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정치사를 살펴보면 10여 년간의 대의민주제 도입기를 거쳐 30년에 가까운 군사독재 시기, 그리고 그 이후 30여 년간 제왕적 대통령과 적대적 당파주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1215년 영국의 대헌장으로 태동된 민주주의의 씨앗이 왕정을 무력화하고 서구의 보편적 정치 체제로 자리 잡기까지 700여 년이 걸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중 상당수는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왕조시대적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주적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해 정치적 불안정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아직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왕조시대에서 대의민주제로의 전환기 서양 정치사를 돌아보면 왕조 축출기에는 대체로 투쟁의 선봉에 선 선동가가 주도적 역할을 했고, 대의민주제가 자리를 잡아 가는 시기에는 대중 영합적인 포퓰리스트가 득세하다가 민주주의 성숙기에는 토론과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정치가가 주도권을 잡는 과정을 거쳐 왔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선동가는 자기 논리와 주장을 확고히 하고 반대파들을 적과 악으로 간주하며 잔혹하게 몰아내려는 경향을 보이고, 포퓰리스트는 합리적인 논리와 방향 없이 무조건 다수 대중의 의사에 동조해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선동가가 활보하는 시기에는 국민과 정치 세력을 양분해 서로 적대시하게 하고 대화와 타협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려워 정치가 투쟁으로 일관되고, 포퓰리스트가 앞장서는 시기에는 국가 미래나 국민 행복은 안중에 없고 정권 획득과 유지에만 혈안이 돼 국가 발전이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여전히 선동가와 포퓰리스트가 다수를 차지하는 초기적 민주주의 성숙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깨어 있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맹자는 '권력자는 백성들을 인(仁)과 의(義)로 다스려야 하고, 백성들은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올해 있을지 모를 대선에서는 정권 탈취만을 위해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와 국가 미래와 국민 행복을 위한 청사진과 실행 의지 없이 대중 영합적인 주장만 일삼는 포퓰리스트를 가려내고, 확고한 미래 비전과 실행 계획을 세우고 대화와 타협으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이뤄낼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