니다. 국내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세븐브로이도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중이다. 2020년 대한제분과 컬래버를 통해 선보인 ‘곰표밀맥주’가 편의점 판매 기준 카스·테라 매출을 넘어서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지난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매출은 전년 329억원 대비 70% 가까이 급감한 124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은 62억원에 달한다. 4년 만에 영업적자다.
누적 판매 5800만캔을 달성한 베스트셀러 곰표밀맥주 빈자리가 컸다. 지난해 대한제분과 곰표 상표권 계약 만료 이후 곰표밀맥주 맛을 계승한 ‘대표밀맥주’를 출시했지만 관심이 저조했다. 2022년 300억원을 넘게 들여 전북 익산에 신설한 맥주 공장도 부담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세븐브로이 공장 가동률은 12%대까지 떨어졌다.
제주맥주와 세븐브로이만 어려운 건 아니다. 과거 5개 넘는 매장을 운영했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서울 성수 매장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점포를 철수했다. ‘구미호 맥주’로 유명한 국내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카브루는 2022년 12월 경기 가평에 있는 수제맥주 생산 공장 상색브루어리를 매각했다. ‘새우깡 맥주’ ‘고길동 맥주’ 등 다양한 컬래버 맥주를 선보였던 수제맥주 스타트업 ‘더쎄를라잇브루잉’ 역시 예정돼 있던 충남 보령 공장 계획을 철회했다.
주요 판매 채널인 편의점에서 최근 수제맥주의 힘겨운 상황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2021년 255%가 넘었던 수제맥주 매출 신장률은 2022년 60.1%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15.9% 역성장했다. 올해 1~2월 누적 판매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3.6% 감소하는 등 부진이 계속되는 중이다.

[부진 이유 1] 급변한 주류 트렌드
하이볼 등 ‘믹솔로지’에 자리 내줘
너무 빠르게 바뀌는 주류 트렌드는 수제맥주 부진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에 수제맥주 바람이 분 건 2014년 무렵이다.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양조장이 만든 맥주의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고,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양조시설을 갖춘 매장 이른바 ‘브루펍(Brew Pub)’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순조롭게 사업을 키워오던 국내 수제맥주 업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전환을 맞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외식업 전반이 무너지면서 브루펍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활로를 찾던 일부 양조장은 고육지책으로 그간 매장에서만 팔던 수제맥주를 ‘병’과 ‘캔’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기회가 됐다. 집에서 맥주를 즐기는 ‘홈맥’ 열풍과 독특한 맥주를 찾기 시작한 젊은 세대 수요가 맞물리면서 수제맥주 시장이 급격한 외형 성장을 이뤘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13년 93억원이었던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20년에는 1180억원, 2021년에는 1520억원까지 커졌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엔데믹과 함께 주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다. 수제맥주 주요 소비층이었던 2030 젊은 세대는 엔데믹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홈술’을 대표하던 수제맥주 대신 와인, 위스키, 테킬라 등을 꺼내 들고 ‘모임 자리’로 향했다. 최근 불어닥친 ‘믹솔로지(Mixology)’ 열풍도 수제맥주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믹솔로지는 취향에 맞게 술과 음료를 섞어 마시는 형태로 ‘하이볼’이 대표적이다.
일부 수제맥주 기업은 트렌드 대응을 외치며 맥주를 만들던 생산 시설에서 하이볼을 만들고 있다. 2000년 설립한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카브루는 리큐르 제조면허를 취득하며 포트폴리오 변경에 나섰다. 기존 맥주 제조면허로는 하이볼 제품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도 과일 맛 하이볼 등을 내놓으며 믹솔로지 트렌드에 올라타고 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상황도 비슷하다. 수제맥주 비중을 줄이고 믹솔로지 분야에 힘을 주고 있다. 2017년 맥주 사업을 시작한 부루구루는 지난해 맥주 매출(약 60억원)보다 하이볼(약 200억원)이 3배 이상 크다. 맥주 기업이 맥주가 아닌 다른 음료로 서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는 “수제맥주와 믹솔로지 소비층은 많은 부분 겹친다. 글로벌 시장으로 봐도 믹솔로지 인기가 상당하다”며 “요새는 수제맥주와 믹솔로지를 더해 한 카테고리로 보는 이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제주맥주는 수제맥주에 올인했고, 다른 업체들은 변화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제주맥주는 매각됐고 변화를 수용한 곳은 조금이나마 매출을 늘리고 있다”며 “달라진 주류 트렌드에 발맞춰 변화하지 않는다면 수제맥주 업체 생존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부진 이유 2] 컬래버 피로감
‘반짝 인기’ 얻은 대신 정체성 잃어
수제맥주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정체성 상실’로 보는 이들도 상당수다. 수제맥주란 독립 자본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기성 제품과 다른 개성 넘치는 형태로 생산한 맥주를 의미한다. 수제맥주 3대 요건으로 ‘독립성’ ‘소규모’ ‘독창성’이 꼽히는 이유다. 맥주 기본 재료인 몰트와 홉, 효모 등의 비중을 자유롭게 조정해 양조장별로 차별화된 스타일의 맥주를 만드는 게 수제맥주의 본질이다. 소비자가 기대했던 부분도 이런 지점이다. 기성 제품과 다른 퀄리티, 그리고 생산자의 진정성을 원했다.
