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민첩하게 AI 기반의 첨단산업으로 재편하고 세계 산업 제패를 현실화하고 있다. 배터리·전기차는 이미 세계 선두이고 자율주행차는 테슬라와 선두 경쟁 중이며 반도체 자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AI·양자·바이오·우주항공도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AI 안전규제'를 폐기하고 이튿날 5000억달러 규모의 'AI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규제는 없애고 투자는 늘려 기술패권을 굳히려는 조치다.
AI 혁명 속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대대적 정책 변화가 예고된 지금, 한국은 당장 트럼프 정부와 만나 트럼프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처럼 거래의 묘미를 펼쳐야 한다.
트럼프 1기 출범 직후인 2017년 3월 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던 필자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만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통상 압력이 고조되던 상황이었으나 회담은 양국에 득을 안겨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상대가 원하는 대미 흑자를 줄이기 위해 수입처만 미국으로 돌리고 대미 투자를 늘리는 패키지를 먼저 제시한 덕분이다. 트럼프 2기는 중국의 급부상을 지연해 우리 산업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 더 빠르고 철저한 거래 마인드로 미국과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협상 패키지의 첫 번째는 미국이 협력을 제안한 조선업이다. 우리는 미국 본토와 필리핀, 베트남 등에 해외 조선소가 있어 태평양해에 분포된 미 해군 군함의 유지·보수·정비와 군함 건조까지 가능해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 없이 첨단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에는 일본·독일 등 다른 동맹국은 부족한 우리의 정보통신기술(ICT) 하드웨어·제조 역량이 필요하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패키징까지 한 기업에서 할 수 있는 AI 반도체 기술을 갖춘 한국은 전기·자율주행차·방산은 물론 원전·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분야까지 협력이 가능하다.
이들 첨단산업은 막대한 투자가 필수로 기업들은 선단식 경영에서 벗어나 신성장 동력화한 AI와 바이오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기업 집단별로 핵심 역량에 연구개발(R&D)·인력·시설 투자를 집중해 1~2개 업종에 주력하는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는 인수·합병(M&A) 시 양도세·취득세 감면 등 세제 특례와 자금 조달 루트 마련 등으로 이를 도와야 한다. 기업결합심사 절차를 완화하고 배임죄 면책 등 사업 재편도 과감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정부가 모여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도 찾아야 한다.
미래 산업을 관통할 AI, 바이오 위주로 산업을 재편하고 기업도 핵심 역량 위주로 몸집을 줄여 전문성과 기동성을 갖춘 거버넌스로 바꿔 내실을 다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할 때, 파괴적 혁신 속 K산업의 생존은 가능할 것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