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동안 한국 도시 20곳을 돌아다녔어요(1월 24일 포스팅).”
틱톡에서 130만 폴로어를 보유한 미국인 인플루언서 맥스 에이브러햄(27, 이하 맥스) 얘기다. 그는 미국에서 청소년기에 뉴욕 소재 순두부찌개집에 갔다 한식에 매료됐다. 2019년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더욱 반했단다. 이후 코로나19 초창기 아예 한국으로 와서 순댓국, 김밥, 김치찌개 등 다양한 한국 음식, 문화를 소셜미디어(SNS)에 소개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폴로어 수가 늘어났다. 엔데믹이 되자 그는 영어권 폴로어는 물론 유럽 팬까지 두루 갖춘 인플루언서로 급성장했다. 맥스가 소개한 한국 곳곳의 식당, 미용실 등을 가보고 체험해보고자 하는 외국인이 줄을 섰다. 맥스는 “일주일간 ‘서울 아닌 지역으로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 ‘회식’이라는 말이 있던데 어떻게 하는 거냐’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질문을 해오는 외국인이 정말 많아졌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실제 오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극심하던 2021년 방한 외국인 수는 97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00만명으로 폭증했다. 이제 톰 크루즈, 티모시 샬라메, 마고 로비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국 한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은 일상 뉴스 속 한 장면이 됐을 정도다. 인구 절벽, 내수 침체를 우려하는 대한민국으로서 새로운 기회의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매경이코노미가 방한 외국인 동선을 추적해보고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신(新)상권 지도를 조망한 배경이다.
# 1. 지난해 상반기 중국 단체관광 재개 방침이 알려지며 일제히 면세점 주가가 치솟았다.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으로 유커가 대거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 덕분이다. 실제 8월 중국 당국은 유커 여행을 허용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지만 ‘유커 특수’는 없었다. 기대를 모았던 호텔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주요 면세점 업체 목표주가는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특히 면세점 매출이 한때 90%에 달했던 호텔신라는 지난해 8월 한때 주가가 9만원대까지 올랐지만 올해 2월 말 기준 주가는 6만원대를 턱걸이할 정도로 떨어졌다.
# 2. 외국인 많은 거리 매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면세(Tax Free)’ 혹은 ‘세금 환급(Tax Refund)’이라는 글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국가가 지정한 업종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거나, 아예 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 등을 면제한 가격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환급 시스템을 갖춘 국내 1위 회사가 글로벌텍스프리다. 코로나19 기간에는 110억원대 적자를 내기도 했던 이 회사는 엔데믹 이후 실적에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후 9월부터는 코로나 이전 최고 매출액도 경신했다.
강진원 글로벌텍스프리 대표는 “방한 외국인이 면세점에서 물건 사기보다 시내 곳곳을 둘러보다가 거리 매장에서 상품 구매하는 비율이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도 호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기업 계열 면세점이 고전하는 사이 세금 환급형 거리 매장처럼 완전 다른 실적을 보이는 업태가 적잖다. 방한 외국인의 소비 행태가 이처럼 크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외국인은 대형 면세점 말고 어디서 어떤 소비를 하고 있을까.
매경이코노미는 BC카드, 하나카드, 나이스지니데이타, 글로벌텍스프리, 크리에이트립 등 방한 외국인 구매 이력, 방문 이력을 다루는 업체 빅데이터를 모아봤다. 비교 시점은 코로나19 이전 가장 많이 외국인이 들어왔던 2019년 대비 사실상 엔데믹 원년인 2023년으로 잡았다.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 신(新)상권 지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각을 맞춰봤다.

방한 외국인 왜 주목해야 하나
방한 외국인이 중요한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GDP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관광 대국인 마카오(72%), 태국(21.9%), 그리스(21.2%) 등은 GDP 비중의 20% 이상을 관광 산업이 차지한다. 전 세계 평균도 10.4%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은 2.8%에 불과하다. 이 비율을 미국(7.8%), 일본(7.5%) 수준만큼만 올려도 내수 경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하지만 이전까지 국내 관광 산업은 단체관광,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코스 등으로 재방문율 혹은 재방문 의사 설문에서 그리 좋은 성적표를 얻지 못했다.
최근 상황은 다르다. K컬처의 전 세계 확산에 따라 한국을 세계 트렌드의 성지로 인식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본 유통 대기업이 서울 성수동 작은 베이커리 ‘뚜르띠에르’를 발굴, 일본 전역에 지점을 내는가 하면 마르디메크르디, 오소이, 샌드베이지와 같은 패션 브랜드 매장을 찾아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도 급증했다. IT 기술 발달, OTT, 소셜미디어 활성화로 K컬처를 접하는 세계인이 급증한 덕분에 이들이 이제 알아서 사전조사, 체험 동선 계획 등 능동적인 태도로 한국을 방문한다.