하지만 국내 수제맥주 주류가 된 ‘편의점 맥주’를 살펴보면 남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제맥주 열풍을 불러온 편의점 납품이 오히려 독이 됐다. 편의점에 수제맥주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업체들은 수많은 컬래버 마케팅 제의를 받았다. 곰표 맥주, 말표 맥주, 새우깡 맥주, 진라면 맥주 등이 쏟아졌다.
물량이 달리는 일부 수제맥주 기업은 대형 주류 업체와 손을 잡기도 했다. 대기업이 수제맥주를 위탁제조(OEM)해 납품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됐다. 이름은 수제맥주지만 다른 기성 맥주와 똑같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맥주’가 돼버린 셈. 수제맥주 업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200개가 넘는 수제맥주 브랜드가 편의점에 쏟아졌다.
컬래버 마케팅 열풍은 얼마 못 갔다. 잠깐의 ‘흥미 유발’ 외에는 매력 포인트가 없던 탓이다. 대형 주류 업체와 함께 진행하던 OEM도 모두 중단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2월 제주맥주의 ‘제주위트에일’과 세븐브로이맥주의 ‘대표밀맥주(옛 곰표밀맥주)’ ‘골든에일’ 등의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고 밝혔다.
박재우 아트몬스터 대표는 “4캔 만원으로 요약되는 판매 가격으로는 수제맥주가 추구하는 뛰어난 품질도,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기도 아예 불가능하다. 차별화가 어렵다 보니 마케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지형 한양여대 외식산업과 교수 역시 “유명 브랜드와의 무자비한 컬래버로 양조장마다 갖고 있는 본래 개성은 잃고, 편의점과 할인마트 납품을 위한 목적만 갖다 보니 수제맥주의 개성이 떨어졌다. 결국 수제맥주 아이덴티티와 매출 모두 잃을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고 설명했다.

[부진 이유 3] 판로 부족
편의점 외에는 팔 곳 없어
수제맥주 반등 키포인트는 ‘정체성 회복’이다. 하지만 “현재 주류 유통·판매 구조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주류 소비는 크게 두 곳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식당이나 주점 같은 ‘유흥 시장’, 다른 하나는 편의점 등 소매점이다. 이 중 유흥 시장은 수제맥주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 한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식당이나 주점은 대형 주류 업체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냉장고는 물론이고 당장 앞치마 같은 소소한 물품도 지원 품목인데, 영세한 수제맥주 업체가 파고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결국 공략 가능한 오프라인 판로는 편의점뿐이다. 하지만 편의점의 경우 실질적인 납품단가 상한선이 존재한다.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제품 본연의 경쟁력이 아닌 ‘컬래버 마케팅’ 같은 요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류 시장은 유통사 힘이 너무 크다 보니 수제맥주 업체들이 스스로 힘으로 자리 잡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 편의점들이 진행 중인 ‘균일가 판매’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정책인데, 이에 맞춰야 하다 보니 생산 원가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재우 대표는 “수제맥주 선진국인 미국 내 평균 판매가는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라며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어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편의점이 아닌 온라인 같은 다른 판매 채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온라인 판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주세법상 온라인 결제와 배송이 가능한 주류 품목은 지역 기반의 전통주와 해외 직접 구매뿐이다. 해외 직구가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현행법은 ‘국내 주류 판매 면허 보유자(주류판매업자)’가 대상이다. 이에 해외 현지에 소재한 주류상점(리쿼숍)에 직접 주문을 넣어 배송받는 형태의 해외 직접 구매는 문제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해외’로 판로를 넓히고 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해 12월 ‘성수동 페일에일’과 ‘어메이징 라거’의 미국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대만에 이어 두 번째 수출 건이다. 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지 판매에 돌입했다. 더쎄를라잇브루잉 역시 동남아 등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는 “해외 수출이 필수가 된 상황이지만 강력한 주류 수입 규제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만의 규제를 뚫는 데는 약 6개월 정도 걸렸고 미국은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수제맥주 시장 전망은
온라인 판매 허용…숙원 1순위
국내 수제맥주 시장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주 판매 채널인 편의점은 하이볼·위스키 등 수제맥주 뒤를 이을 차세대 히트 상품 발굴에 여념이 없다. 최근 일본 맥주를 비롯한 각종 수입 맥주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수제맥주를 주력으로 파는 ‘펍’ 시장도 움츠러들었다. 외식 산업 전반이 부진하면서 최근 2년 동안 매출이 30% 가까이 빠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 공통된 의견이다.
