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년 전의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유산세 방식의 과세 체계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시 조세제도와 세무행정은 아직 초기 단계였고, 세원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소득세 과세 여건도 좋지 못했으며, 부가가치세도 도입되기 이전이었다. 과세 범위가 포괄적이고 행정 절차가 단순한 유산세 방식이 도입된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먼저 경제 규모가 급성장하면서 개인의 소득은 물론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가족 구조가 변화하면서 상속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장자(長子) 상속'이 아닌 자녀 간 '공평 상속' 문화가 정착했다. 국민의 납세의식과 세무행정 역량 역시 75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숙했다.
이런 측면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의 과세 체계 도입은 긍정적이다. 유산취득세 방식 아래서는 상속인의 세 부담 능력에 따라 과세가 이뤄진다. 과세의 기본인 '응능부담의 원칙'이 실현되는 것이다. 또 각각의 상속인에게 공제를 제공하므로 유산세 방식보다 많은 감면 혜택이 다자녀 가정에 주어진다. 가족 친화적 세제로 한 걸음 진보하는 개편이다.
정부가 현행 '합계 10억원'인 상속세 공제액을 '배우자 10억원, 자녀 각 5억원'으로 상향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소득 증가, 부동산 가격 상승, 가족 구조 변화에 부합하는 조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속세 최고 세율과 세율 구조는 그대로 두었는데, 이는 상속세제 개편의 수혜 대상으로 '대규모 자산 상속'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필자는 금융시장에 드리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그림자를 상기할 때, 현재 50%(대주주 할증 포함 시 60%)에 이르는 상속세 최고 세율을 40%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판단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 거버넌스의 불투명성뿐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 그리고 그에 따른 '나쁜 균형'에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이 배당을 활성화하면 주가가 상승하고, 주가 상승은 연쇄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높인다. 이를 고려해 기업이 배당에 소극적으로 나서면 '소극적 배당-낮은 주가-탈법적 상속 추구'라는 나쁜 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세제 측면에서 상속세 최고 세율과 대주주에 대한 배당소득세를 적절히 인하하면 나쁜 균형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때 많은 선진국이 운용하고 있는 '이중 소득세 체제(Dual Income Tax)'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제안한다. 배당소득과 자본이득소득에 대해서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경제·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상속세를 개편하는 동시에, 우리 금융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언이다.
[이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