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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으로 출근해 배우로 퇴근합니다 … 무대 빛내는 직장인 극단

김형주 기자
입력 : 
2025-03-14 17:13:32
수정 : 
2025-03-14 19: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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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극단 '인연'의 구본혁 대표는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연기를 지도하며, 감정의 깊이를 강조했다.

아마추어 극단의 활성화는 공연 시장의 성장과 관련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무대 예술을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허물고, 더 많은 이들이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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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극단이 뜬다
뮤지컬·연극 공연시장 성장
무대예술 참여 수요도 급증
전문가가 수개월 연기 교육
"연습하며 일상 에너지 얻어"
직장인 극단 '인연'이 무대에 올린 연극 '그을린 사랑'.  인연
직장인 극단 '인연'이 무대에 올린 연극 '그을린 사랑'. 인연
"감정이 천천히 식어야 해요. 지금은 양은 냄비처럼 너무 빨리 식었어요. 뚝배기가 돼야 합니다!"

서울 사당동의 지하 연습실. 직장인 극단 '인연'의 구본혁 대표가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했다. 15~16일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하는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준비하는 단원들이었다. 배우들은 대본을 든 채 각자 배역을 연기하고, 연출을 맡은 구 대표는 "너무 느려요" "지금 바로 치고 들어와야 해요" "지금까진 다 거짓이었죠.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해요" 등 섬세한 조언을 하며 장면을 만들어나갔다.

직장인·일반인이 연기 교육을 받고 작품을 준비해 공연하는 아마추어 극단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단원들은 연극·뮤지컬을 전공한 전문 강사나 현직 배우, 연출가에게 지도를 받고 수개월간 연습해 직접 무대에 오른다. 무대 디자인과 장치를 준비하고 배역별로 배우들이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등 프로 공연에서 하는 과정이 대부분 이뤄진다.

아마추어 극단이 활성화된 것은 공연 시장이 커지면서 관람을 넘어 직접 무대 예술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보며 감동과 에너지를 얻던 관객들이 용기를 내 스스로 공연을 하려 하는 것이다.

직장인 극단 '왓'을 운영하는 남승주 연출가는 "연극·뮤지컬 애호가가 많아지고 직장인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좋아지면서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배우를 동경하거나 어릴 적에 연기자를 꿈꿨다가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극단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들 극단의 프로그램은 크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과 기본 연기 역량을 기르는 수업으로 나뉜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는 전문 연출가와 강사가 붙어 단원들을 지도하고 한 장면씩 작품을 만들어간다. 연기 교육에서는 몸의 감각을 깨우는 신체 활동부터 즉흥 상황극 만들기, 제시어를 몸으로 표현하기, 자신의 일상 연기하기, 독백 연습 등이 진행된다. 주로 대학 연극영화과 등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일반인 수준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최근 기자가 참관한 수업에서는 연기를 시작하기 전 미리 감정을 만드는 훈련이 이뤄졌다. '인연'의 강사 김한울 배우는 단원들에게 짧은 대사를 연기하게 한 뒤 다음번에는 벽을 때리거나 발을 구르는 격한 움직임, 상상과 호흡으로 감정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연기에 들어가게 했다. 단원들은 다른 사람의 연기 변화를 관찰하고 연기에 앞서 감정을 만들어놓는 것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 후 저녁 시간과 휴일을 쪼개 연기를 배우는 직장인 단원들은 극단 활동이 일상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연극 '벚꽃동산' 공연을 준비 중인 수술실 간호사 A씨(27)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하는데 3시간 동안 다음 한 주에 쓸 긍정적 에너지를 모두 얻고 간다"며 "일상에서는 표출할 수 없는 밀도 높은 감정을 표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극단에서 시작해 프로 무대에 서거나 전문 연극인이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아마추어 극단이 올리는 공연 중 유료 라이선스를 받아 온 일부 작품은 배우들이 프로 공연 출연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직장인 극단에서 실력을 쌓고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이면 프로 무대로 영입되기도 한다.

연극계의 저변이 두꺼워지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 연출가는 "일본이 야구 강국인 것은 야구를 생활체육으로 즐기는 자원이 많아 선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공연을 즐기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 많아지면 공연 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취미에 열중하는 요즘 직장인에게 무대 예술의 장벽은 높지 않다"며 "무대는 더 이상 전문 배우만의 공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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