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 패싱 우려 큰데
우리 외교 사실상 마비 상태
정, 트럼프家와 세지포 인연
이번 취임식서도 우애 과시
한미 양국가교 큰 역할 기대
우리 외교 사실상 마비 상태
정, 트럼프家와 세지포 인연
이번 취임식서도 우애 과시
한미 양국가교 큰 역할 기대

이름 자체가 '승리(trump)'인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이 지난 20일 워싱턴DC에서 화려하게 취임식을 가졌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민주당의 해리스 부통령에게 압승을 거두고 45대에 이어 4년 만에 대통령 지위에 복귀한 것이다.
취임식 행사에서 트럼프는 지난 1기 때보다 훨씬 강해져 돌아왔다. 취임 전부터 '겨울 백악관'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캐나다 트뤼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등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그였다.
취임사와 '비공식 연설'에서 그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흔히 하는 전임자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나 감사는 전혀 없었다. 시종일관 면전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그 시대를 비판하고 모욕했다. 바이든이 지난 4년간 자신에게 했던 정치 보복성 수사를 비난하고 작년 7월 총기 암살 시도로 피살될 뻔했던 사실까지 언급할 때는 섬찟함조차 느꼈다. 美 헌법상 더 이상 연임할 수 없는 트럼프가 앞으로 4년 동안 어떠한 눈치도 안 보고 공격과 보복을 감행할 것이란 어두운 예감이 들었다.
한국도 전혀 안심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은 취임사 초반부터 읽혔다. 그는 "이제 다른 나라가 이득을 보려고 미국을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리라. 하지만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트럼프는 한국이 반도체·조선 등 제조업 강국이자 부자이면서, 미국민들의 세금으로 자국 방위를 신세 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를 10배 가까이 올리려는 배경이다.
미국의 이런 생각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과거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워싱턴포스트(WP) 기사 제목이 '플러그(plug)를 뽑아라'였다. 한국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중단하라는 경고였다. 한국이 6·25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기여는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한마디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한국'이라는 것이다.
이미 '한국 패싱'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불렀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가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칭한 것이 실수가 아니었다. 트럼프 1기와 달리 미 정부는 북핵을 인정하면서 군축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시사였다. 머지않아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 북한 김정은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자회담을 하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과거 같으면 한국과 미국 정부가 美 대통령의 입장과 워딩을 사전에 조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필승코리아'가 아니고 '탄핵코리아'다.
당분간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외교에서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하지만 유일한 희망의 끈이 있다면 의외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다. 지난달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방문에서 트럼프를 직접 만난 데 이어 이번에도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교류했다. 가족만을 절대 신뢰하는 트럼프의 최측근이 바로 주니어가 아닌가. 15년 전 매일경제 주최 세계지식포럼에서 나란히 앉아 우정을 나눈 인연이 '탄핵코리아' 와중에 빛을 발하고 있다.
이번에 많은 재계·정계 인사들이 워싱턴을 찾았지만 단연 정 회장이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트럼프 태풍이 한국을 휩쓸 때 그나마 트럼프 가족과의 대화 채널로 정 회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강효상 칼럼니스트·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