삼성패션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신조어 ‘틱톡 쿠튀르(TikTok Couture· 틱톡이 실시간 트렌드의 발원지가 되는 현상)’ 여파가 적지 않다는 현장 목소리도 있다. 파리에서 열리는 고급 맞춤복 박람회 ‘오트 쿠튀르’에서 따온 신조어다. 한국, 한국 문화, 제품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SNS 챌린지(한 주제의 릴레이 영상물)가 외국인의 한국 방문을 더욱 촉진시킨다는 말이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관광객과 기타 방문객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코로나19 이후 한 달 살기, 디지털 노마드 등 글로벌 현상과 맞물려 이제는 다양한 목적과 형태의 한국 방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트렌드 때문인지 외국인의 국내 체류 기간은 2019년 6.73일에서 2023년 7.82일로 늘어났다.

트렌드 어떻게 바뀌고 있나
부산 동구, 남구에 무슨 일이?
BC카드 자료에 따르면 행정구역 단위 외국인 매출액을 꼽아본 결과 2019년 대비 지난해 적잖은 지역 순위 바뀜이 있었다. 우선 만년 1위 서울 중구가 3위로 내려온 자리를 서울 강남구가 꿰찼다.
전국구로 보면 엔데믹 후 부산 동구와 남구의 외국인 매출액이 급증했다는 점이 눈길 끈다. 부산 동구는 2019년 대비 지난해 373% 늘었고 남구 역시 16.4% 늘었다. 지역 매출 순위에서도 동구는 2019년 23위에서 지난해 13위, 남구는 14위(2019년)에서 지난해 10위로 뛰어올랐다. 부산 동구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엔데믹 후 크루즈 등 대형 선사가 이곳을 중간 기착지로 정하면서 외국 관광객이 급증했다.
부산 남구는 부경대, 경성대 등 대학 밀집 지역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대거 유입으로 구민의 10%가 외국인일 만큼 국제화된 영향이 컸다.
‘팝업 성지’ 성수동 열풍에 서울 성동구도 순위가 껑충 뛰기는 마찬가지. 2019년 35위였던 성동구는 지난해 23위로 순위가 올라갔다. 이처럼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상권 지도가 확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방한 외국인 대상 신종 서비스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한국 맛집, 숙소, 댄스 스튜디오 등 다양한 체험 공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외국인 고민이 많았다. 캐치테이블, 크리에이트립 등 국내 스타트업에서 제공하는 IT 서비스로 손쉽게 예약부터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IT 인프라가 많이 개선됐다. 짐 때문에 멀리 여행하기 힘든 수고도 공항, 기차역 등에 맡겨두고 숙소까지 배송해주는 ‘짐캐리’와 같은 스타트업이 해결해주는 등 개별 자유 여행객을 위한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때밀이 관광’의 진화 버전인 ‘1인 세신’, 퍼스널 컬러 진단, 사주, 한방 체험, 교복 대여(롯데월드) 등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른 양태의 서비스에 열광하는 외국인도 늘었다.
이는 외래 관광객 다변화 영향이 크다. 코로나 이전 외래 관광객의 70%는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미국인 등 5개국 중심이었다. 엔데믹 후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3개 국가 관광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그만큼 니즈가 다양해졌다.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는 적잖다. 권태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데이터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한국 여행 중 방문 지역의 경우 서울 방문율이 2019년 76.4%에서 2023년 82.4%로 늘어나 서울 중심 여행 행태는 지속되고 있다”며 “민관이 합심해, 여행 형태 다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 전성기(2019년) 대비 지난해 비교
매경이코노미는 빅데이터 전문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의뢰해 2019년 대비 2023년 서울시 주요 상권 내 외국인 신용카드 결제액 변화를 비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쓰는 비자·마스터카드 등과 제휴를 맺고 있는 하나카드와 비씨카드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주요 상권마다 업종별·국적별 결제액 증감 비교를 통해 전체 소비 트렌드 변화를 들여다봤다. 서울 외 국내 주요 수도권·지방 도시(시·군·구 기준) 결제액 변화는 비씨카드에서 데이터를 전달받았다.
신용카드 결제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 소비와 관련된 정보를 조사했다. 국내 1위 세금 환급 대행사이자 한국에서 가장 많은 택스 리펀 관련 데이터를 보유한 ‘글로벌텍스프리’에 의뢰해 2019년 대비 2023년 업종별·상권별 매출액 증감을 파악했다. 전 세계 50여개국 누적 가입자 60만명을 보유한 글로벌 K-관광 포털 스타트업 ‘크리에이트립’은 2023년 기준 거래 건수가 가장 많은 여행 상품 업종과 판매 상위 상권 정보를 제공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