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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옆 사람은 뭐 그리 잘났겠습니까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입력 : 
2025-03-22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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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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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9년 만에 0.75명으로 반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온 나라가 대한민국 소멸을 걱정하며 아이 한 명이라도 늘리려고 노력하는데, 곁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 소멸하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드물다.

한국의 극단적 선택은 그야말로 쓰나미급이다. 2023년 1만4000명에 육박한다.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0.6명의 2.5배 수준이다.

1988년 한국의 자살률은 8.4명으로 당시 OECD 평균인 17.2명의 절반에 불과했는데, 점차 증가하여 2003년 1위를 차지한 이후 지금까지 1위의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기 다른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은 감소했다.

더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젊은 세대의 사망 원인 1위가 극단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2023년 사망 원인 집계(통계청)에 따르면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7.9명으로 1983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30대 역시 심각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0대는 16.4명에서 23.5명으로, 30대는 24.5명에서 27.3명으로 늘었다. 2030세대의 사망자 10명 중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노년 세대도 판박이다. 2023년 기준 80세 이상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59.4명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고, 70대가 39명으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이는 특히 OECD 평균(14.2%)의 3배에 달하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40.4%, 2020년 기준)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여겨진다.

동시에 눈여겨볼 것은 성별 차이다. 남성이 여성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극단적 선택 확률이 높다. 60대 남성·여성 46.6명·29.6명, 70대 남성·여성 63.9명·18명, 80대 이상 남성·여성 115.8명·29.6명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비교해 남성이 상대적으로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통설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개인 수준에서는 빈곤이나 질병 등이 동기가 되지만 거시적으로 분석하면 사회적 지지 혹은 이웃의 공감이 부족해 극단 선택으로 떠밀려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립된 삶이 자긍심을 낮춰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다.

우리는 자살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대개는 쉬쉬하면서 그저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가 자치구별 전담 조직을 구성해 동 단위의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은 제대로 된 첫걸음이다. 공공 영역에서 정기적으로 정신건강 교육과 전문 치료 기회를 제공해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상시적인 보살핌이 이루어질 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이에 일류 대학, 월드 클래스 직장, 이름난 동네에서의 신혼이 이뤄야 할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여기에 못 미치면 스스로 낙오자라 느낀다. 지표 자체가 지나치게 높다. 타인과 비교되는 ‘번듯한 삶’이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적당한 학교, 적당한 직장, 적당한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만의 가치를 인정받고, 경제력이나 성취에 상관없이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유토피아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의외로 세상에는 그런 나라가 더 많다. 우리가 변화되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어울려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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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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