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선주의 큰 틀 안 벗어나
국내 투자자 변동 대비 필요
ETF 발행 등 韓로드맵 짜야
국내 투자자 변동 대비 필요
ETF 발행 등 韓로드맵 짜야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에서 규제주의자로 알려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취임 첫날 해임하겠다고 밝히며, "업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규칙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트코인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으로 채택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13일 발행된 트럼프코인은 일주일도 안 돼서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트럼프 2기 동안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제도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발언이 있다. 2024년 12월 18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은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자산이 정해져 있으며, 비트코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연준이 비트코인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연준은 이러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까운 시일 내 미국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을 보유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트럼프 1기 때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던 공약처럼 트럼프의 모든 발언이 정책화되는 것은 아니다.
가상자산 시장은 현재 세 번째 상승 사이클을 맞이하고 있다. 첫 번째는 2017년 ICO(가상자산 초기 공개) 열풍이 주도한 상승기였고, 두 번째는 2020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과 디파이(탈중앙화금융)가 결합된 상승기였다. 그리고 지금 2025년, 트럼프 당선이 촉발한 세 번째 상승기가 전개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한국이 앞선 두 차례의 사이클에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투자자 피해를 경험한 국가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거래량이 주식시장 거래량을 상회하는 유일한 국가다. 2025년 우리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6조원 수준인데, 가상자산시장은 18조원이 넘는다. 특히 국내에서는 기관투자자나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제한돼 있어 이러한 거래량이 순전히 개인투자자들에 의해 창출됐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어떤 국가도 우리와 같이 비대한 가상자산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가상자산 정책은 독자적인 경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가상자산의 활성화가 국가 경제 경쟁력 강화로 직결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발행과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업무 허용 여부, ICO 허용 여부는 우리의 로드맵을 갖고 가면 된다. 트럼프의 정책 기조가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가상자산 관련 발언도 미국 패권이라는 렌즈를 통해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