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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매경데스크] K콘텐츠 구할 '약한 영웅'이 없다

전지현 기자
입력 : 
2025-05-15 17: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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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은 한국 OTT 웨이브의 위기 속에서 성공적인 반전을 이끌어냈으나, 최근 두 번째 시즌이 넷플릭스로 넘어가는 상황이 나타나며 토종 OTT의 어려움을 상징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콘텐츠 확장과 더불어 유력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흡수하면서,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제작비 상승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며, 두 회사가 합쳐서 더욱 강력한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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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자본 앞세운 넷플릭스
가족 드라마·예능까지 접수
한국, 넷플 하청기지로 전락
토종 OTT 뭉쳐야 한류 산다
사진설명
2022년 11월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은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한방'이었다. 그해 6월 월간 활성 이용자 수(424만명)가 전년보다 8.6% 감소했고, 2021년 영업손실이 558억원에 달하는 위기 속에 내놓은 역작이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으로, 왜소한 고등학생이 거대한 폭력과 맞서 싸워나가는 성장 드라마에 대중의 응원이 쇄도했다. 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장악해나가는 넷플릭스와 수세에 몰린 토종 OTT의 구도를 상징했다.

그러나 '약한영웅 Class 1'에서 친구를 위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끝내 지키지 못한 주인공처럼 토종 OTT는 무너지고 있다. 투자 여력이 없는 웨이브가 킬러 콘텐츠인 '약한영웅 Class 2'를 넷플릭스에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드물어 충격적이었다.

'약한 영웅'을 삼킨 넷플릭스의 공세는 무서울 정도다. 최근에는 방송사 최후의 보루였던 가족 드라마와 예능까지 접수했다. 지난 세대에 대한 헌사를 담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열풍은 OTT를 외면하던 노년층마저 넷플릭스에 로그인하게 만들었다. 기존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내세우던 넷플릭스의 드라마 장르 확대 전략에 경쟁 OTT와 방송사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예능 장악도 위협적이다. 지상파TV에서 활약하던 기안84를 영입해 만든 '대환장 기안장'이 대박을 쳤고, 데프콘의 동호회 문화 체험기, 추성훈의 토크쇼, 성시경의 맛집 탐방 등 각종 예능을 요일별로 편성했다. 넷플릭스발(發) 드라마 제작비와 배우 출연료 폭등이 예능으로 확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진공청소기처럼 K콘텐츠를 빨아들이는 넷플릭스 독주 체제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4월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1406만1673명인 반면에 티빙은 650만929명, 웨이브 403만3414명, 왓챠는 46만1881명으로 토종 OTT 3사를 합쳐도 넷플릭스에 못 미친다.

넷플릭스의 물량 공세는 토종 OTT뿐만 아니라 국내 콘텐츠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 못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급감했다. 그나마 넷플릭스 낙점을 받아야 제작 가능한 하청 기지로 전락했다.

국내 제작사들이 연명하려면 넷플릭스 경쟁사들이 버텨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토종 OTT들이 너무 약체여서 상대할 힘이 없다. 결국 뭉쳐야 산다는 답밖에 없다. 다행히 웨이브의 1대 주주인 SK스퀘어와 티빙의 최대주주인 CJ ENM은 웨이브에 총 2500억원 규모의 공동 투자를 단행하며 티빙과 웨이브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티빙 지분 13%를 보유한 KT스튜디오지니가 최근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내놓아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나 한류가 소멸하기 직전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티빙과 OTT 합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두 회사가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면 넷플릭스와 싸워볼 만하다. 일단 두 회사의 지식재산권(IP)과 제작비를 합치면 상승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지상파TV 프로그램 IP를 보유한 웨이브의 강점과 티빙의 제작 능력을 결합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도 적극 공략해볼 만하다. 콘텐츠 제작을 비롯해 마케팅 비용 등 중복 투자도 줄일 수 있다.

소비자도 구독비는 줄어든 반면에 콘텐츠 선택권은 넓어지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가입자가 확대된 통합 토종 OTT가 콘텐츠 투자를 늘리면 국내 제작 생태계가 선순환하게 된다. K콘텐츠 IP 협상력과 자생력, 문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차례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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