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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극히 이성적이다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
입력 : 
2025-04-13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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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든 신문이 일제히 오보를 썼다. 10일자 미국의 관세 기사 얘기다.

한국 시간 새벽 3시에 뒤집혔으니 불가항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0일 관세 유예를 전격 선언했다. 시행 14시간 만의 번복이었다.

2017년 트럼프 1기 때가 생각났다. 당시 필자는 외신을 취급하는 국제부장이었다. 트럼프의 발작적인 트위터(현재 X) 폭탄이 쏟아진 건 그때부터다.

신문사는 국제부, 정치부 등 뉴스부서 기자들이 남아 밤늦게까지 다음 날짜 기사를 개판(지면 교체)한다. 통상 개판의 마감인 한국 시간 밤 12시가 미국 동부 시간 오전 10시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아침마다 트윗을 날렸다. 가공할 만한 뉴스 소스였다. 특히 한국은 북한 이슈가 민감하다. 한 건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표현은 거칠었다. ‘북한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2017년 8월)’이라거나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totally destroy, 2017년 9월)’ 등이다. 트럼프는 연일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이 됐다. 그에겐 오전이지만 한국 신문사로선 12시 밤 마감 시간이다.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개판하느라 녹초가 됐던 기억이 있다.

그때 트럼프에 대해 많이 느꼈다.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는 상대를 흔들어대며 기회를 만든다. 실력과 밑천이 드러나는 혼란을 즐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들을 비교하면 어떤 신문은 엉뚱한 뉴스를 다뤘다. 새벽 1~2시에 늦게 마감하는 메이저 신문사 몇 곳만 밤에 발생한 뉴스를 온전히 다룰 뿐이었다. 그리고 기사마다 질적 격차가 컸다. 마감 직전 몇 분 내에 해설 기사까지 써야 하니 기자들의 실력 차가 드러난다. 여러 신문을 비교해봤던 독자는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언론뿐 아니다. 투자자도 기업도 국가도 밑천을 드러냈다. 혼란기는 위기이자 기회다. 대박을 친 부자가 생겨나고 망한 기업이 나타났다. 나라별로 중국과 독일은 고난의 시기였지만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 주권을 인정받고, 베트남은 중국에서 이전한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두 번째는 트럼프가 극히 이성적이란 점이다.

대표 사례가 2차 미북 회담이었다. 전 세계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을 만나자 판을 걷어차버렸다. 김정은은 회담 장소 베트남까지 전용열차를 타고 60시간 달려온 참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주저 없이 회담장을 박찼다. ‘본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언제든 말이나 행동을 뒤집는 비정함과 깡다구가 있다.

9일 시행하려 했던 한국 25%, 일본 24%, 베트남 46% 관세가 과하다는 걸 트럼프라고 모를까. 미국 시장이 흔들리자 곧바로 접은 것일 게다. 물론 언제든 다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트럼프는 관세 ‘밀당’을 일단락하면 국제 정세를 흔들어댈 것이다. 1기 때도 그랬다. 푸틴과 김정은과 다시 쇼를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는 ‘미치광이 전략’을 쓰지만 ‘미치광이’는 아니다. 대혼란을 유발하며 위기를 만든다. 누군가에겐 기회다.

지인 중 관세 유예를 예측해 하루 만에 수억원 번 사람이 있다.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트럼프는 관세 유예 발표 3시간 전 SNS에 이렇게 띄웠다. “주식 사기 좋은 때(THIS IS A GREAT TIME TO BUY!!! DJT).”

그도 절대 파국을 원하진 않는다. 이성적으로 미국 이익만 추구한다. 단지 과격한 방법이 미치광이 같이 보이게 한다. 이성적으로 대응하자.

사진설명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5호 (2025.04.16~2025.04.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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