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캡처]](https://pimg.mk.co.kr/news/cms/202503/30/news-p.v1.20250330.0e023b39aeda43318ee4f0a55f92879e_P1.jpg)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온 이후 김기현·나경원·주진우 등 율사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이 파기자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심 유죄’를 철석같이 믿었던 국힘 열성 지지층도 덩달아 ‘파기자판’ 쪽으로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희망회로는 희망고문이 되기 십상이다. 실현성없는 가능성으로 주의를 흐려 제대로 된 대응을 방해함으로써 더 크게 절망하게 하는 것이 희망고문이다.
상고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에 문제가 없으면 기각을 하고 하자가 있으면 파기를 한다. 파기의 경우 원심 법원에 돌려보내 재판후 판결하게 하는 ‘파기환송’이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대법원이 직접 판결하는 것을 ‘파기자판’이라고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파기자판을 주장하는 것은 6월에 조기 대선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전에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유죄를 확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가 파기자판이기 때문이다.
2023년 대법원 상고심(형사) 사건 2만419명 중 원심판결이 파기된 사례는 295명으로 1.44%에 그쳤다. ‘2심 유죄=이재명 아웃’이란 등식이 가능했던 것은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바뀌는 경우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죄가 났다. ‘이건 잘못된 판결이고 따라서 반드시 대법원에서 뒤집힌다’는 심리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2심 무죄가 대법에서 뒤집힐 확률이 2심 유죄의 그것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조기 대선전에 유죄로 뒤집혀 확정되려면 파기환송으로는 안되고 파기자판이어야만 한다. 그것도 선거법 최종심 선고에 권고되는 3개월을 1개월 이상 앞당겨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2023년 파기 선고된 295명 중 15명에 대해서만 파기자판이 이뤄졌다. 전체 상고심 사건 2만419명 중 불과 0.073%의 확률이다. 원심판결이 덧셈뺄셈 수준의 기초적 과오를 범해 사안이 너무나 명백한 경우에만 파기자판을 한다.
허들은 하나 더 있다. 지금까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행해진 파기자판은 한 번도 없었다. 유죄가 무죄가 되는 때는 조속한 피해복구를 위해 파기자판을 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파기환송해 다시 재판을 받게 한다. 이재명 대표의 피선거권이 박탈되려면 최종적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2심 무죄를 유죄로 바꾸면서 형량까지 직접 매긴다? 불가능하다. 그런 일이 실제 발생한다면 대법원이 이재명이라는 개인의 방어권을 방해하는 것이고 작위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모양이 된다. 듣도보도 못한 사법 정치 스캔들이 된다.
만약 2심에서 유죄가 나왔다면 대법원의 대선전 판결 확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고 그것은 명분 있는 요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 대표의 대선 완주는 어렵지 않았을까. 상황이 180도 달라졌으면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 국힘은 지금도 사법부에 기대려 하고 있다. 문제는 파기자판 가능성이 제로라는 점이다. 대선전에 이 사건이 최종 결론 나는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다. 대법원이 서둘러 2심의 무죄를 확정하는 것이다.
국힘은 재집권이 아니라 이재명을 대선판에서 아웃시키는 것이 목적인 당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재명이 달리는 방향으로 우우 쫓아가다 철망을 뛰어넘은 이 대표를 향해 무망하게 손 뻗치고 소리치는 좀비 떼 같다. 이재명이 아웃되면 국힘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는가. 가상의 조기 대선에서 국힘이 정권을 잃는 가장 확실한 시나리오는 중도층이 불안감을 느끼는 이재명 대표 대신 다른 인물이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경우 아닌가?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판사에 기대어 대선 하지 말고 국민을 믿고 차기 대선에 임하는 게 올바른 정치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파기자판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홍 시장은 안다. 더 중요하게는 이런 식으로 질척대서는 대선에서 못 이긴다는 말을 그는 하고 있다.
[노원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