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교육 현장의 모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최근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4세 고시' '7세 고시'가 성행하고 있다.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는 어린아이들이 수능에 나올 법한 영어 문제를 푼다. 단지 유명 학원에 입성하기 위해서다.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경쟁은 더 심해진다. 초등학생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고등학교는 4년제(재수 1년 포함)" "재수하면 징역 1년에 벌금 5000만원"이라는 푸념이 돈다.
이 모든 잔혹사는 결국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입시 지상주의가 빚어낸 참상이다. 명문대 입학 증서를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어떤 희생이나 고통을 감내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나마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다면 가정의 명운을 건 도박이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정원이 제한적이니 낙오자가 더 많다. 자식의 미래에 노후를 걸었는데 결과가 실망적이라면 결국 은퇴한 부모도 좌절한 자녀도 서로에게 원망만 쌓인다.
요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어쩌면 이 생존경쟁에 내 자식까지 휘말리게 하진 않겠다는 '모성애'의 발현일지 모른다.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한 풍토가 목격된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 새롭게 상장된 기업만 131곳이다.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에 신규 상장한 기업 수가 171곳이었다. 양국 증시에 유입되는 자금 수준에 비해 그 격차가 크지 않다.
국내 증시에서는 중복 상장도 난무한다. 국내 증시 중복 상장 비율은 18.43%다. 미국은 0.35%에 불과하다. 모회사가 버젓이 상장돼 있는데 자회사를 재차 상장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일단 상장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재계와 투자 업계에 만연한 탓이다. 정부 정책도 이에 동조하는 측면이 있다. 코스피 상장이 어려우니 코스닥을 따로 뒀다. 이 역시도 쉽지 않은 기업이 있어 코넥스에 스팩(SPAC)까지 생겼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다 싶어 '테슬라 요건'을 만들었다. 적자여도 성장성만으로 증시에 오를 수 있게 했다.
제도는 다 마련돼 있으니 스토리가 그럴싸하면 된다. '해외 진출' '수주 확대'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미래 실적은 한껏 부풀린다. 공모가에 거품이 잔뜩 끼게 된다.
그런데 상장에만 성공하면 이후 주가 흐름이나 실적은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한국 상장사 절반 이상(52.1%)은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은 그 비율이 3.2%에 불과하다. 미약한 주주환원과 왜곡된 지배구조 때문이다.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는데, 한국에선 주주의 눈물을 먹고 곪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 입학만을, 기업들은 증시 입성만을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내달린다. 하지만 대학 입학도 기업공개도 그 자체로 종착지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는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든다. 새로운 성장을 위한 출발점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우수민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