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의생명과학 기술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의약품 시장이 반도체 시장 규모의 3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2021년에 1조50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28년에 2조20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빅파마'로 불리는 20개 제약회사가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미국(11개), 영국(2개), 독일(2개), 프랑스(1개), 일본(1개), 이스라엘(1개), 스웨덴(1개) 등의 국가에 속해 있다. 중국의 약진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2년 중국은 의학·생명과학, 물리학, 예술·인문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최상위급 학술 성과를 점유하며 미국을 앞질렀다. 중국은 의생명과학 분야에서도 미국을 추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생명과학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바이오의약품, 특히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에서도 세계적인 일류 병원들과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취하며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추격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최근 들어 정부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채택해 세계 기술을 선도하고자 한다. 이는 기술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선진국 지위를 점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환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의생명과학에 공학을 포함한 다학제인 '의생명공학' 분야에서의 인재 양성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공학, 바이오헬스 등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 발굴이 필요하다. 의료와 인접 학문 간의 융합 연구가 없었다면,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면역치료 기술의 경우 면역학자, 의사, 약리학자, 인공지능·데이터 과학자, 바이오테크 기업이 협력해야 혁신적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것은 결국 의사의 역할이다. 병원과 의료 현장이 의생명 연구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에서 가장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의·약학 계열을 선호한다. 졸업 후 이들은 대부분 환자 진료에 종사하지만, 의생명공학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또한 바이오 스타트업과 같은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민정준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