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조를 보면, 동법은 '상속세의 공정한 과세, 납세의무의 적정한 이행 확보 및 재정수입의 원활한 조달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속세는 공정한 과세와 재정수입 확보라는 국가적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이 시대의 경제인으로서 현재의 상속세가 경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1999년 이후 동결된 상태로,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하면 50%가 적용된다. 최대주주가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주식을 상속할 경우 평가액의 20%를 가산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도 있어서 실질적인 세율이 최대 60%에 이를 수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인 27.1%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를테면 5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상속받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계산을 단순화하기 위해 공제액은 없다고 가정한다. 상속세율 60%를 적용하면 3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를 현금으로 내기 어려워 주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 이율이 약 8%라고 하면 연간 약 24억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이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코스피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약 2%이고, 고배당 미국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인 SCHD의 수익률도 약 3.5% 수준이다. 긍정적으로 3.5%로 가정해도 500억원의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은 약 17억5000만원이지만 종합소득세를 제외하면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약 8억8000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세후 배당금(8억8000만원)보다 대출 이자(24억원)가 훨씬 많아 매년 15억2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 손실이 14년 동안 누적되면 총 200억원에 달하고 여기에 갚지 못한 대출 원금 300억원까지 더하면 상속받은 500억원의 자산이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혹자는 이런 문제를 일부 소수의 사례로 치부할 수도 있다. 또는 연기금이 회사를 소유하고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그 많은 중소·중견기업을 모두 연기금이 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전문경영인 시장 역시 규모가 충분히 크지도 않다.
가업승계제도를 활용할 수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이 상속에 직면했을 때 많은 경우 기업 운영을 포기하고 매각이나 청산을 선택하곤 한다. 기업을 팔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투자이민 컨설팅이 나날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산취득세로의 전환, 세율 및 공제 조정 등 현 상속제도의 개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경우선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