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재판관 탄핵 위협은
선진국 어디서도 유례없어
이대로 李 후보 대통령 되면
정상적 재판 가능할지 의문
선진국 어디서도 유례없어
이대로 李 후보 대통령 되면
정상적 재판 가능할지 의문

민주당 측에서 이 후보가 큰 격차로 1위를 달리는데 조 대법원장의 재빠른 판결, 서울고법이 서두르는 것을 보고 매우 불안했을 것임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공세는 너무 거칠었다. 윤호중 총괄선대본부장은 "12일 이후 일체 재판 진행을 하지 마라. 그걸 방해하면 법봉보다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겠다"고 했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대통령 2명도 탄핵했는데 조희대 대법원장쯤이야…"라는 투로 위협했다. 이 후보 본인도 김대중 조봉암의 '사법살인'을 거론하며 사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원초적으로 본인 책임이며, 1심에서 유죄만 받아도 출마를 못하는 헌법을 가진 국가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어떤 권력도 대법원장과 법관에 대해 탄핵 얘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재판을 빨리 하느냐 마느냐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 정신에 따라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결단할 사안이다. 작년 3월 미국 트럼프가 의회 폭동의 건으로 재출마가 가능하느냐를 놓고 연방대법원은 시간이 촉박하자 불과 4일 만에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이번 선거법 상고심을 9일 만에 내린 것을 두고 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공세는 정치의 사법 침해다. 대통령 선거 전에 2심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뻔히 알고도 방치하는 게 되레 불의(不義)일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잘한 판결'이 46%로 '잘못된 판결' 42%보다 높았다. 30대 연령층은 '잘한 판결'에 무려 56%의 지지를 보냈다.
민주당은 대법 판결 후 조 대법원장 탄핵 위협, 파기환송심 재판 중지 엄포에 이어 대법원 판사 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자는 법안도 제출했다. 대법관 늘리기는 남미 베네수엘라 독재자 우고 차베스가 2004년에 써먹었던 수법이다. 대법관 수는 미국 9명(연방), 영국 12명, 일본 15명이다.
재판관을 탄핵 위협하는 사례는 세계 10위권 국가나 OECD 회원국(38개)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제1당이 대법원장 탄핵 추진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려 하니 외신들은 한국은 정치 위기가 심화된 가운데 '충격적인 전개'가 벌어지고 있다고 속보를 계속 띄우고 있다(로이터·블룸버그). 이 무슨 국가 망신인가.
역사적으로 대법원장을 탄핵한 국가는 필리핀 두테르테 정권,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권 두 군데뿐이었으며, 법관들을 위협한 경우는 페루의 후지모리와 헝가리 오르반 정도였다. 모두가 후진국이고 독재자들이었다. 스티븐 레비츠키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명저에서 독재자들의 마지막 코스로 법관들을 회유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 버리는 사례를 들고 있다.
민주당이 법관들에 대한 탄핵 위협, 대법관 숫자를 갑자기 늘려 "내 편을 심겠다"는 폭주에 섬찟 놀라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독재로 가는 나쁜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한 달 후 보자"는 의원 발언에 대선 후 3권을 다 움켜쥐면 무슨 일을 벌일지 무섭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서울고법 재판은 과연 열릴 것인가. 대법 재판은 어떻게 될까. 우리 국민과 전 세계는 한국의 재판 시리즈를 숨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한국 사법부 독립의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세형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