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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부활하는 제국주의, 살길은 자강과 국익뿐…“변하고 변하자”

공창석 前경상남도 행정부지사(現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
입력 : 
2025-03-31 14:29:23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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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탄핵 사유로 '친미'와 '친중'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며 외교 이념 대결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친'과 '반'의 이분법적 감정을 통념화해왔으며, 이는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감한 외교 감정을 유연하게 다루고 자강을 통해 국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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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석 前경상남도 행정부지사(現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
공창석 前경상남도 행정부지사(現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

‘친미(親美)’냐 ‘친중(親中)’이냐? 최근에 가장 핫한 정치 용어의 하나다.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유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했다는 문구를 명시함으로써 공론화되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문구라며 후폭풍을 경고했고, 야당은 수습에 나서 진위가 아니라며 해명하고 탄핵소추안에서 이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자 중국이 왜 문구를 뺐느냐고 뒷조사하며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 보수는 ‘친미·친일과 반중·반북’, 진보는 ‘반미·반일과 친중·친북’의 외교 노선을 주창한다. 그런 판국에 일반 시위 현장의 단순한 외침이 아니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이 문구는 우발적 해프닝으로 대충 얼버무릴 사안일 수 없다. 이념대결의 민낯이 세상에 노출된 엄중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어떤 나라 이름 앞에 ‘친(親)’ 또는 ‘반(反)’을 붙이는 것이 통념화되어 있다. 즉 ‘친미·반미’, ‘친일·반일’, ‘친중·반중’ 등의 이분법적 용어를 일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에서 우리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왜 유독 우리만이 그럴까? 냉철히 파고들면 외교 역사의 뼈아픈 질곡을 되씹게 된다. 그것은 고대로까지 올라간다. 특히 친중(親中)과 반중(反中)이 그렇다.

친중과 반중, 우리가 고조선 이래 수천 년 동안 시달려 온 명제다. 때로는 반중이 주류를 이루어 중국과 견원지간으로 싸웠고, 때로는 친중이 득세하여 중국을 큰 나라로 섬겼다. 어떻든 고려 때까지는 독립 자주성을 견지하며 친중과 반중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근세의 조선에 와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다. 오로지 친중으로 빠져버렸다. 조선은 1392년 건국하면서 스스로 명나라를 섬기는 제후국을 표방함으로써 외길 친중의 멍에를 짊어졌다. 그러므로 나라 이름 앞의 ‘친’과 ‘반’은 ‘좋다’, ‘싫다’의 감정을 넘어서 강국을 섬기는 자주성의 나약함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릇 나라 외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학습하는 외교 역사는 빛나는 독립국이기보다 힘없는 작은 나라였음을 의식화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조선의 사대교린(事大交隣)이다. 사대교린은 조선이 중국(명나라)을 섬기고 이웃의 일본, 여진 등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외교정책이다. 오늘날 학계 통설은 조선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주체적으로 사대교린을 기획하고 시행했다고 본다. 과연 그러할까? 사대교린 정책은 조선이 명나라의 제후국이 됨으로써 시행된 것이지, 먼저 이 정책을 기획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제후국이 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조선이 명의 제후국이 된 이상 당연한 귀결이고, 이웃 나라와 잘 지낸다는 교린은 제후국이 취할 외교 노선일 뿐이다. 즉 사대교린은 제후국의 본분을 따르는 불가피한 외교 방편이다. 조선은 사대교린을 꾀함으로써 명의 제후국이 된 것이 아니고, 제후국을 선택함으로써 사대교린의 틀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다. 따라서 사대교린에 대한 지금의 통설은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사대교린과 나라 이름 앞의 ‘친’, ‘반’이 무슨 관계가 있나? 외교 감정이 깊이 연관된다. 사대교린의 제후국에서는 경쟁할 주적(主敵)이 없는 셈이다. 왜냐하면 외교권이 종주국에 있으므로 주적이냐의 판단이 종주국의 결정에 의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대교린은 주적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와의 쟁패를 건 경쟁은 없고, ‘친하거나’, ‘친하지 않거나’의 호불호가 지배적인 감정이 된다. 결국 우리는 외교권이 제한된 조선왕조 500여 년간 다른 나라와의 경쟁 없이 단지 ‘섬기거나’, ‘친하거나’, ‘불편하거나’의 외교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특정 나라 이름 앞에 ‘친’, ‘반’을 붙이는 감정이 통념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대교린에서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자강(自彊) 정신이 뒷전으로 밀리고, 국제 상황에 대처하는 대응력의 함양이 저해된다. 이 점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말을 통해서 절감할 수 있다. 그는 “어떤 국가에 대해 친근감이나 혐오감을 지속적으로 완고하게 견지하는 자세는 배제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특정 나라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이 상황에 따라 변해야지 불변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조선의 사대교린은 호불호의 감정조차 제약당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변화의 감정을 닫아버리는 보수의 ‘친미·친일·반중·반북’, 진보의 ‘반미·반일·친중·친북’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오늘날 국제 외교에서 철칙으로 삼는 말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파머스톤(Palmerston) 수상이 한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영원한 국익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이다. 1972년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이 말을 되새기며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이루어냈다. 오늘날 지구는 적도 친구도 없는 세상으로 격변하고 있다. 3년 전 UN 상임이사국인 강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땅을 20% 정도나 빼앗았다. 올 1월에 들어선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를 내걸며 한술 더 뜨고 있다. 침략국 러시아를 두둔하고, 군비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우크라이나를 궁지에 몰아 광물 협정을 강요하고, 그린란드를 영토화하려 하고, 파나마 운하의 관할권을 요구한다. 심지어 이웃 나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고도 한다. 공공연히 UN과 NATO 탈퇴를 시사하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멕시코 등 동맹국에도 관세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이 틈새를 노리는지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설치한 것처럼 서해에 가로 50m, 높이 50m의 철제구조물을 무단 설치하여 의도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열강들이 땅따먹기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오직 국익만이 있을 뿐인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국익을 어떻게 얻고 지킬 것인가? 언론에는 정치인, 지식인 등이 내놓는 갖가지 해결책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따져보면 명백히 한계가 있는 백가쟁명의 대책에 그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처지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수동적인 입장에 그칠 수밖에 없는 탓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원점에서 해결책을 찾자’라는 관점에서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제국주의의 부활을 직시하고 힘써 자강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안보와 외교의 기본 토대는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편들고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라지만, 한미동맹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그간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처사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작금의 불확실한 국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해결책은 스스로 강력해지는 자강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나라 이름 앞에 붙이는 ‘친’, ‘반’의 통념을 깨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선의 국익은 제국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특정 나라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갈 길은 자명하다. 사대교린 외교 감정의 굴레를 벗자. 특정 나라 이름 앞에 ‘친’, ‘반’을 붙이는 유일한 나라라는 소리를 듣지 말자. 이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치유하는 첫머리이기도 하다. 살길은 오직 자강과 국익뿐, 변하고 변해야 한다.

[공창석 前경상남도 행정부지사(現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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