‘편의점 맥주’가 부진할 뿐 일반 수제맥주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수제맥주와 편의점 맥주를 달리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현재 수제맥주를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국내 주세법에는 ‘수제맥주’ 정의가 없다.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가진 양조장에서 생산된 소규모 제조 맥주’가 수제맥주로 불려왔다. 그러다 팬데믹 기간 편의점 맥주가 대흥행하며 ‘편의점 맥주=수제맥주’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일각에서는 편의점 맥주 위기가 소규모 제조 맥주 생태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값이 싼 대신 품질이 떨어지는 편의점 맥주가 수제맥주 전체에 오해를 불러왔는데, 이런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다.
이와 관련 고품질 소규모 제조 맥주에 대한 수요는 굳건하다는 진단이다. 전국 60여개 양조장과 협업을 통해 수제맥주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생활맥주’가 좋은 예시다. 2014년 설립 이후 올해로 11년 차, 짧지 않은 업력을 갖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성장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2021년 176개였던 매장 수는 현재 260여개까지, 같은 기간 직영점 역시 27개에서 50개로 증가했다. 생활맥주 직영점에서 발생한 매출만 지난해 300억원대로 전년 대비 약 50% 늘었다.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다.
지역 기반 ‘로컬 브루어리’도 상황이 나쁘지 않다. 지역 브루어리에 방문해 갓 뽑은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는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주목받는다. 지역 특산물이나 지역 명소를 활용한 ‘로컬 마케팅’으로 탄탄한 입지를 갖춰나가고 있다. 인천 ‘인천맥주’,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 속초 ‘몽트비어’, 안동 ‘안동브루어리’, 경주 ‘화수브루어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 6층 건물을 통째로 활용해 양조장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서울브루어리’ 등 도심 내 양조장도 관심을 받는다.
수제맥주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정부 차원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온라인 판매 허용’은 모든 수제맥주 관계자 숙원이다. 해외 수제맥주는 온라인 구매가 허용되는 데 반해 국내 수제맥주는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해 온라인 판매가 가로막혀 있다. 양조장에 직접 방문하는 것 외에는 양조장이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현재로선 없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통주는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고 그 외 주류는 불가능한 건 상당히 불합리한 규제”라며 “수제맥주 온라인 판매가 안 되는 국가는 한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K-비어, 아직 10살…팬덤 문화 정착이 장기 과제”

이인기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2015년 창간한 맥주 전문지 ‘비어포스트’ 발행인이자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위치한 브루펍 ‘비어바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맥주 대회로 알려진 ‘월드비어컵(World Beer Cup)’에서 국내 수제맥주 최초로 은상을 수상하는 등 빼어난 양조 실력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Q. 최근 불거진 ‘수제맥주 위기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수제맥주 시장 상황이 어렵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편의점 맥주와 소규모 제조 맥주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량생산되는 질 낮은 편의점 맥주에 대한 인식이 수제맥주 전반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다. 업계 내에서 ‘수제맥주라는 용어 자체를 버려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을 정도다. 제주맥주 등 최근 이슈가 된 건 편의점 맥주다.
Q. 수제맥주가 부흥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A. 첫째는 역시 ‘품질’, 둘째는 품질에 기반한 ‘팬덤’ 문화다. 소규모 수제맥주가 대기업 맥주보다 잘할 수 있는 건 결국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다 보니 재료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개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일단 팬덤을 확보하고 나면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다. 마케팅 등 비용 문제에서도 다소 자유로워진다. 해외 유명 양조장은 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다.
Q. 한국 수제맥주 품질이 해외 대비 많이 부족한 편인가.
A. 그렇지 않다. 국내 브루어리가 해외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다. 맛만 좋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팬덤이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수제맥주는 2014년 출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고작 10살이다. 해외 사례를 봐도 양조장이 명성과 팬덤을 얻기까지 최소 20년에서 30년은 걸린다.
Q. 팬덤을 만들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A. 일단 맛을 봐야 팬이 된다. 양조장이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려야 한다. 지역 기반 ‘맥주 페스티벌’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마케팅이나 생산 증설 등 초창기 과도한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 그래야 20년, 30년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기를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3호 (2024.04.03~2024.04.0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